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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여호수아서묵상

여호수아서묵상일기 99 - 마음을 열어두세요.

여호수아서 23:6   그러므로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아주 담대하게 지키고 행하십시오. 그것을 벗어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마십시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은 우리를 위해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귀하고 값진 시간을 통해 은혜와 성장을 주시기 위한 하루임을 잊지 않으셨으면 해요. 이 아침에 오늘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삶이 펼쳐질 테니까요. 사랑하는 우리 공동체 가족들은 오늘을 나를 위해 주신 주님의 은혜로 사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의 고별사에서 본격적인 권면의 말씀이 시작됩니다. 권면이란 알아듣도록 권하고, 또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준다는 뜻이죠. 그의 가장 중요한 권면은 율법을 지키고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 우리가 지키고 행하기를 원하시는 것들을 잘 따르기를 부탁하는 거죠. 여기서 율법이라는 말을 잘 해석해야 합니다. 이미 율법이 주어진 이유에 대해 우리가 정의를 내린 바 있죠. 율법을 주신 이유는 우리의 영혼이 잘 되고, 범사에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일이 가르치고 인도하시는 이유가 바로 우리를 좋은 길로 이끄시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믿음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 말씀을 권면하고 있는 거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따르고 행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나의 영혼과 삶이 잘 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그런데 여호수아는 이 권면을 하는 가운데 중요한 단어 하나를 사용하죠. '담대하게'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행하는데 담대하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담대하게'란 용기를 가지고 겁 없이 하라는 뜻이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행하는 데에는 담대함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반대로 이야기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려고 할 때마다 우리에게 겁이 찾아온다는 뜻이 되기도 하죠. 두려움이 생기고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생각을 물리치고 용감하게 말씀을 지켜야 한다는 거죠. 그야말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려면 용감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를 뒷받침할 말씀이 이어 등장하는데요. 이것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본문입니다.

 

'그것을 벗어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마십시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하죠? 이 말은 이전에 여호수아가 했던 말입니다. 여호수아서 1:7에 등장하죠. 가나안 전쟁을 나서기 전에 백성들을 모아두고 똑같은 말씀을 외친 적이 있죠. 어쩌면 시작할 때도, 끝났을 때도 그의 요구는 한결같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이는 여호수아의 모토였던 것으로 보이죠. 

 

그렇다면 과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중도를 걸으라는 뜻일까요? 그렇다면 좌는 뭐고 우는 뭘까요? 이념적인 대립이 극심한 우리 사회의 단면처럼 진보도 보수도 아닌 경계선일까요? 그래서 어떤 이념에도 속하지 말라는 뜻일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는 무슨 이념적인 노선의 문제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혹은 민족적 우월성을 드러내라는 말씀은 더더욱 아니죠. 혹자는 이방문화와 우상숭배의 문제를 두고 한 말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는데요. 저는 그보다 훨씬 폭넓은 해석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어디 나 홀로 사는 세상이 있겠습니까? 누군가를 차별하고 이웃과 담을 쌓으며 사는 삶이 어디 가능하겠습니까? 

 

최근에 저는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바가 있습니다. 그 다양함 속에서 주님이 주시는 메시지가 있다는 사실이죠. 신앙적 책만이 아니라 기타 사회인문학, 자연과학 등의 책에서도 느끼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묵상들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느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배웁니다. 무소부재하시다는 사실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의 향기를 느끼고 어떤 일에서도 주님의 음성이 있음을 아는 것이 진정한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은 어느 곳에서도 제한을 두지 말라는 말씀일지도 모릅니다. 여기만 하나님이 있다, 저기만 말씀이 있다 여기지 않고 내가 선 어느 곳에서도 말씀하시고 역사하시고 기적을 내신다는 믿음이 진정한 하나님을 아는 신앙이 아닐까 싶은 생각입니다.

 

나만 맞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나만 옳다고 여기지 마시고요. 언제나 열린 귀를 가지고 열린 생각을 품으세요. 좌에서도 우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고, 높은 곳에서도 낮은 자리에서도 말씀하시는 주님을 기대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를 실천한 이가 있죠.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가난하거나 부하거나, 좋은 자리이거나 나쁜 자리이거나, 더 나아가 성공했거나 실패했거나 모든 곳에 하나님이 계심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떤 자리이든 연연하지 않았고 교만하거나 낙심하지 않았어요. 예배당에서도 찬양했고 감옥에서도 찬양합니다. 그러니 그에게는 제한이 없었죠. 어디든지 주님이 가라시는 곳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힘든 여정이어도 그곳에 주님이 계시고, 그것이 괴로운 고난이어도 필요하다면 뜻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바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삶이 아닐까요?   

 

우리에게는 옳고 그름이 너무 많습니다. 이게 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아래에서 살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그래서 하나님조차 우리의 옳고 그름 속에서 바라보고, 그분이 하시는 일조차 다 내 생각의 판단 아래서 평가하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조금 벗어나 보세요. 어디서든 주님이 계시고, 어디 있든 그곳에서도 주님이 역사하심을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마음을 열어두세요. 생각을 열어두세요. 귀를 열어두시고 눈을 열어두세요. 어디에도 치우치지 마시고 모든 것 위에 계신 주님의 음성에 나를 열어 놓으시면 좋겠습니다.

 

시편 139편

내가 주님의 영을 피해서 어디로 가며, 주님의 얼굴을 피해서 어디로 도망치겠습니까? 내가 하늘로 올라가더라도 주님께서는 거기에 계시고, 스올에다 자리를 펴더라도 주님은 거기에도 계십니다. 내가 저 동녘 너머로 날아가거나, 바다 끝 서쪽으로 가서 거기에 머무를지라도, 거기에서도 주님의 손이 나를 인도하여 주시고, 주님의 오른손이 나를 힘 있게 붙들어 주십니다. 내가 말하기를 "아, 어둠이 와락 나에게 달려들어서, 나를 비추던 빛이 밤처럼 되어라" 해도, 주님 앞에서는 어둠도 어둠이 아니며, 밤도 대낮처럼 밝으니, 주님 앞에서는 어둠과 빛이 다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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