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서묵상일기104 - 나와 너 사이 하나님이 계셔야 온전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2021. 3. 5. 07:22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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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0:42   그러자 요나단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잘 가게. 우리가 서로 주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 것은 잊지 않도록 하세. 주님께서 나와 자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나의 자손과 자네의 자손 사이에서도, 길이길이 그 증인이 되실 걸세." 다윗은 일어나 길을 떠났고, 요나단은 성 안으로 들어갔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금요일이네요. 분주한 한 주를 마무리하는 날입니다. 오늘 이 아침이 어떤 마음이실까요? 지나간 한 주를 아쉬워할까요? 아니면 후련해하실까요? 혹시 미루었던 일들 때문에 가슴 졸이실까요? 아니면 맞이하는 휴일에 들떠 계실까요? 똑같은 시간이라도 두 마음이 드는 것은 우리에게 늘 주어지는 선택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아름다운 선택을 해 오신 것을 축복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 선택의 은혜가 충만한 하루이기를 빌어요. 기쁘고 감사한 불금 되세요.

 

 

자녀를 낳아본 분들은 아실 테죠. 자녀들이 주는 기쁨이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지를 말이죠. 어제는 교회에 우리 교회 최연소 교인^^께서 방문하셨습니다. 못 본 사이 훌쩍 큰 모습으로 나타났어요. 한 시간 남짓 지난 시간 속에서 어쩌면 한 달 동안 웃을 분량을 다 웃을 만큼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힘이 우리 자녀들에게 있습니다. 특별히 아빠들에게는 자녀들이 주는 무게가 더하죠. 책임에 대한 무게일까요? 가장으로서의 무게일까요? 남다른 부담감도 있는 것이 사실이죠. 

 

저에게는 특별한 부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녀들이 제 인생에, 특별히 제 영성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죠. 이런 말들을 하잖아요? '자녀들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라고요. 저에게는 마치 그런 맹세들이 순간순간 올라옵니다. 영적인 위기들, 가령 유혹이나 욕심들이 올라올 때면 자녀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갈 때가 많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은 마음들이 몰려와 그 위기의 순간을 맞이하곤 했었죠. 중국에서는 한번 이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중국과 모처의 일들을 하면서 아는 이들과 많은 루트가 생겼어요. 여러 가지 가능성들이 엿보였죠. 그러다 보니 은근히 욕심이 났습니다.

 

'혹시 이 계통에 유일하고 독보적인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사업을 해도 대박이 나겠는데?'

 

비록 선교사로 헌신하려 그 자리에 섰지만 선교사로서의 유명세나 혹은 경제적인 성공이 눈에 보일 때가 많았어요. 또한 그런 제의나 가능성이 없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딸아이가 심하게 아팠습니다. 아이를 들쳐 엎고 병원을 뛰어다녔습니다. 그래도 40도를 넘나드는 열은 내리지 않았고, 혼미한 정신으로 앓는 아이를 그저 지켜보아야 했어요. 한 밤중에 아이를 안고 문득 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만 아는 제 안의 욕망들, 거짓과 속임수, 혹은 사역까지 도구로 만들려는 모순들이 떠올랐어요. 걱정과 염려를 가득 안고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데 아이보다 나의 영적 상태를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마치 하나님 당신이 고열에 몸져누우셔서 아파하고 계신 듯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그 일로 눈물의 회개를 털어놓았습니다. 그런데 새벽녘에 딸아이의 열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우연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저는 그날, 내 영성과 자녀의 생명이 결부되어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후 그런 일들이 몇 차례 더 있었어요. 제게 딸아이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자식이기 이전에, 딸아이와 제 사이에 하나님이 계시는 그런 메시지의 생명이었습니다.


결혼을 앞둔 청년들에게 저는 이런 이야기를 곧잘 합니다. 남편과 네 사이에, 아내와 네 사이에 '하나님을 두라'라고 말입니다. 나와 네 사이에 중재할 하나님이 계셔야, 나와 네 사이에 증인 되실 하나님이 계셔야, 진정 사랑이 사랑되고, 관계가 온전히 유지된다고요. 위험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나와 네 사이에 완벽한 밀착이란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누구도 나의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해 줄 사람이 없으며 누구도 나의 입장을 완벽하게 용서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 사이에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그분으로 인해 이해와 용서가 가능해지는 것이기 때문이죠.


'나와 너 사이' 하나님이 계셔야 온전한 사랑되고, 온전한 관계가 유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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