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3. 04:45ㆍ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누가복음서 3:3 요한은 요단 강 주변 온 지역을 찾아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장마가 시작된 듯하죠. 찌는 듯한 더위가 우리를 힘들게 하더니 이제는 장마로 비 피해를 걱정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이번 장마에는 비로 인한 피해가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저자 누가는 세례 요한의 사역은 한 문장으로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다."
세례 요한의 사역이 회개를 선포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익힐 알고 있죠. 그런데 왜 세례 요한은 회개를 부르짖었을까요? 왜 유대인들에게 회개가 필요했을까요? 사실 회개가 기독교 신앙의 가장 기초적인 출발점이라는 것에 이의를 다는 분은 없으실 거예요. 그러나 왜 회개가 그토록 필요한 것인가에는 의견이 갈릴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회개에 대한 다른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회개하라고 하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라는 소리로 듣습니다. 그래서 간혹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 못하는 이들은 회개라는 말에 거부감을 갖기도 하죠. 때론 회개를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며 각자에게 주신 주님의 섭리를 왜곡하고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죠. 이렇듯 회개라는 말이 정말 중요한 개념이기도 하지만 그 뜻이 왜곡되는 데는 한자어 '회개'라는 말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회개(悔改)는 뉘우칠 회(悔), 고칠 개(改) 자를 쓰죠. 그러니까 뉘우치고 고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주로 강하게 다가오는 행동은 '고친다'는 것이죠. 회개는 그렇게 나를 고치는데 주안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회개라는 말을 쓸 때 보면 '고쳤는가 아닌가'에 항상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을 보게 되죠. 달라졌느냐 아니냐에 회개의 평가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말한 회개의 뜻은 우리가 아는 회개와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회개라는 말의 헬라어 단어는 [메타노에오]라는 단어를 쓰는데요. 이 단어를 파자하면 [메타]는 '뒤에'라는 뜻이고, [노에오]는 '깨닫다'는 뜻입니다. 직역을 하면 '뒤늦게 깨달았다'는 뜻이죠. 이것이 [메타]는 '함께', [노에오]는 '마음, 생각'으로 흘러서 [메타노에오]는 '생각을 바꾸다'는 의미로 성경에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해석이 별반 달라 보이지 않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고친다'는 의미가 원어에는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스스로 고칠 존재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회개의 원어인 메타노에오는 우리 스스로 고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죠.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잃어버린 둘째 아들의 비유가 나옵니다. 아시다시피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 가산을 다 탕진하고 거지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깨닫죠. 아버지의 집은 풍성하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런데 그의 깨달음은 자신의 처지를 바꾸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열심히 살아야지'도 아니었어요. '돈을 벌어서 아버지를 기쁘게 해야지'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깨달음, 그러니까 생각을 바꾼 것은 단지, 아버지께 돌아가는 것뿐이었습니다. 그것이 회개입니다.
나를 고칠 필요 없습니다. 과거를 바꿀 필요도, 바꿀 수도 없죠. 지나간 시간을 후회한들 그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시간을 돌리는 것도, 과거를 지우는 일도 아닙니다. 그렇게 과거에 매달려 이불 킥하고 이를 갈며 복수심을 키우며 불평에 찌드는 것은 더더욱 아니죠. 우리에게는 다시 시작할 기회가 아주 많습니다. 매일 그 새로운 시간들을 마주하죠. 기회가 없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놓칠 뿐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외치죠. 지난 시간을 아쉬워하지 말고, 나라 잃은 설움을 후회하지 말고, 지금은 다시 시작할 때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회개인 거죠.
저 개인적으로는 [메타노에오]를 한국말로 번역한다면, 회개라는 말보다 회심이라는 말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난 일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의 생각을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죠.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우리 하나님의 시간은 늘 우리 편이라고, 그래서 새롭게 시작하는 이들과 함께 하신다고 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나의 잘못을 고칠 필요 없습니다. 온전히 고칠 수도 없어요. 그런 것에 힘 빼지 마세요. 우리가 온전하게 되는 방법은 그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뿐입니다. 그분의 생각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에요. 그분께 나를 맡길 뿐입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내 앞에 새로운 일들이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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