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묵상50 - 외로운 길을 가는 자에게 은혜의 샘물이 있음을 기억하세요. 사사기 15:14~20

2019. 9. 11. 07:20묵상하는말씀/사사기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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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삼손의 나귀 뼈 전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에게 무기는 나귀 뼈였습니다.
그리고 천 명이나 되는 블레셋 사람들을 전멸시키는데요.
새번역에서 천 명으로 번역된 단어는 본래 단위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액면 그대로 번역하면 한 부대인 셈이죠.
사사기에 나오는 3,000명이니 13,000명이니 하는 것은 대부분 단위별 구분을 말합니다.

어찌 보면 대단한 전투입니다.
1:1,000의 싸움이니까요.
가끔 무용담을 들으면 ‘10명과 싸웠다’, ‘20명과 싸웠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
그런 말 들을 때 보통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죠.
일당 백이라는 말도 있는데, 사실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죠.
그러데 삼손은 일대 천이잖아요.
이게 전쟁사에 또 있을까 싶을 만큼 엄청난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요.
성경은 이 장면을 굉장히 간단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마치 아주 간단하고 쉬운 일처럼 말이죠.
이런 놀라운 일이 이루어진 이유는, 아마도 주님의 영이 함께 했다는 말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14절에서는 주님의 영이 그에게 내렸다고 기록하고 있죠.
그것도 ‘세차게’라는 표현을 써 가면서 말이죠.
이미 말씀드렸죠?
구약의 성령은 주로 능력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요.
신약의 성령은 주로 인격의 문제를 다루고요.
그러니까 삼손에게 임한 성령은 그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데 사용되었을 거예요.
물론 삼손의 인격은 본받을 만하진 않습니다.
지금껏 삼손은 하나님의 은혜라거나 도우심을 한 번도 입으로 시인한 적이 없었거든요.
마음까지 그랬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성경에 기록이 없어요.
물론 오늘 본문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듯하죠.
그는 18절에서 "주님께서 친히 이 크나큰 승리를 주님의 종의 손에 허락하셨습니다.”라고 해요.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 고백이 진짜 순수한 고백인가 싶기도 합니다.
제 귀에는 마치 이런 식으로 들리거든요.
“아버지 아들이 고생하는 꼴 아버지 볼 수 있어요? 그러기 싫으면 나 도와줘요”
돈 많은 집 자식이 핏줄을 미끼로 아버지 협박하듯 말이죠.

저의 모습도 여기서 다른 것이 없는 것 같아요.
주님을 위해 쓰임 받기보다, 나의 일을 위해 주님을 쓰려고 하는 모습 말이죠.
‘하나님이 하셨다’고 하면서 사실은 내 일을 하고 있는 내 모습 말입니다.
정작 내 자랑, 내 욕심 채우면서 주님의 은혜를 갈구하죠.

그런데 문제는, 그럼에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곡해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내 욕심대로 해도 주님께서 은혜 주신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아직 성숙하지 못한 삼손에게 은혜 주시는 이유를 봅니다.
그것은 다시 나귀 뼈 전투로 돌아가야 해요.
나귀 뼈 전투는 일당 천의 싸움이라고 했죠.
짧은 기록이지만 생각해 보면 엄청난 싸움이라고도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이 짧은 기록에서 저는 삼손의 외로움을 보았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는데 삼손은 혼자입니다.
자신을 넘겨준 유다 사람들은 저 멀리 구경만 하죠.
마치 미친 짓이다라고 손가락질하며 곧 죽을 삼손을 상상하면서 말이죠.
저는 이 장면이 너무 외로워 보였습니다.

주님의 길을 가는 것이 사실 참 외롭습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 많고, 때론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주님을 따르는 것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비웃음이 되기도 하죠.
주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다짐하면 주변의 놀림들이 있습니다.
‘어디 잘하나 보자’에서부터 ‘그게 되겠냐?’에 이르기까지…
심지어는 대충 하라는 사람들의 충고도 있습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라는 말이 과연 가당키나 합니까?
남의 구원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것이 과연 가능키나 한가요?
낮아지고, 섬기고, 나를 통해 남들에게 은혜를 전달한다는 말이 과연 믿어질까요?

어쩌면 삼손은 그 외로운 길을 걷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힘을 믿었든, 아니면 무모한 생각을 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든 상관없습니다.
그는 가야 할 길을 가지 않는 사람들을 대신해 외로이 길을 갑니다.
마치 예수께서 십자가 골고다의 길을 가시는 것처럼 말이죠.
그 길에는 그를 따르던 수많은 사람들, 제자들은 없었습니다.
오직 홀로 그 길을 걸으시죠.

어젯밤부터 비가 오네요.
창문 너머로 찬바람이 느껴집니다.
밝아오는 밖을 보면서 오늘도 홀로 주님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드네요.
주님의 길을 가는 것은 늘 외롭다고요.
좁은 길은 가는 이들이 적어 외롭듯이 말이죠.

오늘도 외로운 길을 가는 여러분들을 축복합니다.
그 길을 가는 자에게 은혜의 샘물이 있음을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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