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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여호수아서묵상

여호수아서묵상일기 93 - 조화의 능력으로 더욱 빛을 발하세요.

여호수아서 22:13~20   이스라엘 자손은, 엘르아살의 아들인 비느하스 제사장을, 길르앗 땅에 있는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동쪽의 므낫세 반쪽 지파에게 보냈다. 요단 강 서쪽에 자리 잡은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열 명의 대표가 비느하스와 함께 갔다. 그들은 각기 이스라엘의 천천만만 백성의 가문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길르앗 땅으로 가서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동쪽의 므낫세 반쪽 지파에게 말하였다. "주님의 온 회중이 하는 말이오. 당신들이 어찌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이런 악한 일을 하였소? 어찌하여 당신들이 오늘날 주님을 떠나서, 제멋대로 단을 쌓아 주님을 거역하였소? 우리가 브올에서 지은 범죄 때문에 주님의 회중에 재앙이 내렸고, 우리는 아직도 그 죄를 다 씻지 못하고 있소. 그것으로도 부족하단 말이오? 당신들은 오늘에 와서 주님을 따르지 않고 등을 돌렸소. 오늘 당신들이 주님을 거역하였으니, 내일은 주님께서 온 이스라엘의 회중에게 진노하실 것이오. 만일 당신들의 소유지가 깨끗하지 못하거든, 주님의 성막이 있는 주님의 소유지로 건너와서, 우리의 소유를 나누어 가지시오. 주 우리 하나님의 단 외에 당신들이 함부로 단을 쌓음으로써, 주님을 거역하거나 우리를 거역하지 마시오. 세라의 아들 아간이, 주님께 전멸시켜 바칠 물건에 대하여 큰 죄를 지어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 위에 진노가 내리지 않았소? 그의 죄 때문에 죽은 사람이 어디 그 한 사람뿐이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은 눈 소식이 있네요. 아직 눈은 내리지 않는 것 같은데 눈이 오면 길이 미끄러울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그리 기온이 낮아 보이지는 않은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오고 가는 길 늘 조심하시고 특별히 요즘 유행하는 감기 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밝은 얼굴로 세상의 짜증을 이기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오늘은 어제에 이어 한번 더 같은 본문을 묵상합니다. 이미 오늘 본문에 대한 내용을 말씀드렸죠? 르우벤과 갓, 므낫세 지파의 행위에 대한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의 반응이 오늘 본문의 골자입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들의 반응은 과잉이고 오해였죠. 어제 이 부분을 부정적인 측면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묵상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한 행동은 가치가 없는 일이었을까요? 오늘은 긍정적인 측면에서, 아니 이런 반응을 대하는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묵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어떤 공동체마다 저마다의 의견을 가진 이들이 있습니다. 때론 그런 다른 의견 때문에 분란이 일어나기도 하고 갈라지는 아픔을 겪기도 하죠. 사실 공동체라는 것이 한 목소리를 내는 곳은 아닙니다. 각각의 생명에는 저마다의 고유의 색깔이 있죠. 이들이 다 똑같은 소리와 색깔을 낼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 100%란 존재하기가 힘들죠. 똑같은 생명은 없습니다. 아무리 쌍둥이라도 다 달라요. 그런 다른 목소리와 색깔이 공동체에서 서로 섞이고 조화를 이루어서 새로운 소리를 낼 때 그것이 진짜 아름다움이 되죠. 물리적인 하나가 아니라 각기 다른 소리가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물인 우리에게도 다른 색깔을 주셨죠. 우리가 그분을 떠나 죄에 가까이 가는 것도 우리에게 다른 색깔이 있다는 증거죠. 그분은 우리에게 강제적으로 같은 색깔을 입히지 않으시죠. 가끔 이 부분이 짜증 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당신의 창조물이라면 죄를 짓지 않는 존재로 만드셔서 죄에서 해방을 얻게 하시면 될 일이라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죠. 고통이나 아픔을 못 느꼈다면 더 좋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런데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깊은 마음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그렇게 다른 색깔이 스스로 하나가 되는 것을 보고자 하신 주님의 생각이 그 기초라는 사실이죠.

 

헬라어에 [프라우스(πραΰς)]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온유'라고 번역된 단어죠. 온화하고 부드럽다는 사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본래는 야생말을 길들인다는 뜻이라고 하죠. 거친 야생말이 자신의 야생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에게 복종한다는 뜻이죠. 예수님은 스스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에는 당신께서 스스로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셔서 십자가의 길을 가셨다는 의미가 담겨 있죠. 그래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온유가 바로 조화입니다. 나의 색깔이 다른 색깔과 어울리게 하는 것, 서로가 서로를 빛나게 하는 것, 그렇게 조화를 이룬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무리 옳은 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내가 아무리 온전한 마음으로 행한 행동이라고 하더라도 누군가 불편하고 불안해한다면, 내가 조금은 속도를 늦추고, 기다려줄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나의 옳음만 강조하지 않고, 나의 진정만 호소하지 않고, 조금은 남을 기다려줄 줄 알아야 우리는 어깨동무하고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니까요.

 

나와 다른 의견이 늘 있습니다. 때론 나를 모독하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죠. 이로 인해 내 마음이 아프고 고통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다 잘 되자고 하는 소리일 수 있어요. 나를 위한 소리가 있죠. 나의 주장을 조금만 내려놓으면 다른 소리가 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때 거친 반대의 의견에도 내게 가치 있는 소리가 담겨 있음을 깨닫게 되죠. 그렇게 조화를 이룰 때 더 값지고 멋진 색깔을 낼 수 있습니다. 

 

다 잘하려고 하는 일이에요. 다 잘 되자고 다른 색깔을 내죠. 나를 더욱 빛내기 위해 내 주위에는 다른 소리가 있는 겁니다. 조화의 능력으로 더욱 빛을 발하니까요. 그렇게 나와 다른 이들과 조화를 이루어내는 능력이 그리스도인의 능력이죠. 죽음까지도 조화를 이루면 영원한 생명이 피어나는 법이니까요. 나와 다른 소리에 너무 힘들어하지 마세요. 그때는 내가 조화의 능력을 발휘하여 더 나은 성장의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색깔은 더욱 멋지고 화려해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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