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80 - 남을 위해 흘린 눈물은 남을 위해 쓰이지 않습니다.

2022. 5. 4. 06:36묵상하는말씀/고린도전서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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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2:25~27   그래서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게 하시고, 지체들이 서로 같이 걱정하게 하셨습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당합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요, 따로따로는 지체들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하루 종일 봄의 맑은 햇살과 청명함이 예고되어 있네요. 아침에 일어나 일기예보를 보는 것이 일과입니다. 여러분의 오늘 예보는 어떠신가요? 맑고 화창함이 예보된 그런 날이길 빕니다. 그렇게 지금 예보하고 하루를 시작하세요. 오늘도 기뻐하기로 작정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도우심이 임하길 빕니다.

 

나이가 든 탓일까요?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왜 좀 더 일찍 알지 못했을까?' '왜 좀 더 젊었을 때 하지 않았을까?' 이 말이 무언고 하니, 좋은 습관들, 좋은 생각과 행동들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훨씬 좋았겠다는 생각을 말하는 거죠. 건강이 그렇습니다. 조금 더 일찍, 조금 더 젊었을 때 몸의 근육을 만들어 놓았더라면, 식습관을 잘 관리했더라면, 시간과 생활 습관의 패턴을 잘 조절했더라면 하는 후회들이 있죠. 물론 지금도 늦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아쉬움이 있어요. 왜 그때는 몰랐지? 하는...

 

보통 우리는 아쉬울 것 없을 때 보이는 것이 전부 다인 줄 알죠.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하고 싶은 것 다하죠. 귀찮은 것보다 편한 것을 더 좋아하고, 어려운 것보다 쉬운 것을 하려고 하죠. 그래도 당장 별 이상이 없으니까요. 눈에 보이는 상처에는 관심을 둬도 보이지 않는 몸속의 상처에는 둔감합니다. 그래서 관리를 잘 안 하게 되죠. 그렇게 시간이 흘러 문제들이 드러나고 아픔이 몰려와야 그때 압니다. 내 마음대로, 내 편한 대로, 내 하고 싶은 대로 했던 결과들이 결국 내 몸을 상하게 하고 점점 갉아먹었다는 사실을 말이죠. 이게 몸의 분열이라면 지나친 가요? 내가 먹을 때 위를 생각하고, 내가 마실 때 간을 생각하는 것, 그것이 쉽지는 않죠. 그러나 내 몸의 소중함을 안다면, 그 몸을 관리하는 주체가 나라는 것을 안다면, 더 나아가 그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고 주님의 거룩한 도구임을 안다면 우리는 그 쉽지 않은 생각을 해야만 하죠. 그것이 서로 연합하고 함께하는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주신 이유도 그렇습니다. 그 안에서 서로 격려하고 사랑하며 우리가 행복해지기 때문이죠. 젊을 때 몸 상하는지도 모른 채 자기 마음대로 했던 것처럼, 혼자서, 아무도 없이, 서로 함께 더불어 사는 은혜를 모른 채 살아가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귀찮은 신경 쓰지 않으려 홀로 동굴에 들어가는 이들이 있죠. 사실 이게 참 편합니다. 아무 신경 안 써도 되고, 감정의 피로를 느끼지 않아도 되니까요. 아파할 일도 없고, 남 걱정할 일도 없죠. 그런데 이게 자기 몸이 상하는 일이 된다면 어떨까요? 이웃을 좋게 하는 일도, 남에게 이로운 일도 아닌, 내 몸, 내 영, 내 삶이 상하는 일이라면요?

 

우리는 서로 얽혀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뗄 수 없는 존재죠.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마치 아담의 뼈를 취해 하와를 만드신 것처럼, 우리의 관계는 서로 이어져 있어요.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지체입니다. 그래서 함께 울고 웃는 존재가 되는 거죠. 아니, 이렇게 관념적으로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가 건강할 때는 괜찮습니다. 내가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젊을 때에는 생각하지 못하죠. 내가 아프고 내가 쓰린 그 자리에 있을 때 나를 위해 기도하고 염려하고 걱정하며 함께 울어 줄 사람이 없다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을 거예요. 내가 귀찮아하고, 내가 신경 쓰고 싶지 않던 '그 사람'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금 알지 못하죠. 알지 못하니 콧방귀 뀔지도 몰라요. 

 

남을 위해 흘린 눈물은 남을 위해 쓰이지 않습니다. 나를 위해 쓰입니다. 남을 위해 웃는 웃음은 남에게 남지 않습니다. 나에게 남아요. 그 눈물은 나를 위한 눈물이 되고, 그 웃음은 나와 함께하는 웃음이 됩니다. 누군가를 위해 무릎을 꿇은 기도는 나를 위한 기도로 되돌아와요. 그게 공동체의 이유이고 능력입니다. 우리가 따로이나 하나 된 이유죠.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남을 위한 규율이 아닙니다. 나를 위한 규율입니다. 내가 위를 생각해서 먹고 마셔야 나에게 좋습니다. 몸의 근육을 위해 시간을 내고 땀을 흘리며 운동해야 내게 좋아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들의 공동체 속에서 서로 돕고 서로 나누며 내가 건강해지는 겁니다. 인디언 격언에 '아이를 키우는 데는 한 마을의 수고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죠. 이는 한 생명이 자라는 데는 공동체의 수고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얽혀서 자라요. 그것이 우리의 유익입니다. 공동체를 위한 것은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위한 것도 아니에요. 다 나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 공동체를 주셨고, 이웃을 주셨고, 관계를 주신 거죠. 그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곁에 주어진 사람들은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 나를 위해 있는 사람들이에요. 여러분으로 인해 여러분의 공동체가 살아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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