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9. 25. 11:17ㆍ묵상하는말씀/민수기묵상
민수기 10:29-36 우리의 가족과 친척들의 범위를 넓히십시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이제 광야의 길에 나섭니다.
그때 모세는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같이 길을 갈 것을 요청하죠.
그냥 평범한 본문인 것 같은 오늘 본문은 의외로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킵니다.
바로 이 '호밥'이라는 인물 때문이죠.
아시다시피 모세의 장인은 '이드로'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오늘 본문에서는 '호밥'이 장인으로 등장하죠.
논란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이드로'의 다른 이름으로 '르우엘'이라는 이름이 등장하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이에 따르면 '르우엘'과 '이드로'는 같은 인물인 셈인데요.
'르우엘'의 아들로 '호밥'이 등장하고, 또 그가 모세의 장인으로 등장하니 헛갈리는 것이죠.
그래서 히브리어에 장인과 처남이라는 뜻의 단어가 같은 어원을 가진 것에서 착안해 '호밥'을 처남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요.
자세한 사실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우리는 성경을 읽다보면 이런 문제들 앞에 종종 놓입니다.
그때 우리의 시선을 잘 정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사소한 오류들이 있습니다.
오류가 있다고 하면 성경 무오설을 주장하는 분들의 강한 저항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소한 오류라고 말한 것은 성경이 잘못되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성경은 주님의 지혜와 계시로 된 말씀임을 저 또한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말씀을 우리의 말로 옮기는 과정에서는 해석의 여지가 있는 부분들이 많다는 것이죠.
같은 단어를 가지고도 여러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에 한정한 오류임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중요한 점은 호밥이 장인이든, 처남이든, 그가 모세의 요청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가 요청을 받았을까요?
그는 광야에서 오랜동안 생활한 광야를 잘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호밥은 그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이유는 그의 집안이 이스라엘과 함께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미 이집트에서 살았던 이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던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사는데 이미 익숙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과 함께 할 이유가 없었죠.
그러나 모세는 간청을 합니다.
그들이 광야를 잘 아는 이들이었기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죠.
오늘 본문에는 호밥의 집안이 모세와 함께했다는 결론은 없습니다.
다만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에 관한 다른 본문들에서 겟족속의 이야기가 있는 것을 보면 모세의 요청에 응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본문에서 2가지 사실이 묵상되었습니다.
첫째는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호밥의 족속들은 이스라엘의 민족을 떠나 광야에서 사는 것이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의 그들의 삶은 맨땅에 헤딩하는 삶이었을테지요.
어쩌면 어쩔 수 없이 사는 광야의 삶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광야의 삶이 있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 날을 위함이었던 것이죠.
우리의 삶에도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평가하기는 이를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우리도 이 때를 위함이었음을 알게 되는 때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호밥에게 친척의 범위가 넓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친척과 고향을 위해 살기를 원하죠.
아마도 그는 자신의 족속의 수장으로 해야할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를 통해 하나님은 호밥에게 더 넓은 친척과, 더 본질적인 고향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에게 가족과 친척은 겟족속을 넘어 이스라엘에 미치고,
그의 고향은 광야가 아닌 하나님이 말씀하신 땅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아시다시피 우리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우리는 지켜보았습니다.
급속히 가까워지고 있는 남북간의 관계를 보며 통일의 꿈, 하나되는 꿈이 꾸어집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 가운데 이런 마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만 잘 살면 되지, 통일비용으로 우리가 고생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 말이죠.
이 아침에 저는 꼭 이 말씀이 우리 민족에게 하는 말씀처럼 들렸습니다.
너의 친척과 가족을 범위를 넓히라고 말이죠.
나의 가족에서 민족으로, 남녘동포에서 남북동포로, 남녘 땅에서 한반도로 말입니다.
어제 추석에 한가족이 모여 즐거운 시간 보내셨나요?
그들이 우리의 가족이죠.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들을 넘어 너희 가족을 넓히라고 말씀하십니다.
‘홀로’에서 ‘더불어’로 나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나’에서 ‘이웃’으로, ‘나의 유익’에서 ‘하나님의 뜻과 나라’로 시선을 넓히는 것이 신앙이라고 말이죠.
그리스도의 신앙을 힘입어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남녘 땅의 동포들이 북녘의 동포를 위해 쓰임받을 꿈을 꾸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고향이 남녘만이 아니라 북녘까지 한반도 전체임을 선포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민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기도로 그 일들이 시작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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