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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여호수아서묵상

여호수아서묵상일기 87 - 곁에 말씀의 레위인을 두시면 어떨까요?

여호수아서 21:1~3   그때에 레위 지파의 족장들이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의 다른 지파 족장들에게 나아왔다. 그곳 가나안 땅 실로에서 레위 지파의 족장들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모세를 시켜서, 우리가 거주할 성읍과 우리의 가축을 먹일 목장을 우리에게 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의 명을 따라, 그들의 유산 가운데서 다음의 성읍들과 목장을 레위 사람에게 주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24년의 새날이 밝았습니다. 이 매일 묵상에 참여하는 모든 분을 축복하며 새해에 새롭게 부어주실 주님의 은혜와 은총이 모든 분께 임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0장은 도피성에 관한 내용이었음을 기억하실 거예요. 7절 이하는 도피성의 위치를 나열하고 있는데요. 그 부분은 묵상하지 않고 21장으로 넘어왔습니다. 먼저 20장의 도피성과 21장에 기록된 레위 지파에 관한 내용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기억하면서 오늘 본문은 바라보시길 원합니다. 21장은 레위 지파에 관한 내용으로 특별히 레위 지파에게 할당된 지역들을 기록하고 있죠. 그런데 기억하시겠지만 레위 지파는 분배된 땅이 없었습니다. 11지파와는 달리 레위 지파에게는 정해진 땅이 없었죠. 그런데 21장의 기록은 무엇일까요?

 

먼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레위 지파에 관하여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레위 지파는 야곱의 셋째 아들 레위의 후손들입니다. 그들은 특별히 선택되어서 제사장의 직분과 성전을 관리하는 직무를 맡았죠. 그들이 왜 선택된 것인지는 특별히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다만 광야시절 성막의 운반과 설치 등의 일을 도맡았고, 가나안 땅 정착 이후로는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를 돕거나, 문지기를 맡았으며, 성전의 제물을 관리하고, 더 나아가 일반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등의 사역을 했죠. 다시 말하면 그들은 일반적인 삶이 아닌 특별한 사역에 특화된 일을 부여받은 셈이죠. 그래서 일자리와 토지를 분배받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11지파의 제사와 영적인 일들을 돕는 것으로 그들은 다른 지파들의 후원을 받는 시스템이 마련된 것입니다. 그래서 각 지파들은 레위 지파에게 자신들의 땅의 일부를 제공하였고, 레위 지파의 땅은 다른 지파 전역에 걸쳐 48개의 성읍으로 나뉘었던 것입니다. 그중에 6개 지역이 도피성으로 만들어졌던 것이고요. 20장 하반절에 그 6개 지역이 기록되어 있고, 21장 하반절에는 48개 성읍의 위치가 기록되어 있는 것이죠.

 

레위 지파에 대한 묵상은 14장을 묵상하면서 한번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레위 지파를 둔 이유에 대해 11지파에게 감사의 제도를 두게 만드신 것이라고 말씀드렸죠. 자신들이 얻은 것에 대해 감사로 제사를 드리며 이웃을 돕는 일을 하는 축복의 비결을 제도화하신 것이라고 말이죠. 어쩌면 이 제도는 십일조 제도와 이웃 사랑의 제도의 기초가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와 달리 오늘은 그 레위 지파가 한 곳에 모여 산 것이 아니라 각 지파의 가까이에 흩어져 살았다는 것에 대해 주목하고자 합니다. 그러니까 레위인들은 각 지파와 함께 지근거리에서 함께 했다는 거죠. 조금 관점을 달리해서 각 지파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곁에 레위인을 둔 것이죠. 이는 말씀을 가까이하는 것과 같은 일이며 예배를 가까이했다는 것과 같은 말이죠. 

 

성막은 제도화된 성전이 아닙니다. 성막은 무척 간편하고 가벼웠어요. 이동이 자유로왔죠. 그 이유가 광야시절이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는 우리가 사는 삶의 자리에 성막이 같이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나의 삶과 예배가 구분되지 않았고, 나의 일과 말씀이 따로 놀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가는 곳에 성막이 있었고, 내가 하는 일에 말씀이 존재했다는 거죠. 이게 레위인들이 각 지파와 함께 살았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이 역할을 어떻게 해석하고 비교해야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말씀은 우리 삶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 예배는 우리의 삶 속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저는 불편하더라도 말씀의 잣대가 우리 가운데 거하길 기도합니다. 내 가까이 나를 견책하고 길을 인도할 말씀이 있기를 빌어요. 나의 삶이 드러나는 것은 참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가장 가까이에 적어도 단 한 명일지라도 말씀을 나눌 자, 말씀으로 나를 깨울 레위인을 두는 여러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에게 잘 보일 필요 없습니다. 목회자에게 교회에서 잘한다고 칭찬받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어요. 겉으로 그렇게 칭찬받아도 속으로 고통 가운데 있다면 그건 신앙생활이 아니라 그저 사회생활일 뿐이니까요. 내 깊은 문제들, 마음의 어려움, 믿고 길을 물을 수 있는 말씀이 언제나 우리를 깨우도록 곁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올해 여러분의 곁에는 정말 좋은 레위인이 자리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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