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서묵상일기107 - 대가(reward)을 바라는 순간, 신앙은 사라집니다.

2021. 3. 10. 07:13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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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3:1~13  다윗은,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치고, 타작한 곡식을 마구 약탈하여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다윗은 주님께 여쭈었다. "내가 출전하여 이 블레셋 사람을 쳐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주님께서 다윗에게 허락하셨다. "그렇게 하여라. 어서 출전하여 블레셋 족속을 치고, 그일라를 구해 주도록 하여라." 그러나 다윗의 부하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우리는 여기 유다에서도 이미 가슴을 졸이며 살고 있는데, 우리가 그일라로 출전하여 블레셋 병력과 마주친다면, 얼마나 더 위험하겠습니까?" 다윗이 주님께 다시 여쭈어 보았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똑같이 대답하셨다. "너는 어서 그일라로 가거라. 내가 블레셋 족속을 너의 손에 넘겨주겠다." 그래서 다윗이 그일라로 출전하여 블레셋 사람과 싸웠다. 결국 그들을 쳐서 크게 무찔렀으며, 블레셋 사람의 집짐승들을 전리품으로 몰아 왔다. 다윗은 이렇게 그일라 주민을 구원해 주었다.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은 그일라에 있는 다윗에게로 도망할 때에 에봇을 가지고 갔었다.) 한편 다윗이 그일라에 들어왔다는 소식이 사울에게 전해지니, 사울이 외쳤다. "이제는 하나님이 그 자를 나의 손에 넘겨주셨다. 성문과 빗장이 있는 성읍으로 들어갔으니, 독 안에 든 쥐다." 그래서 사울은 군대를 소집하여, 그일라로 내려가서 다윗과 그의 부하들을 포위하게 하였다. 다윗은 사울이 자기를 해치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에봇을 가져오게 하였다.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었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 사울이 나를 잡으려고 그일라로 와서 이 성읍을 멸망시키기로 결심하였다는 소식을, 이 종이 확실하게 들었습니다. 그일라 주민이 나를 사울의 손에 넘겨주겠습니까? 이 종이 들은 소문 그대로 사울이 내려오겠습니까?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 종에게 대답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그가 내려올 것이다." 다윗이 다시 한번 여쭈었다. "그일라 주민이 정말로 나를 나의 부하들과 함께 사울의 손에 넘겨주겠습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넘겨줄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육백 명쯤 되는 부하를 거느리고, 그일라에서 벗어나 떠돌아다녔다. 다윗이 그일라에서 빠져나갔다는 소식이 사울에게 알려지니, 사울은 출동하려다가 그만두었다.


한국 신학계의 큰 스승이셨던 고 김재준 박사의 일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후배 목사가 그분을 찾아와 목회의 어려움을 토로하셨던 모양입니다.


"목사님,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다가서지만 열매는 없는 것 같고, 알아주는 사람 없는 것 같고, 참 목회가 힘드네요."

김박사는 그런 후배 목사의 말에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방에 있는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시기만 했더랍니다. 그 광경을 후배 목사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가만히 보니 물은 주는 순간 다 빠져나가더랍니다. 한마디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던 것이죠. 그때, 김박사께서 말씀하시더래요.

 

"보이나? 콩나물시루에 물이 고이면 콩나물이 썩는다네. 그렇다고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지 않으면 콩나물은 자라지 않지. 그저 콩나물에는 이렇게 물을 부어주는 거라네. 물이 그냥 흘러나가 콩나물에 아무 영향도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콩나물은 그래도 자란다네. 콩나물 목회를 하게나. 열매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뚜렷한 성과가 나타나지 않아도, 자네는 그저 물을 주게나. 열매를 거두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네.”

목회자에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뭔지 아십니까? 돈과 권력 등 욕심의 문제 다 조심해야죠. 그러나 제게 만약 가장 경계해야 할 일 단 한 가지를 꼽으라면 위의 문제들이 아니라 이 문제를 뽑겠습니다. "하나님께 대가(reward)를 바라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중재를 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부부 사이의 중재, 그룹과 그룹 간의, 혹은 하나님과 사람 간의 중재도 그렇습니다. 중재란 어느 한쪽 편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기에 이 편에서는 저 편을 변명하고, 저 편에서는 이 편을 변명할 때가 있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도록 대변자가 되어 주는 것이죠.

목회자도 사람인지라  자신의 성향이나 스타일이 다 있습니다. 그러나  좋고 싫음을 떠나 중재자로 있을 때는 서로의 대변자가 되어 주는 것이 중재의 기본이죠. 그것이 화평의 사역입니다. 그러나... 그래서 양 쪽의 이해를 끌어낼 수도 있지만 그래서 양 쪽 모두에게 미움을 살 수도 있어요. 한 때는 화평의 도구가 되려고 하다가 오히려  "목사님은 우리 편이 아니다" "목사님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해 속상하고 마음 아픈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때마다 저는 속으로  '다시는 이런 일 안 한다' '다시는 남의 인생에 개입하지 않는다' 다짐해 보기도 했고요. 하나님께는 "왜 사랑할수록,  왜 하나님의 일일수록 욕을 더 먹고, 오해를 더 받아야 합니까?"라고 대들기도 숱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제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 있었는데요. 이런 말씀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칭찬받으려 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칭찬받으려 나의 일을 하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그일라로 갑니다. 그리고 그일라는 다윗으로 인해 블레셋의 위협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이쯤 되면 그일라에게 다윗은 '은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일라 주민들이 다윗을 위해 목숨 다해 지켜주지는 않습니다.  참 허망하고,  도대체 누구를 위해 그 전투를 했는지 모를 상황에 빠져 낙심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다윗은 그렇게 또다시 떠돌이 생활을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면 끝입니다. 그일라 주민들의 반응은 다윗의 순종에 계산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것이 콩나물 목회고,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어느 순간, 우리가 대가를 바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삶의 목적은 대가가 아닙니다. 쓰임 받는 사역만이 목적입니다. 어느 곳에서든 대가를 바라는 순간, 내 삶은 외식이 되고 내 신앙은 모순이 됩니다. 내가 남을 돕는 일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 때문이지 그 일로 나에게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지 그 순종으로 나에게 좋은 일이 주어지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은... 그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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