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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요한이서묵상일기

요한이서묵상일기 13 -좋은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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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서 1:12~13   내가 여러분에게 쓸 말이 많지만, 그것을 종이와 먹으로 써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여러분에게 가서, 얼굴을 마주 보고 말하여, 우리의 기쁨을 넘치게 하는 것입니다. 택하심을 받은 그대 자매의 자녀들이 그대에게 문안합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어제 눈이 많이 내리더니 기온도 많이 떨어졌네요. 이 아침에 공기가 제법 찹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오고 가는 길도 미끄러우니 늘 조심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올 겨울 마지막 눈이 될지도 모르는 풍경을 기쁘고 즐겁게 만끽하시고 그 속에서 피어오르는 새싹들을 기대하며 오늘을 시작하시길 빕니다.

 

요한이서의 마지막 구절을 오늘 묵상합니다. 이 책이 서신인지라 마지막 역시 인사말로 끝을 맺죠. 사도 요한은 글이 아니라 만나고 싶은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끝 인사로 전합니다. 그가 가지 못하고 편지로만 글을 적는 이유는 여러 가지겠죠. 마음이 급해서일 수도 있고, 갈 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가야 할 곳이 많았을 수도 있죠. 중요한 것은 그보다 그가 초대교회 교인들을 향한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든 그들의 동요를 막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싶은 마음이 가득 담겨있다는 것이죠.

 

그의 바람은 서신이 아니라 직접 가서 얼굴을 맞대고 마주 보는 것이라고 말하죠. 그리고 그 이유를 '기쁨'이라고 말합니다. 좋은 만남은 기쁨을 준다는 의미죠. 이는 이전의 말씀과도 연결되어 있어 보이죠. 하나님의 진리가 없는 자는 집에 들이지도, 인사하지도 말라고 권면했었죠. 오늘 본문은 이와 대조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는 좋은 해석이 필요합니다. 무턱대고 나와 다른 이들을 비토하고 편을 가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나에게 기쁨이 되지 않는 일, 그러니까 나에게 계속적으로 나쁜 생각과 불평들, 기분이 나빠지고, 화를 내고, 누군가를 미워하며 분노케 하는 일들과 멀어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그런 일들이 있죠? 누군가와 만나면 기분이 나빠지고요. 어떤 주제의 이야기를 나누면 그 사람이 미워지고 화가 나고 왠지 정죄하는 일들이 벌어지죠. 그렇게 군중심리가 작동합니다. 나도 잘 모르면서 어느새 가장 잘 아는 사람처럼 그 사람을 비판하고 저주하게 되죠. 이전 본문이 그렇게 나를 기쁘고 감사한 일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들과의 결별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오늘본문은 좋은 만남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 가면 마음이 편해지고 자꾸 가고 싶어지는 곳, 웃음이 흘러나오고 즐거움이 있는 만남, 그렇게 나에게 기쁨을 주는 만남이 있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에 그런 권면을 많이 하죠. '너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말이죠. 이는 어떤 강요보다 자주적이고 자발적인 의지를 중요시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착각하는 것이 있죠.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에 대해서 오해를 합니다. 그것은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욕망이 아닙니다. 내가 먹고 싶고 누리고 싶고 갖고 싶은 그런 욕심이 아니에요. 정말 하고 싶은 것이란 내가 기쁜 것입니다. 내 마음에 기쁨이 있고 평화가 있는 일이죠. 내가 즐겁고 행복한 일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얻어도 기쁨이 없을 수 있고, 아무리 가난해도 즐거움이 충만하기도 합니다. 어떤 물질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오로지 내 안의 기쁨이 가장 중요한 것이죠.

 

좋은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좋은 생각과의 만남, 좋은 기대와 상상과의 만남, 좋은 기분과 좋은 감정과의 만남, 더 나아가 좋은 사람과 환경과의 만남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루하루는 그렇게 좋은 만남을 주시는 기회인지도 몰라요. 매일 내가 만나는 생각과 감정이 나의 미래가 됩니다. 매일 내가 만나는 기분과 기대가 나의 환경과 주변의 사람까지 바꾸죠. 그리고 삶까지 창조합니다. 내가 오늘 어떤 생각과 만나는지, 어떤 감정과 교제하는지, 어떤 기대와 믿음을 만나는지는 곧 나의 열매가 된다는 사실, 꼭 기억하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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