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9. 07:14ㆍ묵상하는말씀/느헤미야서묵상
어제 묵상을 나눈 이후, 계속해서 같은 본문이 하루 온종일 묵상 되었습니다. 하나님 주신 마음이라고 믿고 다시 한번 같은 본문을 묵상합니다. 느헤미야는 스마야의 예언이 거짓인 것을 알았습니다. 거짓인 것을 분별하는 방법이 특이합니다. 느헤미야의 분별법을 통해 거짓으로 다가오는 속삭임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먼저 겁을 먹게 하는 일들이 거짓입니다. 고대 하등 종교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있는데요. 그것은 겁을 주어서 굴복시키는 방법입니다. 죽을까 봐서, 저주받을까 봐, 바다의 신, 하늘의 신이 노하실까 봐 제사하고 엎드리는 행위가 그렇습니다. 전형적인 샤머니즘이죠. 오늘날도 하나님의 이야기를 하면서 겁박하고 두려움에 빠지게 만들어서 공격하는 이단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릴까 봐, 하나님이 노하셔서 저주하실까 봐, 벌주실까 봐 벌벌 떨게 만들면서 신앙 생활하게 만드는 이들이 있습니다. 단호하게 말하면 가짜입니다.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겁과 두려움으로 우리를 다스리시지 않습니다. 그분이 다가오시는 방법은 사랑입니다. 물론 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을 전제로 한 표현일 뿐입니다.
우리가 겁을 먹으면 안 하던 짓을 하게 되죠. 겁을 먹으면 이성이 상실되고,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동물들이 그렇죠. 겁을 먹으면 꼼짝하지 못하고, 도망도 치지 못합니다. 순간 모든 감각이 마비되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애먼 짓을 하게 됩니다. 본래 성전의 지성소는 제사장만이 들어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들어가자고 말하네요. 그곳은 안전하다고 말이죠. 물론 안전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고 여겼으니까요. 그러나 이는 성전을 더럽히는 일이었습니다. 정상적이라면 하지 않는 일이고, 그 당시 그들은 율법으로 금지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겁을 먹으면 그런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겁먹은 대로 행동하죠. 물불을 가리지 않게 되죠. 그것이 겁을 주는 이유이고 힘입니다.
최근에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다 잘 될 거야!”라는 말이 있죠. 이를 두고 너무 낙관적이라는 생각을 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무엇이든 다 잘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무책임하게 느껴지실지도 몰라요. 맞습니다. 낙관적인 생각이죠. 그런데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여러분은 낙관적이지도 비관적이지도 않은 중립이신가요? 그래서 낙관주의가 편협해 보이시나요? 혹시 나도 모르게 비관주의적이 되어 계시지는 않으신가요? 마치 겁을 먹고, ‘이렇게 되면 어떡해?’ ‘저렇게 되면 어떡해?’하면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걱정하고 근심하고 염려하며 하루를 보내시지는 않으신가요? 가끔 저는 추측하고 예상하며 걱정하고 염려했던 때가 많았습니다. ‘저 사람이 이러면 어떡하지?’ ‘이런 일이 저렇게 되면 어떡해?’ 문제는 그런 걱정과 염려를 하는 사이 저는 손을 놓고 있더라고요. 그때 드는 생각이 ‘그런 일이 벌어지면 그때 해결하자’였습니다. 지금은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지 말자’였습니다.
‘대학 못 가면 어떡해?’ ‘결혼 못 하면 어떡해?’ ‘아프면 어떡해?’ ‘죽으면 어떡해?’ 죄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인데 우리는 걱정하고 염려하죠. 문제는, 그것이 겁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겁을 내면 정상적인 사고를 못 한다고 말씀드렸죠? 그러니 그 일에서 일이 꼬이는 겁니다. 이리저리 정상적이지 않은 행동과 문제들을 스스로 일으키게 되죠. 겁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안 돼!’ 이런 사람은 눈앞에 되는 일이 주어져도 주저합니다. 그리고 놓치죠. 왜냐하면 먹을 것을 가져다줘도 자신은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심지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지지?’ ‘잘 되면 안 되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걱정을 합니다. 아닐 것 같죠? 겁을 먹고 늘 부정적인 사람은 꼭 이처럼 어리석은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왜 감사하는 일을 해야 하는지 아세요? 이것은 무슨 긍정의 힘도 아니고, 낙관주의도 아닙니다. 이는 마치 편협했던 나의 생각을 고치는 일이에요. 우리는 알게 모르게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사고에 함몰되어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모든 일에 걱정투성이죠. 겁이 나기 때문입니다. 두렵기 때문이에요. 아닌 것처럼 보여도 우리는 다 겁쟁이입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돌려놓는 방법이 감사일뿐입니다. 이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일반적인 거예요. 피곤하면 쉬어야 하듯, 겁먹은 내 영성에 회복을 주는 일과도 같습니다.
느헤미야는 마지막에 기도를 하죠. 자신을 두려움에 빠지게 하는 이들을 기록하며 하나님께 이릅니다. 저는 이 기도가 감사의 기도처럼 들렸습니다. ‘나를 겁에 빠지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기도로 말이죠. 내 안에 교만한 산발랏과 도비야가 있어요. 폼 잡고 아닌 척하는 스마야가 있고, 괜히 괜찮은 척하는 노아댜가 있습니다. 비판은 멋진 일처럼 꾸미고, 걱정과 염려는 미래를 위한 준비처럼 포장하는 예언자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잘 될 거야!’라는 말은 무슨 광신자들이나 하는 소리처럼 여기는 지배자들이 나를 다스리고 있어요. 이들을 끊어내야 합니다. 부정적인 것은 병입니다. 습관적인 걱정과 염려는 병이에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마치 일어난 것처럼 생각하고 느끼는 것은 병입니다. 치유가 필요해요. 그러니 감사하세요. 감사는 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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