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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2023고난주간아침묵상일기

고난주간묵상일기 - 우리는 모두 정상입니다.

베드로전서 4:12~13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을 시험하려고 시련의 불길이 여러분 가운데 일어나더라도, 무슨 이상한 일이나 생긴 것처럼 놀라지 마십시오. 그만큼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니, 기뻐하십시오. 그러면 그의 영광이 나타날 때에 여러분은 또한 기뻐 뛰며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중국 고전 회남자(淮南子)에 이런 예화가 등장하죠. 어떤 노인에게는 애지중지 키우던 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어느 날 도망가 버렸죠. 이웃 사람들은 상심했을 노인을 찾아 위로를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말했다죠.

 

"오히려 이 일이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

 

이후 얼마 가지 않아 도망갔던 말이 되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말은 멋진 다른 말 하나를 더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졸지에 노인은 준수한 말 두 마리를 얻은 것이죠. 이번에는 노인을 축하하러 마을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노인은 이번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말했데요.

 

"오히려 이 일이 화가 될지 누가 알겠소?"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노인의 아들이 새로운 말을 타다가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이번에도 마을 사람들은 그 노인을 위로했지만 노인은 또 태연스럽게 이렇게 말합니다.

 

"오히려 이 일이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

 

때마침 전쟁이 나서 젊은이들이 전쟁터로 차출되어 많은 이들이 죽었지만 그 노인의 아들은 다리가 부러져 전쟁터에 나갈 수가 없었죠. 이 이야기로 인해 생긴 사자성어가 새옹지마(塞翁之馬)입니다.

 

올해 우리는 좋은 생각과 좋은 마음, 그리고 좋은 상상과 기대로 우리의 믿음을 만들어가자고 함께 말씀을 나누고 있죠. 좋은 기억을 하고 좋은 기대를 하자고 말이죠. 수많은 지나간 일들 가운데 좋은 기억을 하는 것은 선택입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기억에 나의 현실을 망가뜨리고 억울함과 분노에 갇혀있는 것이 어쩌면 죄일지도 모릅니다. 그 기억은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오늘 내가 좋은 생각과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기억하고 앞으로 하실 일들을 기대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좋은 생각과 말, 좋은 상상과 기대를 외치고 있죠.

 

그런데 어느 날, 한 집사님이 제게 연락을 주셨어요. 그분은 울먹이는 음성으로 저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정말 좋은 생각, 좋은 마음을 품고 싶은데, 좋은 말과 좋은 기대를 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됩니다. 조금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 온갖 나쁜 생각들이 들어요. 열심히 일하지만 막힐 때는 스스로를 자책하고 앞날이 캄캄해지면서 절망감에 사로잡힙니다. 제가 믿음이 없는 거죠? 저는 좋은 그리스도인이 아니죠?"

 

저는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습니다. 그분의 말씀이 너무나 이해가 되고 마치 제 안에 어디선가에 숨어 있던 같은 아픔이 몰려와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마음과 상상을 한다는 것이 말이 쉽지, 사실 이 기초적인 믿음의 태도를 우리는 유지하기 힘듭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이 작은 일을 하지 못해 그것을 가리려고 봉사도 하고 헌신도 하는지 몰라요. 그렇게라도 자신이 좋은 생각과 마음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지도 모르죠.

 

제가 그분의 말을 듣고 한참을 머뭇거렸던 이유는, 그 순간 그분과 저의 대화에서 갑자기 저와 하나님의 대화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그분이 제가 하신 말씀을 그대로 제가 하나님께 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죠. 목사로 좋은 생각과 마음을 늘 갖기를 원하지만 때때로 무너지고 숨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매번 좌절감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외치는 믿음과는 동떨어진 절망의 그늘에 있는 저를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어디선가 하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저를 위로하시듯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저의 마음을 달래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그분에게 그 음성을 그대로 전달해 드렸어요.

 

"집사님, 우리가 때때로 좌절감이 드는 거, 그거 우리가 사람이어서 그래. 우리 안에 불안과 공포가 몰려오고 자책하고 절망에 빠지는 거, 그거 다 우리가 사람이어서 그런 거야. 우리가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어서 그런 거야. 그것이 정상이야. 그걸 하나님도 아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필요한 사람들인 거야.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곁에 계신 거지. 집사님이 믿음이 왜 없어? 지금 나에게 하나님을 찾는 거잖아? 나 혼자 못한다고. 그게 믿음인 거야. 좋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이게 좋은 그리스도인이지. 내가 아프다고 말하고, 힘들다고 말하고, 주님이 필요하다고 말하잖아. 그것만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리스도인이 어딨어? 집사님은 정상이고, 좋은 그리스도인이야"

 

우리가 길을 잃고 어둠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정상입니다. 우리는 사람이니까요. 미래가 어떻게 될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불안하고 겁이 난다면 그것은 정상입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니까요. 누군가의 말에 상처받고, 반복되는 현실에 부정적인 감정이 몰려오는 것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우리는 인간이니까요. 그것을 굳이 가릴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도 다 아시니까요. 그리스도인이라고 그런 모습에 실망하고 죄책감을 더할 필요도 없어요. 그래서 주님이 함께 하시니까요.

 

성장은 늘 좋은 곳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성장은 아프고 쓰리고 고통스러운 곳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우리에게 아프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들은 또한 단단해지는 자아를 만들죠. 가장 무서운 질병은 고통을 모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치료의 시기를 놓치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아픔은 치유의 시작이고, 고통은 성숙의 씨앗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의 복합체입니다. 억울과 분노, 절망과 좌절, 슬픔과 고통, 그리고 희망의 싹이 사라지는 총체적 상황이죠.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은 그 무엇으로도 할 수 없는 희망으로 바꾸셨습니다. 그 무섭고 두려운 자리에서 기쁨과 감사가 나오고, 죽음과 끝에서 생명과 새로움이 시작되죠.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의 감정은 다 정상입니다. 불안도 공포도, 우울도 좌절도, 절망도 부정도 다 정상입니다. 죄도 실수도, 실패도 자책도 다 정상입니다. 그런 부정적인 것들이 다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이 믿음이 아니에요. 모든 선한 것만이 남아 있는 것이 좋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내게 있는 연약함, 내게 있는 문제와 빈틈들에 주님을 채우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파서 주님을 찾는다면 아픔은 신앙입니다. 불안으로 주님께 도움을 요청한다면 불안은 전도자예요. 고민과 갈등, 부정적인 마음을 그냥 놔두지 마세요. 그것으로 인해 주님께 마음을 여는 도구로 사용하세요. 그러면 우리의 부정은 긍정을 낳는 도구가 될 거예요. 그러면 우리의 빈틈은 주님이 채우시는 온전한 치유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아픈 것은 정상입니다. 불안하고 걱정하고 속상하고 낙심하는 것, 다 정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필요한 인생이에요. 불안할 때 주님을 찾고, 걱정스러울 때 좋은 생각을 붙드세요. 속상할 때 기도하고, 낙심할 때 좋은 기대를 끌어오세요. 그렇게 우리는 주님과 함께 장성한 분량에 한 걸음씩 다가서는 믿음의 사람이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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