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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마태복음서묵상

열매가 뿌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열매를 결정합니다.

2013.1.28.묵상 (마7:15~23)
열매가 뿌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열매를 결정합니다.



1.
사람은 앞뒤를 뒤바꾸는 특별한 재주가 있습니다.
어떤 상황, 어떤 말이라도 자신의 입장으로 뒤바꾸는 재주 말입니다.
오해나 곡해라는 것은 거기서 비롯되는 것이죠.
똑같은 상황, 똑같은 일이어도 입장과 주장에 따라 달라지니 말입니다.
그래서 진리가 중요한 것입니다.

2.
우리는 진실이라는 말을 잘 쓰는데요.
저도 참 좋아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둘은 입장과 진영의 논리에서 벗어나 바라보자는 취지에서는 같지만,
또, 참이 무엇인가를 찾는 관점에서는 같지만
어디서 그것을 찾느냐 에서는 진실과 진리 이 둘은 완전히 다릅니다.
진실은 현상, 즉 열매에서 찾지만,
진리는 뿌리에서 찾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를 묵상할 때마다 저는 늘 관점이 열매에 있었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는 좋은 나무라는 정의아래서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좋은 열매를 가름할 능력이 없더라고요.
세상이 좋아하면 좋은 열매일까요?
세상이 인정하면 좋은 열매일까요?
비근한 예이지만 어느 교회에서 교육목사로 섬길 때의 일입니다.
교회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의 자제가 학교에서 공부를 잘했던 모양입니다.
그와 그 집안은 소위 일급대학에 소망을 두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자녀가 교회를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결국 원하는 일류대학에 갔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대대적으로 이 사실을 홍보했습니다.
그 때 느낀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좋은 열매라고 결정하면 순식간에 좋은 나무가 되는 것이구나!"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해괴한 법 논리처럼,
성공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것이 이 사회의 논리죠.

4.
이 본문의 요지를 다시 새겨봅니다.
우리는 열매를 뿌리를 평가하려고 합니다.
열매는 보이고 뿌리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진리는, 뿌리가 열매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에도 이 비유에 대한 구절이 소개되고 있습니다.(눅6:43~45)
거기에서는 나무와 열매의 관계를 입의 말과 마음의 관계로 해석합니다.
우리 눈에 좋은 열매가 좋은 나무가 아니라
좋은 뿌리를 둔 나무가 좋은 나무입니다.
그 열매가 우리 눈에 어떻게 보이든 상관없습니다.
그 열매가 우리 눈에 저주를 받고 손가락질 받는 죽음의 십자가여도 상관없습니다. 
그 열매가 우리 눈에 돌을 맞고 비참하게 죽는 최후여도 상관없습니다.
좋은 뿌리를 둔 나무만이 좋은 나무입니다.
좋은 뿌리에서 나온 열매가 좋은 열매입니다.

5.
우리 눈에 좋아 보여도 나쁜 뿌리에서 나온 열매는 나쁜 것입니다.
'열매를 맺다'라는 뜻은 '그 뿌리를 따랐다'는 뜻입니다.
'맺다'라는 표현의 헬라어 [포이에오]는 본래 '행하다'라는 의미입니다.
21절,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행하다가 바로 이 단어입니다.
24절도 26절도 같은 단어가 나옵니다.

6.
믿음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에 뿌리를 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비록 그 열매가 세상이 인정해 주시도, 박수쳐주지도,
더 나아가 비난하고 돌을 던질지라도,
그 열매는 반드시 하나님의 열매라는 사실입니다.
때론 열매를 맺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때론 과실이 시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께 뿌리를 두는 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은 반드시 열매를 두십니다.

7.
나 같은 연약한 자를 통해서도 열매를 두시겠죠.
열매에 연연하지 않고
오늘 나는 하나님의 터전에, 뜻에 뿌리를 두는데 집중하겠습니다.
그 길만이 세상에 미혹당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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