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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여호수아서묵상

여호수아서묵상일기 100 - 우리가 묵상해야 할 것은 죄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여호수아서 23:7~8   당신들과 이웃한, 남아 있는 이 나라들과 사귀지 말며, 그 신들의 이름을 부르거나 그 이름으로 맹세하지도 마십시오. 그것을 섬기거나 경배하지도 마십시오. 오직 당신들은 지금까지 해 온 대로, 주 당신들의 하나님만 가까이하십시오.


좋은 아침입니다. 작년 8월부터 시작한 여호수아서 묵상이 어느덧 해를 넘어 100번째가 되었습니다. 처음 여호수아서 묵상을 시작하면 예감 같은 것이 있었는데요. 그것은 왠지 나에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말씀을 주실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예감은 너무도 정확했음을 느껴요. 여호수아서를 여러 차례 읽고 묵상한 적이 있지만 이번 묵상에서는 가장 큰 은혜와 깨달음을 주셨고 기쁨과 감사가 일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각 사람에게 필요한 은혜 주셨을 줄 믿어요. 다만 한 가지 짚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처음 시작이 기대일 때와 불안일 때는 엄연한 큰 차이를 가져온다는 사실이죠. 이 묵상을 매일 할 수 있을까? 아침에 시간을 낼 수 있을까? 이런 묵상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이런 생각으로 시작하는 것과 이 묵상을 통해 주실 말씀이 기대되고, 뭔가 달라질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심지어 설레며 기다려지는 시작은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낸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시작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어제 여호수아는 우리에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 말씀에 대한 보충 설명처럼 보이죠. 이스라엘과 이웃한, 그러니까 가나안에 살고 있던 이방인들을 말하죠. 그들과 사귀지 말라고 합니다. 또한 그들이 섬기는 신을 따르지 말라고도 하시죠. 이는 이방 문화에 젖어들지 말라는 명령이기도 합니다. 마치 이런 모습이죠. 경주마들을 보면 눈을 가리는 차안대를 찹니다. 양쪽 눈의 옆을 가리는 거죠. 이런 이유는 말이 곁눈질을 하거나 다른 곳을 보지 못하도록 해서 불안감을 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죠. 말의 눈은 동글고 커서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큰 각도로 다른 곳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에게 이런 모습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죠.

 

사실 우리는 다양한 문화와 세계관 속에서 살죠. 그곳에서 자신의 세계관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특별히 요즘 같은 다양한 매체와 정보의 홍수 속에서는 더욱 그렇죠. 분별과 상식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고 구별과 절제가 강하게 요구되는 현실입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십자군 운동처럼 이방 문화를 차별하고 원천 봉쇄하며 대립과 전쟁을 통해 승리의 군사들이 되어야 할까요? 눈 가리고 귀를 막고 살아야 합니까? 세상 문화는 다 악하다고 소리치며 교회에만 모여서 살 수 있을까요?

 

저는 이 부분에서 우리가 성경을 읽는 눈을 넓히는 지혜를 갖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두 가지 축이 있습니다. 부정과 긍정의 축이죠. 여호수아는 먼저 하지 말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부정을 축으로 하는 말씀이죠. 사귀지 말고, 섬기거나 경배하지 말라고 하죠. 그리고 다음은 긍정의 축인 말씀이 이어집니다. 하나님만 가까이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축의 말씀에 눈길이 가시나요? 어디에 더 마음이 가십니까? 보통 우리는 부정적인 것이 기초를 하는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데 익숙하죠. 뭐가 잘못이고, 뭐가 안 좋고, 뭐가 나쁘다는 말에 더욱 귀를 기울이죠. 말을 해도 남들을 칭찬하기보다 욕하는데 더 많은 관심을 보입니다. 덧붙이기보다는 잘라내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죠. 구약의 율법책에도 하라는 것보다 하지 말라는 말씀이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식해야 할 것이 있어요. 이미 몇 주 전부터 우리는 반복해서 말씀 나누는 것이 있죠. 그 율법을 주신 이유가 뭔가? 하는 말씀입니다. 왜 우리에게 하지 말라는 것이 많은지 그 궁극적인 이유에 대한 질문이죠. 그것을 우리는 이제 압니다.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해, 나의 잘됨과 결국엔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우리가 묵상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수많은 부정의 이야기가 아니라 마지막 긍정의 말씀이 우리가 추구할 묵상의 가치라고요. 

 

우리가 묵상해야 할 것은 죄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무엇을 하지 말라가 아니라 내가 해야 할 한 가지,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그것이 우리가 붙잡아야 할 가치입니다. 이웃과 사귀지 말라는 말씀보다 하나님과 가까이하는데 힘쓰라는 말씀이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이죠. 우리가 주님께 가까이 서고, 그분과 늘 동행하면 부정한 사귐은 사라지고 은혜로운 사귐이 따를 것이니까요. 뭐가 틀리니 뭐가 잘못되었느니 뭐가 나쁘다느니 이런 판단에서 벗어나 이제 우리는 뭐가 좋은지, 뭐가 예쁘고 아름다운지, 뭐가 더 나은지를 바라보며 살면 좋겠습니다. 그런 선한 마음에 성령께서 함께 하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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