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서묵상일기 254 - 충성된 자에게는 반드시 축복이 있습니다.
2025. 3. 23. 11:00ㆍ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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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서 12:35~38 "너희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놓고 있어라. 마치 주인이 혼인 잔치에서 돌아와서 문을 두드릴 때에, 곧 열어 주려고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되어라. 주인이 와서 종들이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이 허리를 동이고, 그들을 식탁에 앉히고, 곁에 와서 시중들 것이다. 주인이 밤중에나 새벽에 오더라도, 종들이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다.
오늘은 [충성된 자에게는 반드시 축복이 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마음을 열어 말씀이 육신이 되는 은혜가 임하길 기도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태도가 무엇일까요? 성실일까요? 왜 성실해야 하죠? 집에서 가족들과 잘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편은 남편, 아내는 아내, 자녀는 자녀의 역할을 잘하면 되겠죠? 이는 학교나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보통 성실이라고 하죠. 그런데 잘 지내려면 성실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성실한데 지혜가 없어요. 그러면 어떨까요? 사람이 못됐어요. 그런데 그가 성실합니다. 그러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요? 사람이 어리석어요. 그런데 성실하면 어떻게 되죠? 우리가 가장 만나기 싫어하는 상사가 지혜가 없는 성실한 사람이죠. 그럼, 지혜와 성실만으로 충분할까요? 성실이란 꾸준함을 동반하지만, 인내가 없다면 결국 지속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성실해야 하고 지혜도 있으며 인내도 갖춰야 하는 거죠. 그런데 이 모든 요소를 아우르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충성이에요.
성경에서 충성은 헬라어로 [피스티스πίστις]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믿음, 신뢰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어요. 믿음이라는 뜻의 영어 Faith도 이 피스티스에서 유래된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충성은 믿음과 같은 말인 셈이죠. 믿음이 우리의 관점에서 하나님을 바라본 단어라면, 충성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우리를 바라볼 때의 단어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성품 가운데 충성은 매우 중요한 태도가 되는 거죠.
회사에서도 충성된 직원이 인정받습니다. 가정에서도 충성된 부모와 배우자가 신뢰받고요. 어떤 곳에 속하고 그 일원이 되었다면 그곳에 충성해야 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충성된 종이 되는 것이 당연하고요. 그 충성이 주님의 기쁨이 됩니다. 물론 이는 어떤 자리나 자격에만 국한되지 않죠.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면 그 생명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시간을 주셨다면, 사람을 주셨다면, 사명을 주셨다면, 게다가 오늘을 주셨다면, 이를 믿는다면 우리는 그 모든 것에 충성해야겠죠.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 충성된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깨어 있는 종, 충성된 종에게 주어질 놀라운 축복에 대해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누가복음 12: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놓고 있어라.
누가복음 12:37 주인이 와서 종들이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다.
이 두 구절은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충성된 자가 되라고 말씀하시죠.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깨어 준비된 자에게 복이 있기 때문이죠.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충성된 자로 살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충성된 자에게는 어떤 복이 있는지를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충성된 자는 깨어 준비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본문에서 종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충성된 종은, ‘주인이 언제 올지 몰라도, 늘 깨어 준비하고 있는 자’라고 말이죠. 생각해 보시죠. 회사에서 ‘사장님이 출장 갔다가 언제 올지 모른다’고 하면 직원들은 어떻게 행동할까요? 대충 일할까요, 아니면 더 철저하게 준비할까요? 시험 날짜가 정해지지 않았다면 학생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언제든 시험을 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언제 오실지 모릅니다. 성경은 이렇게 경고하죠.
마태복음 25:13 그러므로 깨어 있어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각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나태해집니다. "조금만 더 놀고… 조금만 더 쉬고… 내일부터 잘하자!" 이런 생각을 하다가 중요한 순간을 놓쳐버리는 것이죠.
깨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며, 주님을 만날 준비가 된 사람입니다. 이 말씀을 마치 종말론자들처럼 마지막 때가 가까이 온 것처럼 여기며 모든 삶을 뒤로 제치고 교회에서 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기를 빕니다. 그런 잘못된 가르침에 현혹되지 않으실 줄 믿어요. 오히려 반대로 깨어 있는 사람이란, 지금 나에게 주신 삶을 성실과 충성으로 살아내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죠. 그렇게 매일매일을 성실하게 믿음으로 살아내는 것을 깨어 있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계십니까?
어떻게 하면 충성된 자가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충성된 자가 될 수 있을까요? 그 첫 번째는 여러분이 기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혼을 깨우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기 때문이죠.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적으로 무뎌지고 나태해집니다. 저는 여러분이 기도의 삶을 영위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지 않고 주님과 가까워질 수 있다는 오만을 깨뜨리는 여러분 되시길 빌어요. 따라서 매일 기도의 삶을 놓치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문제는 기도가 무엇인지 우리가 잘 모른다는 점이죠. 우리가 아는 기도는 그저 하나님께 주저리주저리 무슨 말을 하는 것쯤으로 생각합니다. 때론 새벽기도나 특정한 개인기도 시간만을 기도로 여기는 이들도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기도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런 기도는 기도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라는 거죠. 지극히 바쁜 현대 사회에서 기도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죠. 그래서 기도를 못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는 기도가 아직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기도에 대해 가르쳐 주신 기도를 우리는 묵상한 바 있습니다. 거기에는 주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그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며,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그 기도는 바로, 나로 인해 주님의 이름이 거룩 되기를 바라고, 내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살겠다는 다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 주님께서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책임지신다고 하셨죠. 이 하나님의 법칙은 지난 주일 설교에서도 나눴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에요. 그다음 주님 가르쳐주신 기도 내용이 뭔지 기억하시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입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는 뜻일까요? 그러면 그냥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하면 되죠. 그 앞에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라는 말이 왜 필요합니까? 지난주 설교 제목 기억하시나요? 최고의 선을 추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의 필요를 채우신다는 것이 제목이었어요. 여기서 최고의 선이 바로 이 대목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고, 사랑하면, 그러면 하나님은 30배, 60배, 100배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뜻이죠. 그렇게 우리가 할 일을 하면 하나님은 하나님 하실 일을 하시는 겁니다. 이제 이 원칙은 다 이해하시죠?
그렇다면 용서와 기도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좋은 마음을 품고, 이해와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곧 기도입니다. 주님은 지금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시는 거예요. 네가 이웃을 용서하고 나쁜 생각 갖지 말고, 차별도, 무시도, 편견도, 갖지 않는 것, 그것이 기도라고요. 제가 계속적으로 좋은 생각, 좋은 기분, 좋은 말을 강조한 이유는 그게 무슨 심리학적으로 여러분을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이건 심리학이나 마음공부가 아니라 기도이기 때문에 강조한 거예요. 이게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자가 충성된 자입니다. 좋은 마음을 품고, 이웃과 사회에 어떤 편견도 갖지 않는 사람이 충성된 사람이에요. 혹시 지금 계속 눈에 보이고 마음에 걸리는 일들이 생깁니까? 계속 기분이 나쁘고 속상한 일들이 보이나요? 기도하세요. 다시 말합니다. 내가 지금 시험에 들었다는 것을 인지하세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그런 생각을 지워달라고 기도하세요.
충성된 자가 되려면 두 번째는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오해하지 마세요. 말씀을 붙든다는 것이 말씀을 읽는다는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설명이 필요 없죠. 그런데 성경을 읽는 것이 말씀을 붙드는 시작일 수는 있어도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가 책을 왜 읽습니까? 그 책을 읽었다고 자랑하려고 책을 읽는 것은 아니잖아요? 책 속에서 가치관이 나오고, 그 속에서 세계관을 형성하기 때문에 책을 읽는 것입니다. 말씀을 붙든다는 것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세계관을 형성하고, 그분의 마음을 알아서 그 뜻대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붙드는 것은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세계관, 말씀으로 세운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거죠.
요즘처럼 가치관이 중요한 시기가 없는 것 같아요. 생각이 다른 것과 미워하고 저주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사람을 죽입니까? 내 마음 같지 않다고 그 사람을 총칼로 제압해요? 그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까? 그게 말씀의 가치관이에요? 그래서 기독교가 십자군 운동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자신의 창조주 하나님의 권세와 힘을 내려놓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것은 나와 다른 이웃조차 사랑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국 사랑이 이긴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죠. 그것이 말씀의 가치관입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는 어떻습니까? 정죄하고 차별하고 미워하고 편을 가르지 않습니까? 그게 말씀을 붙드는 것인가요? 저는 감리교 교인입니다. 감리교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왜냐하면 감리교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가장 강하게 교리로 내세운 교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교단에서 지난 몇 년간 수많은 목회자가 강제 출교를 당했습니다. 이유는 동성애자들에게 축복기도를 해 주었다는 이유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저는 동성애를 반대합니다. 그러나 반대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홍빛 같은 죄도 흰 눈처럼 하시는 분입니다. 그 용서를 위해 지금까지 기다리시는 분이죠. 그 자비가 사라진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어떻게 말씀대로 사느냐고요? 그래요. 우리는 연약해서 넘어지고 깨지고 실수를 반복합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어요. 그러나 그래도 우리는 다시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사랑 그 가치관대로 살겠다고 다시 일어서는 그리스도인들이어야 합니다. 내 마음에 상처를 주고, 아픈 일이 생기면 안 좋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와 어렵지만 사랑의 자리에 다시 서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믿음이죠. 그것이 충성된 자입니다.
충성된 자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축복을 주실까?
그렇다면 하나님은 충성된 자를 어떻게 바라보실까요? 그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오늘 본문에 보면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2:37 주인이 와서 종들이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이 허리를 동이고, 그들을 식탁에 앉히고, 곁에 와서 시중들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깨어 충성된 자들에게 주님이 직접 상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이 장면은 마치 예수께서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우리의 기쁨인데, 그분이 오히려 우리를 섬겨 주신다고 약속하신 거죠. 제가 지난 주일에 그런 말씀 드렸죠? 하나님이 더 급하시다고요. 하나님이 더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신다고 말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섬기고 싶으셔서 안달하실지도 몰라요. 안달이라는 말이 좀 경박한가요? 그런데 저는 그보다 더 몸을 떠시면서 우리에게 주고 싶어 하신다고 믿습니다. 마치 갓난아기를 보며 모든 행동이 귀여워 죽겠다며 내 모든 것을 주고 싶어 바라보시듯이 말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여러분을 섬기고 계십니다. 보이지 않는 가운데 여러분과 함께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그분의 섬김이 작용한 때문임을 기억하세요. 언제나 주님은 여러분과 함께하시며 여러분을 섬기길 원하십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여러분을 섬기실 기회를 많이 만드세요. 담대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시고, 꿈을 키우세요. 주님이 나를 도우신다는 사실을 믿고 맡겨진 일을 하세요. 우물쭈물하지 마세요. 능력 주시는 주님 안에서 여러분은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충성된 자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두 번째 축복은, 작은 일에 충성된 이에게 더 큰 사명을 맡기신다는 겁니다. 마태복음 25:21을 보면, 달란트 비유에서 주인이 충성된 종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태복음 25:21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하나님은 우리가 충성할 때, 더 크고 놀라운 사명을 맡기십니다. 그러니 더 큰 은혜를 원한다면 지금 받은 은혜에 감사하세요. 지금 맡겨진 자리에 감사하고 최선을 다하세요. 불평불만이 우리에게 최악인 이유는 그 자리, 그 순간, 감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주어진 시간에 충성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러니 불평하지 마세요. 나를 위해서 불만을 쌓아두지 마세요. 가장 작은 씨앗이 가장 큰 나무가 되는 놀라운 기적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충성은 배신하지 않습니다. 매 순간 주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믿고 주님의 선물처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사는 자는 날로날로 성장하게 될 줄 믿어요. 여러분의 충성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충성을 방해하는 것들과 싸우세요. 늘 기도하며 좋은 마음과 생각을 지키세요. 늘 말씀을 묵상하며 헛된 생각과 황망한 선동과 가짜 사설에서 자신을 지키세요. 나에게 미움을 심고 편을 가르며 남을 정죄하게 만드는 세력과는 멀어지세요. 오직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도록, 오직 내가 축복의 통로임을 잊지 않도록 늘 깨어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 우리 모두가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 칭찬을 듣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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