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서묵상일기109 - 최종 선택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2021. 3. 12. 06:56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반응형

삼상 24:1~7  블레셋 사람과 싸우고 돌아온 사울은,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온 이스라엘에서 삼천 명을 뽑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부하들을 찾으러 '들 염소 바위' 쪽으로 갔다. 사울이 길 옆에 양 우리가 많은 곳에 이르렀는데, 그곳에 굴이 하나 있었다. 사울이 뒤를 보려고 그리로 들어갔는데, 그 굴의 안쪽 깊은 곳에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숨어 있었다. 다윗의 부하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드디어 주님께서 대장님에게 약속하신 바로 그 날이 왔습니다. '내가 너의 원수를 너의 손에 넘겨줄 것이니, 네가 마음대로 그를 처치하여라' 하신 바로 그 날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몰래 잘랐다. 다윗은 자기가 사울의 겉옷 자락만을 자른 것뿐인데도 곧 양심에 가책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다윗은 자기 부하들에게 타일렀다. "내가 감히 손을 들어, 주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우리의 임금님을 치겠느냐? 주님께서 내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나를 막아 주시기를 바란다. 왕은 바로 주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분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이런 말로 자기의 부하들을 타이르고, 그들이 일어나 사울을 치지 못하게 하였다. 


진 에드워드 목사님이 쓴 [세 왕 이야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사울과 다윗, 그리고 압살롬, 이 세 왕들의 내면을 그린 이 책은 작가 진 에드워드의 대표작이랄만큼 유명한 책입니다. 한 번쯤 읽어보시길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특별히 권위자에게 상처 받은 영혼들에게 들려주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제겐 청년시절, 권위자의 불의와 부딪침 앞에 나의 온갖 질문과 불만과 저항을 검증받게 만들었던 귀한 책이기도 하죠. 왜 미친 권위자를 만나야 하는지, 불의한 권위자에게 순복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지, 세상을 바꾸려는 내 열정의 뿌리는 괜찮은 것인지 등을 심도 있게 상고하게 했던 책이었습니다. 그 책에 이런 구절들이 나옵니다.

"다윗은 내게 권위가 아니라 순복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었어.  그가 내게 가르쳐 준 것은 규칙이나 법으로 쉽게 해결해버리는 방법이 아니라 인내하는 법이었다네. "

"나의 왕은 자신에게 순종하라고 말하지 않았다네. 그는 반역을 두려워하지 않았지. 왜냐하면 그는 왕위에서 쫓겨나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았기 때문이라네. 하나님께로부터 온 권위를 가진 사람은 도전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방어하려 하지도 않고 왕위에서 물러난다 하더라도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네. 그것이 그 위대한, 그 참된 왕의 위대함이지...."

 

오늘 본문의 내용은 이쯤으로 갈음합니다. 워낙 유명한 내용이어서 오늘 본문상 다윗의 마음을 묵상하는 것은 식상할 듯싶네요. 다만 이 유명한 본문에서 오늘 아침 제게 다가온 묵상은 전혀 다른 관점이었습니다. 다윗의 마음이 아니라 그의 부하들 마음이 읽어졌던 것이죠. 다윗의 부하들 입장에서 이 본문을 읽어보셨습니까? 다윗의 부하들은 사울을 피해 다윗과 동행했습니다. 그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사울보다 다윗을 선택했습니다. 그 선택의 배경이 무엇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다윗이 왕이 될 날을 손꼽아 기다렸음은 자명합니다. 그런 그들에게 그 날이 왔습니다. 사울을 죽일 찬스가 온 것이죠. 오늘을 기다리며 수많은 날을 쫓기고 죽을 고생을 하며 광야를 헤맸습니다. 내가 존경하고 따르던 왕이 드디어 왕이 될 수 있는 날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윗에게 재촉합니다. 이제 사울을 죽이라고 말이죠. 사울은 끝났다고요. 더 나아가 이런 기회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말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곧 나오겠지만 이와 같은 상황은 반복됩니다. 그리고 또 광야를 헤매고 험한 시간은 계속됩니다. 이쯤 되면, 만약 내가 부하라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합리적이고 확실하며 상황에도 부합한 일을 나의 지도자가 따르지 않는다면 나의 마음은 어떨까요? 무진 노력의 결과물을 만들어 놓았는데 나의 지도자가 거부한다면 나의 마음은 어떨까요? 이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되었는데 나의 지도자가 그 상황을 차 버린다면 나의 마음은 어떨까요? 아마 아무렇지도 않지는 않았을 겁니다. 다시 오지 못할 기회, 아무리 생각해도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기회, 나의 눈에도 틀림없다고 느껴지는 기회, 그 기회를 속절없이 날려버리는 지도자 앞에 선 나는 떨었을지도 모릅니다. 배신감에, 절망감에, 그리고 분노에... 딱 가룟 유다와 같은 마음이었겠죠.


이런 상황에 놓이면 사람들은 보통 2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포기하거나' '따르거나'... 따르더라도 아마 다시는 말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니가 알아서 해라...' 할지도 모르죠. 포기한다면 아마도 내면에서는 반역의 싹이 자라날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내가 죽이고 말지" 하거나 "더 이상 너를 따르지 못하겠다" 하거나...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결론은 내가 아니라 내 안의 왕이 내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향을 생각했더라도 방향을 결정하시는 분은 내 안의 주님이셔야 합니다. 때론 우리가 기도하고 불평합니다.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아서 영적 반역을 합니다. 어느 때는 기도를 포기하기도 하고, 어느 때는 불신에 가득 차 버리기도 합니다. 다시 한번 말합니다. 최종 선택은 하나님이 정하십니다.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결과를 기다리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그분보다 더 합리적일 수도, 그분보다 더 효율적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종 선택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