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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고린도전서묵상

고린도전서 133 - 지금 나의 자리를 인정하세요.

고린도전서 16:13~14   깨어 있으십시오. 믿음에 굳게 서 있으십시오. 용감하십시오. 힘을 내십시오.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십시오.


좋은 아침입니다. 벌써 금요일 아침입니다. 한 주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로 후딱 지나갔습니다. 그 와중에 최선을 다하고 수고를 다하신 모든 분께 박수를 보냅니다. 어려운 시절, 나에게 주신 삶에 충성을 다하고, 보이지 않는 그분의 손길을 느끼며 감사와 찬양을 아끼지 않는 여러분의 믿음을 축복합니다.

 

어제 깨어 있으라에 이어 오늘 말씀은 믿음에 굳게 서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어제 책상 앞에 '무슨 일이 있어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문장을 적어 놓았습니다. 기대를 잃으면 믿음을 잃는 것이고, 기대가 없으면 하나님도 내 안에 안 계시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내게 기대가 얼마나 중요하고 값진 것인지를 깨닫고 새기기 위해 적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주시는 말씀도 적어 놓으려고 합니다. 어쩌면 5가지의 명령이 제게 주신 말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제 인생에 기억하고 또 기억할 말씀으로 삼으려고 해요.

 

기대와 믿음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바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기 때문이죠. 바울은 그 믿음 안에서 굳게 서 있으라고 말합니다. 이는 다른 말로 믿음을 의심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굳게 서라는 말씀은 흔들리지 말라는 뜻이기 때문이죠. 

 

의심이라는 것이 신기합니다. 의심이 생기면 의심할 일들이 선명하게 펼쳐집니다. 의심이 내 마음에 자리하면 모든 것이 이상하고, 모든 것이 수상하죠. 게다가 유독 의심스러운 일들이 잘 보입니다. 의심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 그것이 더 잘 보일 수밖에요. 내가 관심이 있는 것들이 있으면 유독 그것이 더 잘 보입니다. 내가 입은 옷과 똑같은 사람들이 더 눈에 잘 띄고, 내가 산 자동차가 갑자기 길거리에 더 많은 것처럼 보이죠. 내 마음에 들어와 있는 것, 생각하는 것들이 더 눈에 잘 띄는 법입니다. 그러니 의심을 품으면 의심의 잔상들이 남는 법입니다. 수백, 수만 가지의 합리적인 자료들은 눈에 보이지 않고 저 구석, 먼지가 쌓인 찾기도 힘든 의심의 자료들은 마치 빛이 나듯 보이죠.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좋은 것을 찾으면 수천, 수만의 잘못된 것 가운데서 좋은 것을 골라내는 신기한 능력이 생기죠. 만약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면 어떨까요? 혹시 여러분은 어떤 능력을 갖기 원하십니까? 의심을 해서 의심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능력을 원하시나요? 아니면 수많은 나쁜 것 중에 밀알만큼 작은 좋은 것을 찾아내는 사람이 되길 바라시나요? 감이 잘 안 오시면 우리 가족, 우리 자녀들의 예를 들어보죠. 여러분은 자녀에 대해 많은 좋은 것 중에서 안 좋은 것, 안 좋은 버릇, 안 좋은 습관을 찾아내고 그것을 지적질하며 고쳐주는 부모이길 바라십니까? 아니면 많은 안 좋은 것 가운데 작은 재능, 눈곱만 한 장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키워주는 부모가 되길 바라시나요?

 

많은 사람들이 긍정에 대해서 오해합니다. 긍정이라는 것이 안 좋은 것을 좋게 보는 것쯤으로 여기죠. 실제 좋지 않은데 좋지 않은 것을 좋은 것으로 보는 건 긍정이 아니라 왜곡입니다. 돌 덩어리를 보며 금덩어리다 금덩어리다 생각하면 그것이 금덩어리가 되나요? 그것은 최면이죠. 우리는 긍정을 그런 왜곡이나 최면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로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라고 하면 아무런 노력도 없이 좋아질 거야 좋아질 거야 하면서 최면을 거는 경향이 다반사죠. 

 

그런데 긍정이라는 것은 어떤 것을 좋게 보는 것만이 아닙니다. 긍정의 사전적인 의미를 보면 '그렇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죠. 나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하신 일, 그분의 창조의 권세와 주권, 섭리와 계획을 인정하는 것이 긍정입니다. 나를 이렇게 만드신 것을 인정하는 것이 긍정이고, 나의 처지를 이렇게 두신 것을 인정하는 것이 긍정인 거예요. 그러니까 긍정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근본 의미인 셈이죠.

 

하나님이 광야로 인도하시면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긍정이고,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지게 하시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임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의 기초입니다. 그것을 부정하고, 삶을 부정하고, 나의 나됨을 부정해서 얻어지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도 광야를 걷게 하신 당신의 뜻을 인정할 때 주어지는 것이고, 부활의 신비로운 축복도 억울함과 당혹스러운 십자가의 길을 인정하고 걸었기에 주어지는 것이죠. 

 

믿음에 굳게 서는 것은 지금 나의 자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것을 다 감사함으로 받는 것이고요. 주님이 지금껏 하신 일이 나를 위해 하신 일임을 긍정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인생이 가나안으로 출발하는 것이죠.

 

오늘 나를 인정하세요. 주어진 삶을 인정하고, 나의 처지를 긍정하세요. 다 이유가 있고, 다 뜻이 있으며, 다 하나님 섭리 안에 있음을 인정할 때 믿음은 굳게 섭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뿌리가 자라고,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열매를 맺게 될 거예요. 우리의 열매는 지금 나의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우리의 축복은 이미 나에게 주신 주님의 자리에 임하죠. 그래서 오늘은 내 주위, 내 삶, 내 직장과 가정, 내 살아온 과정들을 축복하고 감사하며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나여서 좋다고요. 지금의 나여서 감사하다고요. 그것이 믿음의 출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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