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묵상35]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분의 이름을 내 마음판에 새기는 것입니다.(신10:12~22)

2012. 8. 22. 09:43묵상하는말씀/신명기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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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례라는 표현은 성경에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할례는 의학적으로는 환상절제술(Circumcision)이라 불리는데 남성의 생식기 표피를 잘라내는 시술을 말합니다. 일명 포경수술이라는 말로 더 익숙한 의료행위입니다. 오늘날 학계에는 그 필요성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이 의료행위가 우리에게 더 주목을 받는 이유는, 할례에 담긴 종교적 의미 때문입니다. 창세기 17장에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지킬 언약으로 할례가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99세에, 당시 13세였던 아들 이스마엘과 함께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 이후 할례는 유대인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할례의 영어 표현인 Circumcision은 'cut around'라는 뜻의 라틴어 [CIRCUMCISIO]에서 왔습니다. 히브리말로는 [브릿트 밀라]라고 하는데, ‘브리트’가 계약(언약)이라는 뜻이고, ‘밀라’는 할례라는 뜻이니까 정확한 표현은 “계약(언약)의 할례”가 되는 것이죠. 유대인에게 할례 의식이 중요했던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몸에 새기는 의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생후 8일째 되는 날 할례 의식을 행했습니다. 그날은 너무도 중요해서 혹 안식일일지라도, 혹은 대속죄일일지라도 할례 의식을 행했습니다. 할례 의식 전날 밤, 아버지는 밤새 아이를 위해 성경을 읽었고, 하객들이 모여 축하파티를 했습니다. 이것을 유대인들은 [샬롬 자코르]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요한 언약들이 있습니다. 창세기 9장에는 하나님께서 무지개의 언약을 주십니다. 이것은 ‘자연’에 새기신 하나님의 사랑의 언약입니다. 출 31장의 안식일 언약은 우리들의 ‘시간’에 새기신 언약이고, 할례는 우리 ‘육신’에 새기신 언약의 증표입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우리 몸에 새겨진 하나님의 흔적인 셈입니다.

 

그러나 원래 할례는 이렇게 내외적인 정결의 표시였지만 시간이 가면서 사람들은 할례를 단순하게 유대인의 표시, 즉 종교적 우월감을 과시하는 표상으로 잘못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 남아있는 선민사상은 단순한 민족적 우월감의 발로입니다. 그것은 할례의 정신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2:28에서 “겉모양으로 유대 사람이라고 해서 유대 사람이 아니요, 겉모양으로 살갗에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할례가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육신에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진정한 할례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연이어 이렇게 말씀합니다. “율법의 조문을 따라서 받는 할례가 아니라 성령으로 마음에 받는 할례가 참 할례입니다.”(롬 2:29)

 

우리에게도 교회를 다닌다는 것만으로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은 교인일 뿐, 제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겉사람으로는 교인이지만, 겉모양으로는 신자이지만, 그것이 하나님께 칭찬받는 조건은 아닙니다. 교인으로써 해야 할 도리를 다 하고, 종교적인 관습과 제도를 다 따르는 것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는 전제 조건일 뿐, 그것이 제자로 만들어주는 핵심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 안에서 여러분도 손으로 행하지 않은 할례, 곧 육신의 몸을 벗어버리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또한 그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습니다.”(골 2:11~12) 세례는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의 할례입니다. 육신의 할례는 나의 살을 잘라내는 것이지만 세례는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 세례가 바로 마음의 할례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육신의 증표가 아니라 마음의 증표입니다. 육신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육신을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헌신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지, 육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에서 출발한 헌신은, 부르르 끓어 타오르다가 어느새 푹 꺼져버리는 냄비처럼, 언젠가 지치고 번 아웃됩니다. 육신에서 출발한 헌신은 마음껏 폼 잡고, 뽐내고 잘난 체하다가, 어느새 스멀스멀 피어오른 교만이라는 괴물에 의해 덥석 잡아먹히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잠 3:3)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분의 이름을 내 마음판에 새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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