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9. 07:09ㆍ묵상하는말씀/사사기묵상
굳이 내용을 설명드리지 않아도 돌아가는 상황을 아시겠죠?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수수께끼의 비밀이 샌 것을 알고는 배신감에 난장질을 했는데요.
이제야 그 자리가 결혼식 자리인 것을 깨달은 모양입니다.
아내가 어떻게 되었는지 그제야 생각났던 거죠.
그래서 아내를 찾아갑니다.
그 난리를 치고도 말이죠.
여기서 삼손이 지닌 성격의 단면을 봅니다.
그는 매우 다혈질이었던 것 같아요.
눈이 돌면 뵈는 것이 없는 성격이었던 거죠.
소위 욱하는 성질이었던 겁니다.
욱하는 기질에는 특성이 있어요.
일단 특별한 자기만의 포인트가 있습니다.
마치 역린을 건드리는 듯 남들과 다른 격분의 포인트를 가지고 있죠.
그래서 가늠하기가 힘들어요.
이것은 어쩌면 스스로가 심판관이 되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도 몰라요.
모든 결정을 자신이 해 버리죠.
이럴 것이다는 판단에 따른 욱함이기 때문입니다.
남들의 변명이건, 남들의 처지건, 일절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신의 판단이 맞다는 전제하에 일단 성질을 부리고 시작하죠.
뿐만 아니라 욱할 때는 다른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죠.
물론 그 집중력은 자신의 판단과 심판에 국한되죠.
어떤 말도,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것이 욱하는 성질입니다.
더 신기한 것은 이런 사람이 시간이 지나고는 나중에 후회가 심하다는 점이에요.
욱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의외로 여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상 떠나갈 듯 욱하다가 급 우울해지고, 급 꼬리를 내리는 사람들이 있죠.
아무튼 삼손은 욱하는 성격을 지닌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욱하는 성질은 멈추질 않는다는 점이죠.
욱하다 급 꼬리를 내리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꼬리를 내리다가도 급 욱하는 것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종잡을 수가 없는 거죠.
오늘 본문이 딱 그렇습니다.
아니 그런 난리를 쳤는데 혼사가 완료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더 이상하지 않습니까?
분명히 삼손은 아내의 집을 찾아갈 때 사과를 하고 싶었을 텐데요.
아마도 그러면 자신을 용서해 줄 것이라고 예측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자신의 뜻대로 아내를 만날 수 없자 돌아버립니다.
또 욱하죠.
욱하는 사람들을 보면 세상이 자신의 뜻대로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 같아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늘 욱하니까요.
그런데 세상이 늘 내 뜻대로 돌아가야 합니까?
세상의 중심이 꼭 나여야 하나요?
내가 용서를 빈다고 다 받아줘야 하나요?
내가 예배한다고 다 하나님은 받으셔야 합니까?
용서해 주는 것은 그 사람 몫이고, 나의 몫은 단지 최선을 다해 용서를 구하는 것뿐이잖아요?
예배를 받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고, 오로지 나는 최선을 다해 예배하는 것이 내 몫이고요.
욱하지 마세요.
기분 내키는 대로 나의 행동을 놔두지 마세요.
세상은 내 기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니 욱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묻고, 인내하며 기다림이 필요하죠.
내가 할 수 있다고 그냥 다 하지 마세요.
힘이 있다고 자랑하지 마시고요.
참고로 욱하는 성질은 나쁜 데만 사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헌신을 하는데도 욱하는 성질이 쓰여요.
좋다면 모든 것을 쏟아붓죠.
은혜받으면 마치 자신의 몸을 태울만큼 열정적이기도 하고요.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것이 은혜에 따른 감사의 표현이 아니라 자신의 욱하는 성질에 기반한다면,
그 헌신은 곧 사그라들 거예요.
감정의 기복이 심한 종잡을 수 없는 삼손처럼 말이죠.
그러니 기분 따라 살지 마세요.
기분 따라 신앙생활하지 마세요.
신앙생활은 기분과 상관없이, 마음과 상관없이 우리에게 어김없이 찾아오는 아침처럼, 늘 일정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우리를 욱하게 만드는 많은 일들이 있을 거예요.
행동한다고 욱하는 성질이고,
행동이 없다고 욱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행동하는 사람은 힘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고요.
행동하지 않은 사람은 단지 힘이 없었을 뿐입니다.
대신 속으로 복수심에 불타죠.
언젠간… 하면서 말이죠.
욱하는 순간은 어쩔 수 없어요.
문제는, 그 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입니다.
욱하는 나의 기분에 응답하지 마세요.
가만히 버려두지 마세요.
그 순간, 찬송하세요.
그 순간, 기도하세요.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세요.
나의 욱한 성질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구원은 하나님께만 있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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