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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2022 고난주간묵상

22 고난주간특별묵상[이 집이 평안할지어다]_창조의 능력으로 사세요.

창세기1:26~2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주시려고 만드신 하루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기쁘게 사는 모든 이들에게 거룩한 은혜가 가득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은 구약성경의 내용 가운데 가장 해석하기 힘든 본문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실 때 당신의 형상을 따라 당신의 모양대로 만드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형상과 모양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해석하기 위해 많은 신학자가 머리를 맞대지만 뭐라고 뾰족한 해답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을 어떤 형체나 모양으로 해석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 형상이라는 말속에는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의미를 담아 해석하려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리고 그 해석들은 다양하게 펼쳐지죠.

어떤 이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이성이 그 형상의 핵심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는 관계성 속에서 그 형상을 찾기도 하죠. 뛰어난 학자들의 머리를 따라갈 수 없는 저는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지 가늠하기조차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어요. 그것은 하나님에게 창조의 능력이 있다는 것이고, 그 능력은 우리가 이 땅에서 펼쳐가야 하는 영적인 싸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우리를 창조하시고 그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땅에 충만하라는 것이고, 땅을 정복하라는 것입니다. 이 단어가 너무 전투적이라면 이어지는 기록에 집중해 보죠.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땅에 충만하고 정복하며 다스리라는 말은 각각 다른 단어지만 똑같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도권이 바로 우리에게 있다는 점이죠. 창조의 능력은 여기서 결정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건강을 잃을까 봐 운동을 하고, 시험에 떨어질까 봐 공부를 합니다. 취업이 안 될까 봐 영어를 배우고, 회사에서 잘릴까 봐 열심히 일을 하죠. 언제나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으로 우리는 움직입니다. 그렇게 삶에 끌려다니죠. 

 

중학교 시절, 친구 중에 늘 책만 보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쉬는 시간에도 늘 책을 보고 있었죠. 저는 그 친구가 이해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제게 공부는 시험 기간에만 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친구는 오히려 시험기간에 더 여유로웠습니다. 저는 그 친구에게 그리 여유로운 이유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때 돌아온 대답이 충격이었어요. 그 친구는 자신은 시험 때문에 공부를 해 본 적이 없다는 겁니다. 그냥 공부가 재미있고, 책이 좋아서 보는 거라나요? 참 재수 없죠? 저는 그때 그저 재수 없고 신기한 녀석이라고만 치부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험 때문에 우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시험이 있는 것이니까요. 시험에 끌려다니고 상황에 끌려다니고, 환경에 지배받는 것이 정상이 아니라 그것을 다스리고 이끌고 주도하는 것, 그것이 정상이죠.

 

우리가 불평할 때 우리의 영은 어떤 상태인지 아십니까? 인생의 잘못된 모든 것에 집중하죠. 안 되는 것, 잘못된 것, 기분 나쁘고 아프고 서럽고 슬픈 것에 집중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한 듯 남 탓을 하죠. 환경 탓을 하고, 사회 탓을 합니다. 물론 구조적인 모순이 있고 상대하기 힘든 사회의 벽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되뇌이고 곱씹으며 불평한다고 그 구조가 바뀌고 사회의 벽이 허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견고해질지도 몰라요. 그 순간 나는 그 구조와 사회에 지배를 당하는 한낱 미물에 불과한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바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어요. 공허하고 깊은 어둠 속에 창조를 이루신 하나님처럼, 우리도 어렵고 힘든 삶의 터전에 아름다운 에덴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황무지에 나무를 심어 옥토로 만드는 일을 하듯 삭막하고 허전한 마음에 기쁨의 물을 부을 수 있어요. 그 창조에 돈이 들지도 않습니다. 그 창조에 수많은 땀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생각을 바꿀 수 있다면 가능합니다. 

 

내 삶은 내가 가꾸는 것입니다. 내 기분은 내가 만드는 거예요. 내 하루는 내가 세워야 하죠. 어느 누구도 나의 마음을 흔들 수 없습니다. 나는 이미 내 마음을 창조하기로 했으니까요. 어떤 상황도 나의 영을 멍들게 할 수 없습니다. 매일 끊임없이 나의 영을 새롭게 창조하는 일을 내가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직도 내 기분을 남에게 맡기며 사시겠습니까? 바깥 날씨에 내 기분을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시겠어요? 환경에 소중한 나의 삶을 맡기실 건가요? 앞에 놓인 절벽에 내 인생을 포기하실 건가요? 창조의 능력을 사용하세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능력이 있습니다. 어떤 사막에도 꽃을 피우고, 어떤 광야에도 길을 내는 능력 말입니다. 그 창조의 능력을 사용하세요. 우리가 잃어버린 능력, 창조의 능력으로 사세요. 기분과 감정을 다스리세요. 높은 산을 정복하세요. 믿음과 은혜,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하세요. 그 창조의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할 때 주님께서 도우시고 함께 하십니다. 그때 우리는 정상적인 하나님의 형상으로 세워져요. 그때 우리에게 평안이 옵니다. 제자리로 돌아가는 거죠. 내 기분, 내 감정, 내 삶의 모든 부분에서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갈 창조의 능력으로 사는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https://youtu.be/f4R7lJRkO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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