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묵상하는말씀/고린도전서묵상

고린도전서 132 - 기대는 행동입니다.

고린도전서 16:13~14   깨어 있으십시오. 믿음에 굳게 서 있으십시오. 용감하십시오. 힘을 내십시오.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십시오.


좋은 아침입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부흥회 같은 것이 많았습니다. 강사 목사님들 가운데는 호응을 이끌기 위해 대중의 아멘을 이끄는 분들이 계셨죠. 그중에 가장 기억나는 것은 '아멘 한 분들에게만 축복이 임하길 원합니다'라는 말이었어요. 저는 그 부분이 늘 불편했습니다. '꼭 입으로 말해야 되는 건가?' '버릇처럼 말하는 사람에게도 복이 있다는 건가?' 뭐 이런 쓰잘데기없는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상하죠?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살면서 느낍니다. 방법은 유치할지언정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하고, 또 선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힘이 있는지 알게 됩니다. 아마 오늘도 좋은 아침!이라고 외치며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그들은 표정도 마음도 기분도 다를 것입니다. 유치하게 뭐 그런 말을 하나?, 무슨 대단한 것이 있다고 세면대 거울 앞에서 나에게 미소를 짓나? 그런 생각을 가진 이들과는 다른 시작을 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하죠. 먼저 인사하세요. 먼저 손 내미시고요. 먼저 사랑하세요. 이는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시간, 나의 길을 개척하는 것임을 명심하세요. 그렇게 오늘을 만들어가는 여러분들을 축복합니다.

 

고린도전서가 얼마 안 남았습니다. 13절부터는 마지막 당부와 인사가 이어지죠. 그중 13~14절은 짧은 당부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짧고 간단하지만 단호한 명령처럼 보이는 말씀이죠. 이 구절에는 총 5가지의 동사가 등장합니다. 이는 '깨어 있으라' '믿음에 굳게 서라' '용감하라' '힘을 내라'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하라'입니다. 이 구절을 뭉뚱그려 묵상하기에는 이 5가지 명령들이 가슴에 박힐 만큼 중요하게 다가왔습니다. 적어도 첫 구절, 그러니까 깨어 있으라는 말부터 가슴을 쳤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대로 이 5가지 명령들을 하나씩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어디선가 들은 예화입니다. 어느 집에 일란성쌍둥이가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 쌍둥이는 모든 것이 신기할 정도로 닮았다고 해요. 딱 한 가지만 빼고 말이죠. 그것은, 하나는 희망에 가득 찬 매우 낙천적인 아이여서 모든 것을 밝게 바라보는 반면에 다른 하나는 매우 우울한 비관론자여서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았다는 것뿐이었습니다. 부모는 이 다른 점이 걱정이 되어서 의사를 찾아갔답니다. 그랬더니 의사가 한 가지 계획을 제안하더래요. 그것은 돌아오는 아이들의 생일 때 부정적인 아이에게는 최고급 자전거를 선물로 주고, 낙천적인 아이에게는 동물 사료 한 상자를 선물로 주라는 제안이었죠. 그런 차별을 하는 것이 부모로서는 어려웠지만 의사의 제안대로 부모는 했답니다. 그랬더니 최고급 자전거를 생일선물로 받은 아이가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자전거 타다 사고가 나서 다리가 부러질 거야!"

 

낙천적인 아이는 생일선물이 담긴 사료 상자를 열어보고는 순간 당황했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밖으로 뛰어나가면서 소리를 치더래요.

 

"사료가 이렇게 많다면 분명히 밖에 조랑말이 있을 거야!"

 

깨어있으라는 말씀은 단순히 잠에서 깨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지속적인 상태를 말하죠. 그러니까 잠을 안 자는 거죠. 어떻게 잠을 안 잘 수 있습니까? 그러니 잠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이 말을 해석해야 하는 거죠. 어쩌면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과 연결될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쉬지 않고 기도합니까? 그러니 우리는 골방이나 어떤 특정한 장소, 특정한 태도의 기도를 넘어 기도를 해석해야 가능하듯이 말이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깨어 있으라는 바울의 주문은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분이 이루실 일, 그분이 이끄실 삶, 그분이 예비하실 집을 기대하라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이 기대가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원하는 것이 있고, 바라는 것이 있죠. 잘 되기를 바라고 잘 살기를 바랍니다. 행복하길 원하고 평안에 거하길 기도하죠. 그런데 바람이 기대가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냥 바라는 것일 뿐입니다. 마치 사과나무에 열린 사과를 보면서 먹고 싶다고 생각할 뿐이죠.

 

'어떻게 되나 보자', '그렇게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는 기대가 아닙니다. 정말 간절히 바란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는지는 분명합니다. 내가 낫기를 바란다면 저절로 기도하게 될 것이고, 찾고 얻기를 원한다면 거리를 마다치 않고 교회로 가서 엎드리게 될 것입니다. 단잠을 뒤로하고 새벽을 깨우며 일어나게 될 것이고, 기꺼이 목사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게 될지도 모르죠. 기대는 행동입니다. 기대는 동사예요. 기대는 사후적 감정이 아니라 사전적 행동입니다. 주실 것을 믿는 것이고, 옳은 길로 인도하심을 확신하는 거죠. 비록 지금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을지라도 반드시 해가 비칠 때가 올 것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고, 아니, 비가 올 때, 흐리고 어두컴컴할 때 오히려 해를 기다리며 웃을 수 있는 것이 기대입니다.

 

기대를 놓치면 잠자는 거예요. 기대가 없다면 믿음도 사그라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깨어있음은 바로 늘 기대에 차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좋은 날을 기대하고, 좋은 만남을 기다리며, 나를 성장시키고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실 것을 기대하는 자만이 그 은혜를 만끽하고 축복을 얻습니다. 늘 기대하세요. 늘 기대로 깨어 있으십시오. 기대하는 자에게 분별력이 있고, 기대하는 자가 홍해를 가릅니다. 기대하는 자에게 가나안이 주어지고, 기대하는 자만이 앞을 볼 수 있습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