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19. 07:30ㆍ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사무엘상 26:12~16 다윗이 사울의 머리맡에 있던 창과 물병을 들고 아비새와 함께 빠져나왔으나, 보는 사람도 없고, 눈치채는 사람도 없고, 깨는 사람도 없었다. 주님께서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셔서, 그들이 모두 곤하게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윗이 맞은편으로 건너가 멀리 산꼭대기에 섰다. 다윗과 사울 사이의 거리가 꽤 멀어졌다. 여기서 다윗이 사울의 부하들과 넬의 아들 아브넬에게 소리쳤다. "아브넬은 대답을 하여라!" 아브넬이 대답하였다.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소리를 쳐서 임금님을 깨우느냐?" 다윗이 아브넬에게 호통을 쳤다. "너는 사내대장부가 아니냐? 이스라엘 천지에서 너만한 대장부가 어디에 또 있느냐? 그런데 네가 어째서 너의 상전인 임금님을 잘 보호하여 드리지 않았느냐? 백성 가운데 한 사람이 너의 상전인 임금님을 범하려고 이미 들어갔었다. 너는 이번에 너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주님께서 확실히 살아 계심을 두고 말하지만, 너희가 주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너희의 상전을 보호해 드리지 못했으니, 너희는 이제 죽어 마땅하다. 그러므로 너는 이제 왕의 창이 어디로 갔으며, 왕의 머리맡에 있던 물병이 어디로 갔는지, 어서 찾아보도록 하여라."
좋은 아침입니다.
바삐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이 새벽에 조용히 묵상하는 시간은 어쩌면 가는 길을 멈추고 오던 길을 돌아보는, 혹은 가는 길을 점검하는 그런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한 발짝 물러서서 나를 볼 수 있다면 아마도 일상에 얽매여 묶였던 좁은 나의 시선을 조금이나마 넓힐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우리의 안식은 단순한 쉼이 아니죠. 나를 돌아보고 점검하는 그런 쉼일지도 모르니까요.
다윗은 사울을 제거할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울을 죽이지 않습니다. 그 이유야 이미 알려진 바 있기에 차치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이런 그의 태도는 그를 따르는 이들에게 때론 절망감을 주기도 하고 때론 이해 못할 결정으로 여겨지기도 하겠죠. 왜냐하면 죽어야 사는 피 말리는 경쟁에서는 용서와 이해는 사치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다윗은 잠에 빠진 사울을 그냥 내버려 둔 채 다리를 뜹니다. 그래도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고 싶었을까요? 증표로 창과 물병을 들고 나오죠. 그리고는 멀찍이 떨어져 자신의 행동에 대해 알립니다.
이 장면에서 저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다윗은 정말 자신의 진심을 사울이 알아주어 변하기를 바란 것일까요? 아니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믿음을 보인 행동일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진실되게 산다는 것이 우리의 삶에서 본연의 모습 그대로 이해받지는 못한다는 사실에 우리는 낙심될 때가 많죠. 진심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특별히 누군가를 위한 마음은 더욱 그렇죠. 자기중심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는 우리로써는 누군가를 위해 희생한다는 것도 어렵거니와 그 희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어렵기 때문이죠.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 일로 다윗의 인격을 높이 평가하는 데는 저는 동의하지 않겠습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대단한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니까요. 왜냐하면 그들이 바로 우리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성정이 다르지 않은 인물들이니까요. 그래서 우리도 성경의 인물들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윗의 인격이 남달라 자신이 죽음의 공포에 몰리면서까지 사울을 살려주는 인격이라는 해석은 내리기 힘들 것 같습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아직 때가 아니라는 것뿐입니다. 다윗이 위대하다면 그것입니다. 아직 때가 아님을 아는 것이죠.
그런 의미로 오늘 본문은 제가 특별한 한 가지 사실을 전해줍니다. 그것은 인생을 한 발짝 떨어져 보는 능력에 관한 것입니다. 바둑에서 훈수를 둔다고 하죠. 직접 참여한 이들보다 곁에서 훈수를 두는 이들이 훨씬 고수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승패를 떠나 멀찍이 바라보는 그 눈에는 조금 더 넓은 시야가 있습니다. 내가 선 자리에서 한 걸을 물러나 바라보면 조금 더 색다른 이해와 여유가 존재하죠. 오늘 본문은 그렇게 외딴곳에 서 있는 다윗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우리의 묵상 시간이 그렇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외딴곳에서 기도하셨던 것처럼,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 그 새벽의 시간이 새로운 이해와 판단의 중요한 기로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하루에 한 번쯤은 외딴곳에 서 보세요. 그 골방에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는 기회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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