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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여호수아서묵상

여호수아서묵상일기 92 - 좋은 기억만 남기세요.

여호수아서 22:13~20   이스라엘 자손은, 엘르아살의 아들인 비느하스 제사장을, 길르앗 땅에 있는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동쪽의 므낫세 반쪽 지파에게 보냈다. 요단 강 서쪽에 자리 잡은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열 명의 대표가 비느하스와 함께 갔다. 그들은 각기 이스라엘의 천천만만 백성의 가문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길르앗 땅으로 가서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동쪽의 므낫세 반쪽 지파에게 말하였다. "주님의 온 회중이 하는 말이오. 당신들이 어찌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이런 악한 일을 하였소? 어찌하여 당신들이 오늘날 주님을 떠나서, 제멋대로 단을 쌓아 주님을 거역하였소? 우리가 브올에서 지은 범죄 때문에 주님의 회중에 재앙이 내렸고, 우리는 아직도 그 죄를 다 씻지 못하고 있소. 그것으로도 부족하단 말이오? 당신들은 오늘에 와서 주님을 따르지 않고 등을 돌렸소. 오늘 당신들이 주님을 거역하였으니, 내일은 주님께서 온 이스라엘의 회중에게 진노하실 것이오. 만일 당신들의 소유지가 깨끗하지 못하거든, 주님의 성막이 있는 주님의 소유지로 건너와서, 우리의 소유를 나누어 가지시오. 주 우리 하나님의 단 외에 당신들이 함부로 단을 쌓음으로써, 주님을 거역하거나 우리를 거역하지 마시오. 세라의 아들 아간이, 주님께 전멸시켜 바칠 물건에 대하여 큰 죄를 지어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 위에 진노가 내리지 않았소? 그의 죄 때문에 죽은 사람이 어디 그 한 사람뿐이오?"


좋은 아침입니다. 어제부터 날이 좀 차가워졌죠? 오늘 새벽은 더 차갑게 느껴지네요. 그제 내린 눈으로 곳곳이 얼어있습니다. 안전에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네요. 그래도 우리는 오늘을 즐겁고 기쁘게 보내는 것에는 변함이 없죠. 날이 좋거나 나쁘거나, 상황이 나아지거나 악화됨에 시선이 머물지 않고 오로지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빛을 따라가는 우리이기에 오늘도 힘차고 밝게 시작하길 원합니다.

 

지금 우리는 요단강 동편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가는 르우벤과 갓, 그리고 므낫세 지파가 가는 길에 단을 쌓은 문제로 오해가 생긴 일에 대해서 묵상 중이죠. 이미 이 모든 일들은 오해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묵상했습니다. 결론을 내리고 이제 구절구절을 차근히 읽어나가는 중이죠. 이런 구절의 성경을 읽다 보면 참 별일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진짜 우상을 숭배한 것도 아니고, 분열로 인해 싸움을 한 것도 아닌, 오해에서 비롯된 일인지라 뭐 그리 굳이 성경에서 많은 분량을 차지할만한 이야기일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예요. 어떤 이유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묵상하는 저로서는 그 이유를 찾는 일이 주님이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임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르우벤과 갓, 므낫세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지파들은 크게 동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제사장 비느하스를 중심으로 사절단을 보내죠. 진위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비느하스는 아론의 손자인데요. 그가 사절단의 대표가 되었다는 것은 이 사건을 바라보는 이스라엘 지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비느하스가 등장하는 이전의 사건이 있기 때문이죠. 때는 바야흐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을 향해 진군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그들은 바로 르우벤과 갓, 그리고 므낫세의 절반 지파가 차지하게 된 땅, 요단강의 동편을 점령했을 때였죠. 그곳에는 모압족속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로부터 빼앗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문제가 발생하는데요. 이스라엘의 남자들이 모압 여인들을 범한 사건이 벌어졌는데요. 그 모압여인들이 대부분 바알이라는 이방신을 섬기던 신전의 여인이었던 겁니다. 그 때문에 이스라엘의 남자들이 그 신전의 음식을 먹고 우상에게 절하는 등 바알신을 섬기는 일이 발생한 거죠. 이것을 브올에서 일어난 바알신 섬김의 사건이라고 부르는데요. 짧게 말해 바알브올 사건입니다. 이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졌냐 하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에 전염병이 돌아서 24,000명이나 되는 사람이 몰살을 당하는 일이 일어났던 거죠. 이들 대부분은 바알신을 섬기는 잘못을 저질렀던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적은 인원의 사람들로 인해 많은 이들이 희생을 당하는 순간이었죠. 이때 비느하스가 등장합니다. 그는 이 사건을 일으킨 주동자들을 색출하여 처벌하고 그 공로로 대제사장직을 맡게 된 인물이죠. 그가 지금 대표로 나섰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남은 지파들이 지금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알려주는 열쇠가 되죠.

 

저는 이런 반응을 보이고 있는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들의 모습을 2가지 측면에서 묵상하고자 합니다. 그 2가지 측면이란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이에요. 오늘은 그중에서 부정적인 측면을 묵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르우벤과 갓, 므낫세 지파의 단 사건을 우리는 이미 훑어보았죠. 이 사건은 하나의 해프닝입니다. 그러니까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거죠. 그들의 변명이 곧 나오는데요. 저는 그들의 말을 믿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다른 이스라엘 나머지 지파들의 행동은 과잉반응이 되는 셈이죠. 그들은 안 해도 될 오해를 한 것이고, 너무 오버를 한 것인지도 몰라요. 그런 그룹들이 꼭 있죠. 과하게 걱정하고, 과하게 반응하는 이들이 어떤 단체에나 있어요. 괜한 걱정과 염려를 달고 사는 이들이 있죠. 그것이 때론 부정적인 의견으로 비칠 때도 있습니다. 끝없이 의심하고 끝없이 반대하죠.

 

그런데 그들의 그런 걱정과 의심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이 싫어서 무조건 반대하는 이들이 아니라면 그런 걱정과 의심은 분명히 이유가 있죠. 이미 살펴본 것처럼 그들에게는 과거의 기억이 있습니다. 아주 아픈 기억이죠. 그 기억이 그들을 자극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이죠. 이는 제 눈에 마치 트라우마처럼 비칩니다. 그들에게는 옛 기억이 병이 되어 있는 것이죠. 

 

저는 기억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라고 한다면 저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고, 또 그분이 하실 일을 기대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렇게 '기억'과 '기대', 이 두 단어가 하나님 역사를 표현하는 중요 단어로 여겨지기에 기억이란 우리의 믿음에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이 기억이 왜곡되는 경우가 있죠.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는가? 에 따라 전혀 다른 기억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인간의 실수들이 등장합니다. 어리석을 만큼 반복되는 실수들이 있죠. 그런데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기억은 우리의 실수가 아니라 그 실수를 넘어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그 자비입니다. 광야의 괴로움이 아니라 약속하신 땅 가나안의 축복이죠. 

 

기억을 잘한다는 것은 시시콜콜한 기억이 아닙니다. 트라우마가 아니에요. 트라우마는 그 미세한 진동까지 기억하죠. 너무도 또렷해서 소름이 끼칠 정도의 기억입니다. 그러나 진짜 남겨야 할 기억은 그 과정을 통과하고 지금까지 인도하신 그분의 긍휼이고, 더 나아가 앞으로 더 높은 곳에 이르기까지 이끄실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이죠. 이게 진짜 기억을 잘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기억이 진짜 기억입니다.

 

좋은 기억만 남기세요. 좋은 기억만 간직하세요. 두려움으로 만들어진 기억은 늘 과잉 반응과 오해를 낳습니다. 나쁜 감정으로 인한 기억은 의심과 분노를 가져오죠. 그렇게 나쁜 기억은 불안을 만들지만 좋은 기억은 우리를 웃게 만듭니다. 나쁜 기억은 늘 포기하게 하지만 좋은 기억은 도전을 택하고 용기를 내며 기회를 얻습니다. 그러니 부디 좋은 기억을 남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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