누가복음서묵상일기 220 -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도 춤추시게 합니다.

2025. 2. 5. 04:45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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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서 10:17~20   일흔[두] 사람이 기쁨에 차서, 돌아와 보고하였다. "주님, 주님의 이름을 대면, 귀신들까지도 우리에게 복종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이 하늘에서 번갯불처럼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다. 보아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세력을 누를 권세를 주었으니, 아무것도 너희를 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굴복한다고 해서 기뻐하지 말고,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좋은 아침입니다. 많이 춥습니다. 우리는 추울수록 따스한 곳을 찾게 되죠. 히터가 빵빵하게 나오는 그런 곳을 말이죠. 오늘 아침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네요. 나는 따스한 온기가 도는 그런 사람일까? 아니면 냉랭한 바람이 부는 그런 사람일까? 그 순간 내 안에 회개의 마음이 드는 것은 제가 그리 따스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증거겠죠? 다시금 주님 앞에 겸손히 기도하며 오늘을 시작합니다. 나를 만나는 이들에게 나는 이 추위를 녹일 만큼 따스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누구가 언 마음이 녹을 만큼 온기가 흐르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요. 

 

파송했던 70(72) 명의 제자들이 돌아왔습니다. 이미 이 파송의 이야기는 9장에 기록된 열두 제자의 파송을 닮았다고 말씀드렸죠? 9장에서도 열두 제자의 파송 이후, 그들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기록했었죠. 그런데 오늘 본문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그것은 70(72) 명의 제자들의 기분을 기록했다는 점입니다. 열두 제자의 귀환에는 돌아왔다는 말만 하죠. 그런데 오늘 본문의 70(72) 명은 기쁨에 차서 돌아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뿐이 아니죠. 9장에는 열두 제자가 돌아와서는 예수님께 보고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보고를 했는지가 기록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그 부분을 묵상할 때 어떤 보고를 했을지 궁금해했었죠?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상세한 보고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제어했다는 보고죠.

 

여기서 우리는 9장의 보고 내용을 유추할 수 있는데요. 아마도 열두 제자의 보고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70(72) 명의 제자들을 다시 보내시고, 마음을 닫은 도시들을 향해 경고를 날리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보니 그간 말씀의 흐름이 보입니다.

 

70(72) 명의 제자들 보고에 예수님도 기쁘셨던 모양입니다. "사탄이 하늘에서 번갯불처럼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다"라고 하시죠. 이전에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시며 하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서 16:19   내가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해석이 쉽지 않은 구절이지만 오늘 본문을 보며 깨달아지는 것이 있는데요. 그것은 우리의 행복이 곧 주님의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선함과 말씀으로 세상을 이기면 하늘에서도 승리와 잔치가 있다는 것이죠. 그만큼 하나님은 우리의 이 땅 승리와 행복을 바라십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이기고, 믿음대로 삶을 돌파해 나가는 것이 하늘에서 가장 기쁜 일임을 알려주시는 거죠.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고 사도 바울이 말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도 춤추게 하는 가장 강력한 찬양이고 기도며 전도임을 잊지 마세요.

 

이어서 하신 말씀은 이 논리를 뒷받침하는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9장에서 열두 제자들에게 병 고침과 귀신을 제어할 능력을 주셨다고 했죠? 70(72) 명의 제자들에게도 능력을 주셨는데 그것이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세력을 누를 권세'였습니다. 뱀은 아시다시피 우리를 유혹하는 세력을 통칭하는 것이죠. 전갈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지는 않는데요. 다만 전갈의 독성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만큼 강력한 것으로 알려졌죠. 특별히 전갈은 인류 문명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생물 중 하나이기도 하죠. 어쩌면 우리 안에 독이 퍼지듯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점령하는 두려움의 상징일지도 모르겠어요.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는 이미 그것을 밟고 이길 권세가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에게는 모든 만물을 다스릴 권세가 있다는 점이죠. '할 수 있다'와 '할 수 없다'의 차이는 자명합니다. '할 수 있다'는 방법을 찾고, '할 수 없다'는 변명을 찾죠. 어쩌면 이는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일지도 모릅니다.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과 할 수 없는 이유를 찾는 것이 그것이죠. 그래서 권세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면 삶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지는 거예요. 그래서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하늘에서 잔치가 벌어지게 만드는 우리의 유일한 힘이죠.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이름을 하늘에 새깁니다. 우리가 믿음을 동원할 때마다 하늘에는 우리의 이름이 새겨지고요. 우리가 믿음으로 설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 위에 은혜를 베푸시며 우리 이름을 빛나게 하시죠. 오늘도 우리 공동체 가족들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길 원합니다. 또한 주님이 기뻐하시며 그 이름을 빛나게 하시는 오늘 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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