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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여호수아서묵상

여호수아서묵상일기 94 - 우리가 예수 믿는 이유는...

여호수아서 22:21~29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동쪽의 므낫세 반쪽 지파가 이스라엘의 천천만만 백성의 가문 대표들에게 대답하였다. "주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주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우리가 왜 그렇게 하였는지, 주님은 아십니다. 같은 이스라엘 겨레인 여러분도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한 이 일이 주님을 반역하거나, 주님을 거역하는 일이었다면, 주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살려 두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지 않고 등을 돌리려고 이 단을 쌓은 것이 아닙니다. 또 드리는 이 단을 번제와 곡식제사와 화목제사를 드리는 제단으로 사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이 단을 제단으로 쓸 목적으로 쌓았다면 주님께서 벌써 우리를 벌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단을 쌓은 것은, 훗날 당신들의 자손이 우리의 자손에게 '너희가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아! 주님께서 우리와 너희 사이에 요단 강을 경계선으로 삼으셨으니, 너희는 주님에게서 받을 몫이 없다' 하고 말하면서, 당신들의 자손이 우리의 자손을 막아서, 주님을 경외하지 못하게 할까 염려가 되어서, 우리가 이 단을 쌓은 것입니다. 이것은 번제물을 드리거나 다른 어떤 제물을 드리려고 쌓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단은, 우리와 당신들 사이에, 그리고 우리의 자손 사이에, 우리의 믿음을 증명하려고 세운 것입니다. 우리도 번제물과 다른 제물과 화목제물을 가지고 주님을 진정으로 섬기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 훗날에, 당신들의 자손이 우리의 자손에게 '너희는 주님에게서 받을 몫이 없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한 대로, 훗날 당신들의 자손이 우리에게나 우리 자손에게 그같이 말한다면 '보아라, 이것은 우리 조상이 만든 주님의 제단의 모형일 뿐이다. 이것은 우리가 여기에서 번제물을 드리거나, 다른 제물을 드리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다만 우리와 당신들 사이의 관계를 증명하려는 것일 뿐이다' 하고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번제나 곡식제사를 아무 데서나 함부로 드리는 일이나, 다른 제물을 바칠 불법적인 단을 만듦으로써 주님을 거역하거나 배반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 우리 하나님의 성막 앞에 있는 그 합법적인 단 외에는 어떤 제단도 쌓지 않을 것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좋은 아침을 외치며 시작하셨나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저는 이 아침, 여러분의 이 외침이 우리의 영육뿐만 아니라 이웃에게까지도 새로운 영향을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주신 새날임을 인정하는 것이고, 또 어제와 다른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겠다는 다짐이니까요.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말 많이 하죠? 이겨놓고 싸운다고요. 이미 선포하고 시작한다고 말이죠. 그 믿음이 나를 이끌기 때문이죠. 오늘도 좋은 날 되기를 바란다면 지금 좋은 날을 선포하세요. 혼자서만 하지 마시고 입으로 시인하고 가까운 이웃과 더불어 나누세요. 그러면 여러분의 오늘 하루는 그 좋은 날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들의 해명의 시간입니다. 아시다시피 요단강 동편에 자리한 지파들이 서편 전쟁에 참여한 후 돌아가는 길에 제단을 쌓는 일이 있었죠. 이것은 하나님의 성전이 실로에 세워진 이후 발생했기 때문에 다른 지파들은 이 제단이 우상을 위해 세워졌다고 오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죠. 그래서 다른 지파들은 격분하여 이들을 찾아왔는데요. 오늘 본문은 그들의 의도와 해명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미 전체 맥락을 훑어본 바 있어서 이 사건이 단순 해프닝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죠. 요단강 동편 지파들의 의도는 간단했습니다. 그들이 요단 강을 건너 자신들의 땅으로 갈 때 염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죠. 요단 강이라는 물리적 거리가 있어서 자신들이 민족적인 소외가 생길 것을 걱정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기념비처럼 단을 쌓았던 것이죠. 이는 자신들도 이스라엘 민족의 일원이고, 함께 싸웠으며,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같은 가족임을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보통 기념비라는 것이 그렇잖습니까? 역사적으로 기념비나 어떤 제단들을 보며 그 당시의 생각들을 유추할 수 있죠. 그것처럼 그들은 무언가를 남겨놓고 싶었던 것이죠.

 

이로 오해는 풀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계속 말씀드리죠? 이렇게 간단한 해프닝이라면 왜 성경에 쓰였겠어요? 물론 기록이라는 것이 사사로운 것까지 기록하는 법이지만 우리는 지금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찾는 묵상 중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 단순한 해프닝 속에 담긴 의미를 찾아야 하겠죠. 이 사건을 통해 격분한 다른 지파들도 이해가 되고, 당사자인 동편 지파들도 이해가 됩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이 괜한 것 가지고 트집을 잡은 것일까요? 그러기에는 성경에 이런 기록이 있죠.

 

여호수아서 22:10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동쪽의 므낫세 반쪽 지파가 요단 강 서쪽 지역의 강가에 단을 쌓았는데, 그 단은 보기에 아주 큰 단이었다.

 

'그 단이 보기에 아주 큰 단이었다'는 말이 좀 의미심장하게 들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 말은 오해하기에 충분했다는 말이죠. 과잉으로 반응하기 이전에 과잉의 단이 있었던 셈이죠. 동편 지파들은 어쩌면 자신들의 의도를 담기에는 너무 큰 제단을 쌓았던 것으로 보이죠. 이는 자기 과시나 허영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왜 현대 교회가 떠올랐을까요? 많은 교회들이 높은 십자가와 웅장한 예배당을 짓습니다. 나름 다 이유가 있어요. 많은 교인들과 함께 예배하려는 목적, 하나님을 예배하는 어떤 건축적 상징 등이 있죠. 그럼에도 그런 거대한 예배당은 오해를 받습니다. 왜 그렇게 크고 높아야 하는지, 왜 그렇게 돈을 써야 하는지 등의 반문을 듣죠. 심지어 교회가 크기 경쟁을 하고 어떤 다른 영향력을 나타내려고 외형을 넓힌다는 오해를 받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교회가 크다는 것만으로 비난할 마음은 없습니다. 큰 예배당이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언제나 규모의 경제는 필요한 법입니다. 그런데 제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럼에도 이렇게 교회가 커야 하는 이유, 예배당이 필요한 이유, 더 나아가 교회의 존재 이유를 입증한 주체는 바로 교회라는 점이라는 사실을 교회가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죠. 교회는 끊임없이 해명해야 합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이유, 이곳에 존재해야 할 이유, 크고 높은 예배당이 필요한 이유, 이웃과 함께 하는 이유, 그렇게 은혜와 사랑을 나누는 이유, 그것을 설명할 줄 알아야 한다고 믿어요. 우리가 이 설명을 하지 못하면 우리의 크고 웅장한 예배당은 '보기에 아주 큰 단'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비단 예배당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도 입증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 복음을 전하는 이유를 입증하며 살아야 하죠. 오늘도 내가 맑고 밝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왜 기도해야 하는지, 왜 말씀 묵상해야 하는지, 왜 예배 공동체와 함께 해야 하는지 설명할 줄 알아야 하죠. 그렇지 않으면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의심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도 나의 유익을 위해서라고, 돕는 것도 뭔가 꿍꿍이가 있어서라고, 축복 또한 사기라고 말할지 몰라요. 아시죠?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 내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 되기 위해서라는 것을 말이죠. 우리가 이웃과 더불어 사랑을 나누는 이유 또한 나도 잘되고 너도 잘 되기 위해서임을 말입니다. 그렇게 나의 행동을 입증하며 사는 우리였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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