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75 - 우리는 통역사입니다.

2022. 4. 27. 06:18묵상하는말씀/고린도전서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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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2:10   어떤 사람에게는 그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를 주십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여러분의 첫 시간이 감사와 기쁨으로 채워지길 빕니다. 

 

본의 아니게 고린도전서 12:10, 한 절의 말씀으로 오랜 시간 묵상이 이어졌습니다. 하나하나 개별적인 은사들을 살펴보았는데요. 어떠신가요? 신비한 생각으로 범접하기 힘들었던 은사들이 나도 할 수 있고 하고 있는,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면 구해야 하는 필수적인 은사들로 받아들여지셨나요? 은사라는 것이 고차원적이고 관념적인, 그리고 특별한 사람들만의 것이라는 사고에서 벗어나 누구나 현실적인 자리에서 펼쳐가는 도구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고 느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은사의 마지막 퍼즐이네요. 어제 묵상했던 방언의 은사와 연결된 은사죠. 통역의 은사입니다. 그러니까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알려주는 은사죠. 이 은사는 말씀드린 대로 바로 전 구절인 방언의 은사와 연결되어 있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전에 언급된 전체 은사와도 긴밀하게 연결된, 그야말로 마지막 결론과도 같은 은사 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은사도, 그 어떤 신령한 것도, 또 그 어떤 깊이 있고 훌륭한 생각도, 우리 가운데 표현되고 드러나고 또 알려져야 의미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실력은 표현력이라고요. 아무리 고상한 철학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이 표현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기 때문입니다. 깊은 사랑도 표현되지 않으면 아무도 모릅니다. 일부러 표현하지 않으려고 해도 사랑은 드러나죠. 그래서 사랑은 능력이고, 표현력인 셈이죠. 재능도 그렇습니다. 어딜 가도 빛나죠. 원치 않아도 드러납니다. 그렇게 능력은 표현되는 거예요.

 

미국의 존경받는 대통령 애브라함 링컨의 일화가 있습니다. 대통령이 되어서 같이 일할 사람을 추천받아 면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추천한 사람에게 '그 사람,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죠. 그랬더니 추천한 사람이 발끈했던 모양입니다. 얼굴이야 부모가 낳아준 것인데 어찌 그 사람 탓이겠느냐고 따졌다죠. 그때 링컨이 아주 유명한 말을 합니다. 

 

"사람이 마흔이 넘으면 그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Every man over forty is responsible for his face)"

 

사실 인상이나 얼굴, 이런 것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관상이라고 하죠. 이런 것을 중요시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사람의 생김새로 구별 또는 판단하는 것은 차별에 가깝다는 생각을 버리기 힘듭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온 자신의 인생과 그 사람의 생각, 또 그 사람의 감정과 느낌은 어떻게든 표현되기 마련이죠. 우울을 품으면 우울을 풍기기 마련이고, 분노를 품으면 분노의 아우라가 늘 따라다니기 마련입니다. 감사와 기쁨의 능력은 그것이 표현되기 때문이죠. 그 표현은 나의 마음과 감정을 다스릴 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생명에 영향을 주게 되어있죠. 식물을 키우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얘도 자기 이뻐하는 줄 아네'

 

본래 감정이 그렇습니다. 표현되죠. 드러납니다. 이게 실력이에요. 그리스도인의 실력이고 믿음의 실력이고 사랑의 실력입니다. 그렇게 표현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힘이죠.

 

우리는 통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게 표현하는 사람들이죠. 그것이 우리의 직분입니다. 아무리 내 안에 있다고 우겨도 표현되지 않으면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생각, 그 마음, 그 말씀, 그 감정을 표현하도록 이 땅에 보내졌기 때문이죠. 표현하는 실력이 바로 우리의 삶이니까요. 그렇게 오늘도 나의 은사를 표현하며 사는 하루 보내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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