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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요한이서묵상일기

요한이서묵상일기 06 - 사랑의 향기가 나지 않는 진리는 진리가 아닙니다.

요한이서 1:6b~7   계명은 다름이 아니라,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대로, 사랑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속이는 자들이 세상에 많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음을 고백하지 않습니다. 이런 자야말로 속이는 자요, 그리스도의 적대자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긴 연휴를 마치고 삶의 자리로 돌아온 어제는 어떠셨나요? 우리는 쉼을 가진 이후 고단함을 느끼는 경우가 흔하죠. 이럴 때 우리는 쉼이 짧았다는 아쉬움을 갖게 됩니다. 이는 쉼의 짧고 긺의 문제가 아니라 쉼에 대한 감사의 태도에 문제임을 우리가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짧은 시간이라도 쉼이 있음에 감사하는 태도는 돌아온 삶의 자리를 기대와 기쁨으로 대하는 법이죠. 어제는 어땠을지 몰라도 오늘은 우리에게 소망과 기쁨이 있는 하루였으면 좋겠습니다. 다시금 시작하는 새해 첫 주간을 믿음의 태도로 시작하는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당시 거짓 교사들, 그러니까 영지주의로 초대교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자들을 직접 겨냥합니다. 그들은 속이는 자요, 그리스도의 적대자라고 힐난하죠. 이 서신을 쓴 주된 요인 중의 하나가 바로 이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계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죠. 오늘 본문에서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 언급하죠.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은 이른바 '가현설(Docetism)'이라는 것인데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가 그의 모습을 마치 홀로그램처럼 환상으로 본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이들이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이유는 영과 육을 철저히 구분하는 그들의 교리 때문이죠. 단순히 말해서 영은 고귀하고 거룩한 것이고 육은 더럽고 쓸모없는 것이라는 주장을 그들이 펼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육체는 더럽고 추해서 아무렇게나 굴려도 상관없고 오로지 영적인 것만 거룩을 추구하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주장을 펼치니 하나님이 육신을 입어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거죠.

 

이와 같은 사실은 당시 만연한 그 거짓 주장에 대한 현실을 언급함으로써 초대교회 교인들의 혼란을 막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이 부분은 '그 당시 그런 일이 많았구나' 하는 정도로 넘어가죠. 다만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묵상하고자 하는 것은 6절 하반절의 말씀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하죠.

 

"계명은 다름이 아니라,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대로, 사랑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쉽게 풀어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서로 사랑이다.'라는 의미가 되죠. 그러니까 사랑, 이웃 사랑,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래서 이웃 사랑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죠. 하나님께서 사랑이시니 우리가 사랑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그리 단순히 해석하면 마치 사랑만 하면 된다는 식의 모호한 해석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조금 해석이 필요하죠.

 

먼저 사도 요한이 사랑을 언급한 이유입니다. 이미 이전에 사도 요한은 진리와 사랑을 하나로 묶어서 언급한 바 있죠? 지난 주일 말씀에서 이 부분을 자세히 설명드렸는데요. 간단히 다시 말씀드리면 진리를 품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은혜와 자비와 평화를 주시고, 진리를 품은 우리는 사랑의 향기를 발하게 된다는 원리를 설명드렸습니다. 이것이 동시 다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거죠. 그런데 왜 사도 요한은 진리와 사랑을 하나로 묶어서 설명했을까요? 이것이 영과 육, 두 가지 이슈를 분리가 아닌 하나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을 한다면 지나칠까요? 진리를 품는 것이 우리의 영성이라면, 그 진리가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사랑으로 표현되는 것은 육의 일이라는 뜻은 아닐까요? 그렇게 영과 육은 서로 상호 보완을 하며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한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조금 거칠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사랑의 향기가 나지 않는 진리는 진리가 아닙니다. 우리의 육체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지 않는 영성은 주님이 주신 영성이 아니에요. 주님을 향한 믿음은 반드시 사랑의 향기를 냅니다.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면 애쓰지 않아도 좋은 생각과 좋은 말로 채워집니다. 그 좋은 생각과 좋은 말, 더 나아가 기쁨과 기대가 이웃의 부러움을 사고 따스한 온기처럼 이웃의 마음을 녹이죠. 그것이 사랑입니다. 

 

오늘도 나도 모르게 잔잔한 미소가 내 주변의 분위기를 바꾸는 날이 되길 빕니다. 오늘도 나도 모르게 나의 좋은 생각, 좋은 기대, 꿈과 소망이 이웃들까지 꿈꾸게 하는 하루이길 빌어요. 그렇게 우리의 선한 영향력은 우리의 생각에서 표정으로, 마음에서 행동으로, 영성에서 삶까지 흘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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