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묵상일기 30 - 피할 수 없다면 즐기세요.

2023. 5. 26. 06:50묵상하는말씀/요한일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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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2:18~19   어린이 여러분, 지금은 마지막 때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적대자가 올 것이라는 말을 들은 것과 같이, 지금 그리스도의 적대자가 많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이 마지막 때임을 압니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갔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속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속한 자들이었더라면, 그들은 우리와 함께 그대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들은 모두 우리에게 속한 자들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금요일 아침, 여러분의 발걸음과 마음은 봄날, 수줍은 꽃잎처럼 은은한 미소와 포근한 여유, 향기로운 관용으로 피어오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어제에 이어 다시 한번 18절을 묵상합니다. 어제 이미 마지막 때에 관해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다루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말씀드린 바 있죠. 그래서 역사적 종말론의 관점에서보다, 우리의 삶의 역경에 대한 지혜의 관점에서 이를 묵상했음을 이해하셨을 줄 믿습니다. 오늘도 이와 연관된 관점에서 묵상을 나누려고 합니다.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의 적대자가 올 것이라는 말은 그만큼 반대하는 경향성이 강해진다는 의미죠. 저는 이미 어제 묵상에서 새벽이 오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로 이 말씀을 나눴죠. 

 

그런데 사도 요한은 이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적대자들이 자신들 속에서 나왔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같은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서 나왔다는 이야기죠. 아마도 이는 당시 이단 사상에 몰두해 있던 이들을 향한 말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적은 내부에 있다고 했나요? 사실 제가 가장 가슴 아픈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기독교인들 사이에 소통이 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같은 기독교인들인데 교리로 싸우고 이념으로 싸우며 원수가 되는 경우들이 많죠. 어떤 학자는 차라리 같은 기독교인보다 타 종교인들과 더 대화가 잘 된다고 하소연을 할 정도로 우리는 갈등을 겪고 있죠. 때론 이게 뭔가 싶기도 합니다. 교회 내에서 더욱 포용이 없고, 기독교 내에서 관용이 더 없는 현실은 두고두고 가슴이 아픕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묵상을 정치적이거나 계층적인 문제로 해석하며 답이 없는 묵상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제와 같이 우리 삶의 현실 속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았으면 해요. 그것은 우리의 믿음을 가로막는 것이 결코 내 주변이나 사회, 세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나를 방해하는 것은 타인도 아닙니다. 어쩌면 바로 내 자신인지도 몰라요. 우리가 인생의 미로를 헤쳐나갈 때 종종 가장 사나운 적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로 속의 미노타우로스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그림자입니다. 자기 의심에 싸여 있고, 자기 비하로 무장하고, 더 밝은 내일의 횃불을 향한 우리의 여정을 방해하는 우리 자신의 부정적인 자아죠. 이 그림자는 우리의 꿈을 갉아먹고 자라며, 우리 마음에 의심의 씨앗을 뿌립니다. 늘 걱정과 근심에 쌓이고, 늘 잘 될 것보다 안 될 것에 초점을 맞추죠. 주신 은혜를 알아보지 못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향하는 길을, 쓸데없이 고생하는 광야의 고생길로 바꿔버리죠. 자신만 억울하고 자신만 고생하고 자신만 피해를 보는 것처럼 만들어 버립니다. 

 

혹시 하나님 앞에 서는 날, 그분을 만나는 날, 나의 인생을 다 살고 그 나라에 올라가는 날, 과연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어떤 말일지 생각해 보셨나요? 오래전 이산가족을 찾는 방송으로 전국이 날밤을 셀 때, 제 아버지도 일주일 동안 눈이 충혈될 정도로 밤잠을 설치며 티브이 앞에 앉아 계셨죠. 아버지에게도 이산가족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때 제가 여쭈었던 말이 있었어요.

 

'아버지는 그렇게 가족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할 것 같아?'

그때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니, 그저 만나서 기쁘다, 살아있어서 고맙다, 감사하다, 행복하다 말하겠지...'

 

어쩌면 우리도 그럴지 모릅니다. 나에게 남는 건 기뻐할 일과 감사할 일, 받은 은혜와 축복만일 거라고 말이죠. 우리는 그런 천국의 언어를 지금 연습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이 땅에서 사는 우리의 신앙이라고요. 

 

사랑하는 여러분, 어렵고 힘든 삶이죠? 그것을 견디고 힘써 돌파할 힘은 걱정과 근심이 아닙니다. 불평과 탄식이 아니에요. 그것은 오히려 내 어깨에 짐을 더 얹힐 뿐이죠. 힘겨운 싸움을 싸워야 한다면 그 힘은 환한 미소와 이기게 하실 것을 믿는 기대와 언제나 함께 하셔서 나를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꿈꾸는 것뿐입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던가요? 우리의 삶을 그렇게 즐기면 좋겠어요. 어두울수록 가까워진 새벽을 즐기고, 힘겨울수록 돌파할 시간이 다가왔음을 즐기는 우리, 그것이 축복이죠. 

 

https://youtu.be/48aOY_g25q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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