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서묵상일기93 - 믿음은 시대를 앞서나가는 것입니다.

2021. 2. 11. 07:07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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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 17:41-47  그 블레셋 사람도 방패 든 사람을 앞세우고 다윗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그 블레셋 사람은 다윗을 보고 나서, 그가 다만 잘생긴 홍안 소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그를 우습게 여겼다. 그 블레셋 사람은 다윗에게 "막대기를 들고 나에게로 나아오다니, 네가 나를 개로 여기는 것이냐?" 하고 묻고는, 자기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였다. 그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어서 내 앞으로 오너라. 내가 너의 살점을 공중의 새와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어 주마." 그러자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에게 말하였다. "너는 칼을 차고 창을 메고 투창을 들고 나에게로 나왔으나,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곧 만군의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너에게로 나왔다. 주님께서 너를 나의 손에 넘겨 주실 터이니, 내가 오늘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사람의 주검을 모조리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밥으로 주어서, 온 세상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게 하겠다. 또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쓰셔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에 모인 이 온 무리가 알게 하겠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 주님께서 너희를 모조리 우리 손에 넘겨 주실 것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부터 연휴에 들어가네요. 이래저래 들뜬 기분의 설 명절입니다. 모든 분들 가정에 주님의 손길이 임하시길 바라고 올 한 해도 감사한 일들만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는 장면입니다. 무슨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내용이죠. 이 장면은 몇 가지의 가르침을 우리에게 줍니다. 모든 사람들이 가진 고정관념이 절대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도우심에는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가능성이 만들어진다는 것이죠. 이것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조금 다른 시각에서 이 말씀을 읽습니다. 이는 오래전 봤던 영화의 한 장면에서 얻은 통찰력이에요. 그 영화의 제목은 인디아나 존스입니다. 꽤 유명한 영화였는데 아마도 요즘 청년들은 기억하지도 못할만한 오래된 영화죠. 내용은 대충 이렇습니다. 고고학자인 주인공이 고대 보물을 찾아서 떠나는 그런 내용이죠. 약간의 시간여행 같은 시리즈물 오락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본 계기는 제가 주인공 역의 영화배우 헤리슨 포드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저도 영화 정도는 좋아하는 문화인이랍니다. 내용 가운데는 성경과 관련된 이야기들도 등장하죠. 그중에 별 것 아닌 장면에서 저는 다윗과 골리앗의 메시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통찰력을 얻었어요. 주인공이 어느 마을에서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그 마을의 가장 크고 힘센 장수가 나타나요. 어딜 봐도 이기기 힘들만한 장수였죠. 게다가 그는 큰 칼을 빼어 듭니다. 그 앞에 선 주인공은 정말 초라할 만큼 작았어요. 소위 게임이 안 될만한 상황이었죠. 그런데 기합소리와 함께 칼을 휘두르는 큰 장수 앞에서 주인공은 별로 개의치 않더라고요. 도망갈 생각도 없어 보입니다. 그 큰 장수가 달려드는데도 그 자리에 그래도 서 있습니다. 아무런 대비도 없이 말이죠. 그렇게 장수가 거반 가까이 다가왔을 즈음, 주인공은 시크한 표정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냅니다. 그것은 총이었어요. 그리고는 그 장수를 물리칩니다. 칼이 총을 이기지 못한 것이죠. 저는 이 장면이 너무 웃겼어요. 죄송합니다. 누군가는 죽는 장면인데 웃기다고 해서 좀 그렇습니다. 그래도 그저 영화니까요. 주인공은 마치 결과를 안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이겨버리는 장면을 보면서 저는 다윗과 골리앗의 그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그 주인공이 저는 마치 다윗처럼 보였습니다. 다윗은 이 싸움을 결과를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만약 알았다면 그것은 그저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었을까요? 아니면 확신이었을까요? 저는 이 장면에서 믿음이 단순히 요행을 바라거나 그저 기대감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아니 하나님의 생각을 품은 사람들은 미래를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관점에서만 바라보아도 그렇습니다. 고대 전쟁은 대부분 보병들의 전쟁이었죠. 그래서 인원이 많으면 그것이 전쟁의 승패로 연결되기도 했어요. 그러다 더 나은 전쟁의 방법으로 기병이 생겼고, 전차가 생겼습니다. 더 빠르고 강한 수단들이 만들어졌고, 또 철기 무기들이 만들어지죠. 그런데 여기서만 그치지 않았어요. 칼보다는 더 긴 창이, 창보다는 먼 화살이, 그리고 오늘날에는 총과 대포 등이 만들어졌겠죠. 그런 의미로 보면 골리앗은 구시대 인물이고 다윗은 새로운 시대 인물이었어요. 그는 칼에 비하면 화살이었고, 구식 무기에 비하면 총과 같은 신식 무기를 들었으니까요. 이것은 힘과 크기보다는 기술이었고, 무식함보다는 유식함이었습니다. 화살이나 총 등은 힘이 아니라 기술이 필요한 것이었으니까요. 아마도 다윗 또한 광야에서 그 돌팔매의 기술을 익혔을 테죠.

 

다시 말한다면 믿음은 단순한 요행이 아니라 미래를 사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몰라요. 내가 하나님의 생각을 가졌다면 그것은 이 땅에 속한 생각이 아니라 하늘의 생각입니다. 이는 단순한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예요. 앞서 나가는 문제죠. 혹시 미래를 알고 싶으신가요? 어쩌면 믿음으로 사는 것, 하나님을 믿는 것, 그것이 미래의 생각으로 오늘을 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믿음은 요행을 바라는 생각이 아니라 현실을 앞서 나가는 행동이에요. 우리가 믿음을 가졌다는 것은, 시대를 앞서 나가는 것입니다. 때론 그것이 외로울 수도 있고,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또한 지금의 생각과 고정관념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이기도 하죠. 그래서 고난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미래는 반드시 현재가 되듯, 우리의 믿음 또한 반드시 곧 이루어지는 현실이 됩니다. 시대를 앞서 나가는 우리 모두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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