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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마태복음서묵상

기도는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사역입니다

2013.1.22. 마태복음6:9,
[기도는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사역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취하시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여 주여" 외쳐도 주님은 모른다 하실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분명 하나님의 기준은 외형적이나 형태적이 아닌 무언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신앙의 깊이를 곧잘 드러나는 행위로 판단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무엇을 했는지, 내가 무엇을 이루었는지가 판단의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새벽기도를 하루도 빠지지 않은 것,
주일을 성수하고, 십일조생활을 건실히 한 것들이 신앙 깊이의 척도가 되기도 합니다.
이 같은 행동은 매우 중요합니다.
신앙이 없이는 할 수 없는 행동이고,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교회에서는 직분자를 선정할 때 이 기준을 따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외형적이나 형태적인 것이 아닌 
무언가 다른 기준을 갖고 계시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소위 종교인과 하나님의 자녀를 구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종교인들이라고 책망하실 때가 많았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면서도 종교인이라 구분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종교를 갖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나를 위해 신의 위대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종교인이란, 
"자신을 위해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이유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이유도 모두 ‘자신을 위해서’ 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의 신앙은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내가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순종이 중요한 신앙의 덕목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자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는 헬라어로 이렇게 시작합니다.
[파테르 헤몬...]
‘우리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기도는 온전히 개인적입니다.
그런데 그 기도가 '나의 아버지'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사역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기도를 개인의 무기로 삼을 때가 많습니다.
기도를 마치 자신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고 쓸 때가 있습니다.

오늘 저는 5일간 기도의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제가 아는 분들, 기도해야할 동역자들과 
공동체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들어갑니다.
기도가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사역으로 주셨기 때문에
그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비단 목사만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있는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도록 부름 받은 존재입니다.
하나님께 "우리"를 올려드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께 "우리"를 부르짖는 것이 기도입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133:1)
하나님이 보기 원하시는 모습입니다.
우리의 하나님께 우리의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 바로 이 모습입니다.

기도는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사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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