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15. 07:02ㆍ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사무엘상 24:7~22 마침내 사울이 일어나서 굴 속에서 나가 길을 걸어갔다. 다윗도 일어나 굴 속에서 밖으로 나가서, 사울의 뒤에다 대고 외쳤다. "임금님, 임금님!" 사울이 뒤를 돌아다보자, 다윗이 땅에 엎드려 절을 하였다. 그런 다음에,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은 어찌하여, 다윗이 왕을 해치려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만 들으십니까? 보십시오, 주님께서 오늘 저 굴 속에서 임금님을 나의 손에 넘겨주셨다는 사실을, 이제 여기에서 직접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임금님을 살려 보내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임금님을 아꼈습니다. 절대로, 손을 들어 우리의 임금님을 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임금님은 바로 주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임금님의 겉옷 자락을 보십시오. 내가 이 겉옷 자락만 자르고, 임금님께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보시면, 나의 손에 악이나 죄가 없으며, 임금님께 반역하거나 잘못한 일이 없다는 것도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도 임금님은 나를 죽이려고, 찾아다니십니다. 이제는 주님께서, 나와 임금님 사이에서 재판관이 되시고, 나의 억울한 것을 주님께서 직접 풀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나의 손으로는 직접 임금님께 해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옛날 속담에 '악인에게서 악이 나온다' 하였으니, 나의 손으로는 임금님을 해치지 않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은 누구를 잡으려고 이렇게 나오셨습니까? 임금님이 누구를 잡으려고 쫓아다니십니까? 한 마리 죽은 개를 쫓아다니십니까? 한 마리 벼룩을 쫓아다니십니까? 그러므로 주님께서 재판관이 되셔서, 나와 임금님 사이를 판결하여 주시기를 빌겠습니다. 주님께서 굽어보시고 나의 억울함을 판결하여 주시며, 나를 임금님의 손에서 건져 주시기를 빌겠습니다." 다윗이 말을 끝마치자, 사울은 "나의 아들 다윗아, 이것이 정말 너의 목소리냐?" 하고 말하면서, 목놓아 울었다. 사울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나는 너를 괴롭혔는데, 너는 내게 이렇게 잘해주었으니, 네가 나보다 의로운 사람이다. 주님께서 나를 네 손에 넘겨주셨으나, 너는 나를 죽이지 않았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오늘 너는, 네가 나를 얼마나 끔찍히 생각하는지를 내게 보여 주었다. 도대체 누가 자기의 원수를 붙잡고서도 무사히 제 길을 가도록 놓아 보내겠느냐? 네가 오늘 내게 이렇게 잘해주었으니, 주님께서 너에게 선으로 갚아 주시기 바란다. 나도 분명히 안다. 너는 틀림없이 왕이 될 것이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서 굳게 설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이제 주님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여라. 너는 내 자손을 멸절시키지도 않고, 내 이름을 내 아버지의 집안에서 지워 버리지도 않겠다고, 내게 맹세하여라." 다윗이 사울에게 그대로 맹세하였다. 사울은 자기의 왕궁으로 돌아갔고,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산성으로 올라갔다.
좋은 아침입니다.
지금 제가 보는 창밖은 칠흑같이 어둡습니다. 아직 시간이 이른 새벽입니다. 그래서 날이 맑은지, 미세먼지는 없는지 분간할 길은 없어요. 어제처럼 흐린 날씨가 될지, 그제처럼 비가 올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오늘은 분명 좋은 날이 될 거예요. 왜냐하면 내가 좋은 날로 맞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가 망치려고 작정하여 달려들어도 이 시간 나는 오늘을 좋은 날로 받아들이기로 했으니까요. 맑아서 좋고, 따뜻해서 좋듯이, 흐려서 좋고, 비가 와서 좋은 날이 될 것입니다. 승승장구해서 좋듯이 넘어지고 깨어져도 좋은 날일 겁니다. 나의 매일매일은 주님께서 주신 새로운 기회이고 선물이니까요. 오늘도 멋지고 많이 웃는 하루이길 빕니다.
사람의 감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죽을 것처럼 사랑하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그라들고 말죠. 그럴 수밖에 없을지도 몰라요. 온전하고 완전한 사람은 없으니까요. 상대방이든 나든 말입니다.
그렇다고 사람의 감정이 본래 그런 변덕의 도구라고 저는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음성과 사랑의 통로로 우리의 감정을 사용하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다른데 있어요. 우리의 감정이 오래가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감정이 사람의 행동이나 말, 태도나 나타나는 표현에만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가끔 느끼는 건데요. 사람이 같이 살지 않는 한, 아니 같이 살아도 매일 매 순간 똑같이 감정을 나누지 않는 한 자신을 어찌 완전하게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표현하는 것은 속에 담긴 그 감정과 생각들의 몇 부분만 추려내는 데 불과하죠. 물론 자신의 마음이나 감정을 스스로도 다 이해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죠. 다 표현할 수도 없고, 표현의 방식도 서툴게 되는 겁니다.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지만, 말을 꺼내면 그 감정의 말보다는 다른 말을 하게 될 때가 많죠. 그래서 더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요. 어떤 이는 표현할 수가 없어서 침묵하기도 합니다. 또 그 침묵에 반응하여 상대방은 화를 내구요. 이런 악순환의 반복입니다. 암튼, 드러나는 상황에 반응하는 감정은 언제나 요동칩니다.
오늘, 사울과 다윗이 만난 엔게디 광야에서의 결론은 화기애애합니다. 사울은 눈물로 회개하는 것처럼 보이죠.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곧 있을 십 광야에서의 만남이 또 있다는 것을요. 이렇게 돌이킨 것 같은 사울은 왜 또 다윗에 대한 마음이 변했을까요? 단순히 병들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눈에 보이는 방식에만 반응하는 감정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병인 것이죠.
아마도 그렇게 다윗과 헤어지고 돌아와 보니 상황은 여전히 사울은 천천이고 다윗은 만만입니다. 사람들은 이미 다윗을 더 신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신 앞에 오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다윗은 자신의 세력을 규합하는 것 같고, 어디 가서 자신을 죽이지 않고 살렸다고 말하고 다니는 것 같고, 자신을 조롱하는 것 같은 생각이 몰려옵니다. 모든 태도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혼자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다윗이 나를 살린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야... 자신이 더 대단하다는 것을 뽐내려 한 거야... 내가 속았어..."
우리가 사랑하는 이유는, 하는 짓이 이뻐서가 아닙니다. 원수가 사랑스러워 보여서 용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내 눈이 좋아져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에요. 내가 사랑하는 이든, 원수든, 생명은 모두 하나님을 품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는 그들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품고 있기 때문이죠. 다윗이 사울을 죽이지 않은 이유는, 사울이 이뻐서도, 두려워서도 아닙니다. 자신 있어서도, 미래에 대한 확신 때문도 아닙니다. 단지, 주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사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위해 일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세상을 위해 죽어야 하는 이유는, 세상이 이뻐서도, 귀해서도 아닙니다. 주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이고, 주님께서 그 세상을 위해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이 이유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내가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어서, 내가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어서, 나에게 은혜가 충만하고, 믿음이 좋아서, 그래서 우리가 사역자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시키셔서, 하나님께서 세우셔서, 그래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롬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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