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11. 06:49ㆍ묵상하는말씀/요한복음묵상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의 가르침에 사람들이 놀랐던 모양입니다. 아마도 그들이 들어도 틀린 말씀이 없었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그들의 놀람은 결코 칭찬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뭐 이런 류의 반응이었을 것 같아요. "정말 아는 것은 많은데 왜 이리 싹수가 없냐?" 그러니까 말은 맞는데 받아들이기는 싫다는 의미겠죠. 이에 대해 예수님은 '나의 가르침'과 '하나님의 가르침'을 대비시키며 말씀하시죠. 이 논지는 지금껏 요한복음이 견지해 온 것입니다. 어제도 우리는, 내 안에 있는 두 가지 태도에 대해 묵상했는데요. 같은 맥락입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내 뜻을 관철하려는 태도와 주님을 따르려는 태도가 대비되듯이 예수님은, 신앙은 나의 뜻이 아니라 그분의 뜻이 드러내는 것임을 확실히 하시죠. 그러시면서 한 가지 예로 저들의 사고를 비판하십니다. 아마도 할례는 안식일과 상관없이 행했던 모양인데요. 안식일에 할례는 가능하고 병자를 고치는 일은 부당하다고 말하는 것은 사람 중심이 아니라 형식 중심이라는 것을 꼬집으신 것입니다. 할례도 사람을 위한 것이고, 치유도 사람을 위한 것인데 어느덧 할례라는 행위, 치유라는 행위가 사람보다 더 우선되고 집중되는 태도를 비판하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빠지기 쉬운 신앙의 함정이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를 돕다가 보면 그 누군가의 유익보다는 내가 했다는 자부심이 더 큰 경우가 있습니다. 누군가 잘되고, 도움받고, 살아나는 것이 감사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인정받고, 박수받는 것이 더 중요하게 될 때가 있지요. 마치 주님을 향한 나의 마음보다, 드리는 제사 행위가 더 중요하듯이 말입니다. 이는 어쩌면 이런 질문과 같을지도 모릅니다. "결혼식이 중요한가? 사랑이 중요한가?" "알이 중요한가? 생명이 중요한가?" 요한복음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이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오늘 이 질문 앞에 선 사람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인정하는 듯, 인정치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맞지만 나와 뜻이 다르면 아니다는 태도로 일관하죠. 아마도 미워했던 모양입니다. 아니 죽이려고까지 한 모양이에요. 생각해보면 예수님이 뭐 그리 잘못을 했을까 싶습니다. 뭐 그리 위험한 분도 아니셨고요. 그렇다고 무장봉기를 할 그런 느낌도 없습니다. 그런 것을 무서워했을 리도 없어요. 생각해보면 미움이라는 것이 그리 큰 잘못 때문만은 아닙니다. 뭔가 대단한 문제나 위험 때문에 죽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아니죠. 단지 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고, 단지 내 뜻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런 마음이 들키자 예수님을 귀신 들렸다고까지 하죠. 요즘으로 말하면 '이단'이라고 몰아가는 것과 같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내 안의 뜻을 완전히 접고 하나님의 뜻만으로 세상을 살아야 한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이 말이 오해가 되실지 모르겠는데요. 나는 없고 하나님만이라는 말은 그리 성경적이라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없다면 나를 만드실 이유도 없을 것이고, 나의 뜻이 필요 없다면 나에게 뜻을 품는 사고와 이성을 주시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뜻도, 생각과, 이성적 사고도 주셨어요. 이는 그것을 사용하라는 뜻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 뜻과 사고와 이성적 판단이 하나님과의 조화를 통해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 어떤 경우든,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사용하시고, 우리의 이성을 쓰십니다. 그렇게 하시려고 우리를 만드셨고, 그렇게 하시도록 우리에게도 권한을 주신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귀를 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하고, 그분의 생각을 읽을 줄 알아야 하죠. 그리고 나의 뜻과 조화를 이루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와 반대되는 생각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나와 다른 존재, 나와 다른 생각을 맞는 태도 말입니다.
우리는 매일 나와 다른 주님의 메시지 앞에 섭니다. 그 말씀을 내 안에 받아들이고 내 뜻과 조화를 이루며 시너지를 만드는 일이 영성입니다. 그 일을 이렇게 매일 아침마다 하죠. 나와 달라서 상대방을 욕하고 막아서는 것이 아닙니다. 내 뜻 이외에는 다른 것은 필요 없다는 태도 때문에 싫어하는 것이죠. 이것이 죄입니다. 마치 시멘트(흙)와 물(영)이 섞여야 단단한 건축물을 만들어 내는데, 그냥 시멘트만으로 반죽한다고 우기는 것과 같은 것이죠. 그것은 단단해지지도, 찰지지도 않습니다. 그저 먼지만 내뿜을 뿐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나와 다른 존재, 나와 다른 입장, 나와 다른 생각을 대하는 태도를 잘 만드셔야 합니다. 그 상황들을 주신 이유들이 다 있습니다. 그 다름과 잘 대화하세요. 우리는 늘 그 다름과 대면합니다. 그 다름과 만나 우리는 성장을 하는 거예요. 오늘도 다름에 말을 걸고, 웃으며 손잡으시길 빕니다. 그리고 다름이 다르지 않음을, 또한 또 다른 새로움을 만드는 기적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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