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11. 07:22ㆍ묵상하는말씀/느헤미야서묵상
오늘 본문은 담담하게 적고 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담하기 그지없습니다. 먼저 느헤미야의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성벽 재건 공사의 완공으로 모든 일이 잘 풀릴 줄 알았는데 유대 귀족들은 여전히 적(?)과 긴밀히 내통하고 있었네요. 어쩌면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도비야는 암몬 사람으로 산발랏과 함께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을 극렬히 반대했던 사람이죠. 그런데 유대의 귀족들이 그와 사돈 관계들을 맺고 있습니다. 마치 동맹을 위해 정략결혼을 하듯 말이죠. 이런 인연을 바탕으로 노골적으로 도비야의 편에 서는 이들이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모습이에요.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극에 보면 조정에서 왕과 대신들이 회의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하죠. 보통 이들은 둘로 갈려서 대립합니다. 그중의 하나는 어김없이 당시 영향력이 컸던 명나라든 청나라든 중국의 눈치를 보며 그들을 두둔하는 이들이 있죠. 이런 모습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습니다. 중국은 일본으로 바뀌고, 다시 일본은 미국으로 바뀌는 것뿐, 우리나라의 주류 사회는 늘 누군가의 힘을 빌려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이들로 가득하죠.
그들이 그러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어떻게든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죠. 새로운 세상이 오면 그 기득권을 빼앗길까 봐, 모든 이들을 위한 평등과 공평의 세상이 오면 자신들이 누리던 권리들을 놓칠까 봐 그들은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특별히 정의와 공의, 차별 없는 평등, 스스로 세워가는 자강론 등을 들고일어나는 세력들을 짓밟는 데 혈안이 되죠. 모든 작은 자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 모든 이들이 다 같은 권리를 누리고, 어떤 것으로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은 그들에게 자신들의 권리를 내려놓아야 하는 앞이 깜깜한 세상이 되죠. 그래서 민초들의 혁명은 무참히 짓밟혀 왔고, 권리를 백성들에게 돌려주자는 지도자는 제거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 지도자들에게 희생당하신 장면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급급하여 예수님의 말씀과 생각을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죠.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모든 생명은 귀중하며, 가진 자는 나눠주고, 힘 있는 이들은 도와주며 서로 공평과 정의를 실현하라는 말씀은, 자신들에게는 독약과도 같은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25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레 25:23 땅을 아주 팔지는 못한다. 땅은 나의 것이다. 너희는 다만 나그네이며, 나에게 와서 사는 임시 거주자일 뿐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땅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땅으로 하여금 부를 축적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죠. 물론 땅을 팔지도 사지도 말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땅은 이 땅에 살 때에 주어진 유업이죠. 그 땅으로부터의 소산을 통해 나누고 함께 하며 살도록 주어진 은혜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 땅을 부 축적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전하려는 것은 아니고요. 만약 이런 내용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강남의 어느 교회에서 목사님이 설교로 전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땅으로, 건물로, 임대로, 부를 축적하지 말라고 말했다면 말이죠. 생명을 소중히 다루라는 말씀을 전할 때는 아무 문제없지만, 그러니 생명 앞에서 너의 권리를 포기하라고 한다면 아마도 그는 빨갱이로 매도당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적당히 은혜롭게, 적당히 신앙인으로 사는 데 익숙합니다. 적당히 하나님께 예배하며, 적당히 가진 자는 가진 자대로, 없는 자는 없는 자대로 상하 관계를 확실히 하며 살아가는 데 익숙하죠. 지도자는 그저 적당히 지도자로, 백성은 그저 적당히 백성으로만 살아가면서, 지금까지 이어온 기득권의 틀을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신앙 생활하는 것을 바라고 소망하며 삽니다. 오늘의 본문은 마치 느헤미야에게 이런 적당함을 요구하는 귀족들의 마음이 적혀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아침부터 너무 심각한 이야기를 나눴다면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이 우리 안에도 작용하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공동체의 이익보다 나의 이익을 먼저 따지고, 하나님의 마음보다 내 감정이 더 중요한 것이 되어 버리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손해를 본다면 그것은 옳은 일이 아니고, 내 입지가 좁아진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면, 나도 또한 유대 귀족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잠언 말씀 하나가 생각나네요.
잠 22:4 겸손한 사람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받을 보상은 재산과 영예와 장수이다.
저는 겸손에 보상이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낮아지는 자에게 높이시는 은혜가 반드시 있고, 나누는 자에게 채우시는 역사가 반드시 있다고 믿죠. 죽음의 좁은 길을 가는 이들을 하나님은 결코 버려두지 않으시고, 부활과 생명으로 채우시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나의 기득권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착각이죠. 오히려 나의 기득권을 내려놓으면 내게 필요한 유익과 이익은 하나님이 챙겨주십니다. 그것이 믿음의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기적이에요. 우리 모두 이 기적을 믿는 그리스도인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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