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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여호수아서묵상

여호수아서묵상일기 90 - 복음은 기득권이 아니라 나눔입니다.

여호수아서 22:6~9   여호수아가 그들을 축복하여 보내니, 그들이 자기들의 장막으로 돌아갔다. 동쪽의 므낫세 반쪽 지파에게는 이미 모세가 요단 강 동쪽에서 바산에 있는 땅을 주었고, 그 나머지 서쪽의 므낫세 반쪽 지파에게는, 여호수아가 다른 지파들에게 준 것과 같이, 요단 강 서쪽에서 땅을 주었다. 여호수아는 그들을 그들의 거처로 보내며 축복하였다. "당신들은, 많은 재산과 아주 많은 가축과 금과 은과 동과 철과 아주 많은 의복을 가지고, 당신들의 거처로 돌아가십시오. 당신들의 원수들에게서 빼앗은 전리품을 다른 지파들과 더불어서 나누어 가지십시오."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요단 강 동쪽에 정착한 므낫세의 반쪽 지파가 그들의 소유지로 돌아갔다. 그들은 가나안 땅의 실로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떠나서, 주님께서 모세에게 내리신 명대로, 그들이 얻어 소유하게 된 땅 곧 길르앗 땅으로 돌아갔다.


좋은 아침입니다. 새날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시작하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감사와 기쁨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죠? 이는 몸을 쳐서 복종케 하듯 뜻과 마음을 다해 붙들어야 합니다. 먹고 싶은 것이 아니라 몸에 좋은 것을 골라 먹듯이 의지가 필요하죠. 그 좋은 의지가 습관이 되면 길이 되는 것입니다. 매일 아침 감사와 좋은 인사로 시작하는 습관이 나의 삶을 완전히 다른 길로 인도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면 좋겠어요. 오늘도 즐겁게 시작하세요.

 

여호수아는 르우벤, 갓, 므낫세의 절반 지파를 떠나보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수고를 알고 헌신을 알기에 더욱 각별히 정성을 다해 배웅하죠.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는 여호수아가 그들을 축복하며 보냈다는 표현을 두 번씩이나 강조해서 적고 있는데요. 이는 히브리 문학에서 강조를 위한 동어 반복이 하나의 문학 기법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축복이란 복을 기원한다는 뜻이죠. 그러니까 남이 잘 되기를 바라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저는 연 이틀, 우리의 믿음이 무엇에 기초하고 있는지를 강조하여 말씀드렸죠? 올해는 우리 공동체가 굳건히 그 믿음의 토대 위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또 기도하고 찬양하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반드시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이죠. 이것이 우리가 품은 믿음의 기초입니다. 그 기초가 있는 믿음과 없는 믿음은 완전히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있죠. 그 정해진 미래, 이미 승리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믿지 못하는 이들은 아무리 하나님을 부르짖어도 늘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만 상황이 틀어져도 흔들리죠. 그러나 기초가 있는 믿음은 잠시의 어려움에도 기다릴 줄 아는, 더 나아가 더욱 큰 기대를 품을 줄 압니다.

 

이 믿음이 오늘 본문에도 있습니다. 누군가를 축복할 줄 아는 사람은 그 믿음을 가지고 있죠.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를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 말입니다. 이 믿음 없이는 누구도 축복할 수가 없어요. 더욱이 그 믿음을 가지고 나를 축복할 줄 아는 사람만이 또한 남을 축복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내가 믿는 만큼 축복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축복하는 것은 나를 향한 축복을 믿는 믿음과 관련되어 있기에 남을 축복하는 일은 곧 나를 축복하는 일과도 같은 것이죠. 그러니 많이 축복하세요. 진짜 남이 잘 되기를 바라세요. 그 마음은 고스란히 나에게도 임합니다. 나도 또한 잘 될 것을 믿는 믿음이 되기 때문이죠.

 

그런데 오늘 여호수아의 축복은 또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부분을 오늘 묵상하고 싶어요. 그것은 여호수아가 떠나는 이들을 향해 축복하며 한 말에서 찾을 수 있죠. 여호수아는 이렇게 말하죠.

 

"당신들은, 많은 재산과 아주 많은 가축과 금과 은과 동과 철과 아주 많은 의복을 가지고, 당신들의 거처로 돌아가십시오. 당신들의 원수들에게서 빼앗은 전리품을 다른 지파들과 더불어서 나누어 가지십시오."

 

전쟁에서 승리하고 이제 금의환향하는 이들에게는 이 말이 평범한 말처럼 들리지만, 여호수아의 축복과 연관하여 이 말을 새겨듣는 제게는 특별하게 들렸습니다. 이 말이 여호수아의 축복을 담고 있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마치 여호수아는 복을 받는 비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죠. 여호수아는 전쟁의 전리품들을 가지고 돌아가 다른 이들과 나누라고 말하고 있죠. 그런데 조금 이기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게 쉽지 않아요. 목숨을 걸고 싸운 몫으로 받은 전리품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고생은 내가 했는데 받은 전리품을 누구에게 나눠주고 싶겠습니까? 뼈 빠지게 일해서 번 내 돈을 다른 이와 나누라면 그게 쉽겠습니까? 그게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쉽지 않은데 다른 이웃과 나누라면 더욱 어렵죠. 그런데 여호수아는 그것을 나누라고 하죠. 

 

여기에 축복의 비밀이 있습니다. 우리가 복을 받는 비결은 나의 노력으로 주어지는 것보다 그 노력 위에 부으시는 은혜가 임하는 것이죠. 나 혼자 돈을 버는 경우는 없습니다. 상황이 주어져야 하고 환경이 열려야 하죠. 세계가 도와줘야 하고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이런 경우를 우리는 운이라고 부르죠. 운이 좋아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운이라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길을 열어주시고 환경을 만들어주시는 거죠. 그것이 주님께로부터 받는 축복입니다. 그러니까 나의 것을 옹졸하게 모아서 부자가 되는 법은 없는 거예요. 나의 노력과 함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소위 시대를 잘 타고나야, 곁에서 돕는 사람들이 많아야 우리는 부자가 되는 겁니다. 그 복의 비결을 여호수아가 가르쳐 주고 있죠. 그것이 바로 이웃과 나누라는 나눔의 정신이죠. 이는 비록 지금 나의 것을 빼앗기는 것 같고 손해 보는 것 같지만 결국 나의 것을 이웃과 나누는 마음이 하나님의 축복을 이끄시는 동력이 된다는 것을 여호수아는 우리에게 알려주는 거죠.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나눔의 본질이 있습니다. 누군가 불쌍해서 돕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긍휼의 마음을 주시는 것은 계기일 뿐이죠.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이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를 열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믿은 사람은 자기의 것을 나눌 줄 아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복음은 기득권이 아니라 나눔입니다. 복음을 정죄에 기초하지 않고 거저 주는 나눔에 기초하죠. 복음은 교리가 아니라 사랑이고, 법이 아니라 무료 나눔이에요. 그때 주님의 축복이 우리와 함께 합니다. 아무리 복음이어도 기득권처럼 휘두르면 그 위에 임하는 축복은 없습니다. 아무리 교회의 이름으로 무엇을 해도 그것이 생색을 내는 것이면 그것으로 복의 통로는 열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중심이 중요한 거죠.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임을 믿는다면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나누세요. 그것이 감사입니다. 또한 그 감사는 또 다른 복을 부르는 열쇠임을 잊지 않으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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