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서묵상21 - 우리가 받은 복이 감사의 대상이 아니라 주시는 분의 마음이 대상입니다. 요한복음6:22-29

2020. 2. 5. 07:14묵상하는말씀/요한복음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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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서 몇 가지 사실이 확인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배를 타고 벳새다로 오셨고, 무리들은 그들을 쫓아 역시 배를 타고 그곳으로 왔다는 사실이죠. 그리고 그곳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타고 오셨던 배가 떠났다는 것을 알았고, 또한 그 배에 예수님께서 오르시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았죠. 그리고 하루가 지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부분을 기록한 목적이죠. 그러니까 무리들은 예수님의 행적을 열심히 쫓고 있는 것 같아요. 제자들이 떠났다는 것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떠나지 않고 그들 곁에 계신다는 사실이 중요했던 것이죠. 어쩌면 예수님과 함께 하고픈 그들의 마음이 읽힙니다. 어제 묵상처럼 예수님을 두고 떠나는 제자들과는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고자 정말 애썼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예수님도 사라지셨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그들은 타고 온 배를 이용해 가버나움으로 갑니다. 가버나움으로 가신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늘 가버나움에서 사역을 하셨으니 짐작으로 갔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이로 인해 예수님과 제자들이 간 곳이 가버나움이었음이 또 확인되네요. 그리고 그곳에서 무리들은 예수님을 다시 만납니다. 그리고 첫마디로, “언제 여기로 오셨습니까?”라고 말하죠. 이 말이 여러 감정을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많이 찾았다’는 의미로 읽히기도 하고요. ‘왜 우리를 두고 떠났느냐?’는 원망도 좀 섞인 듯해 보입니다. 아무튼 이런 대화와 기록을 보아서는 요한복음 저자는 지금 무리들이 예수님을 열심히 찾았고, 따랐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다음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죠.

예수님은 그렇게 간절히 예수님을 찾는 무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죠.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독설에 가깝습니다. 마치 이런 말과 같아요. 사랑하는 여인을 늘 쫓아다니는 남자에게 여인이,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외모나 부를 탐내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죠. 어쩌면 무리들에게는 충격적인 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좋아서 쫓아왔다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아니 어쩌면 자신들의 속내를 들켜서 더 충격이었을지도 모르죠.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그들의 열심이 예수님을 인정하거나 사랑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로지 자신의 유익과 배부름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다림 사역을 하죠. 또 반찬 나눔 사역도 합니다. 주로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작은 사역들을 하죠. 그런데 우리가 나누는 것은 반찬이 아니고, 교육이 아닙니다. 그들을 사랑하고 같은 삶을 사는 같은 이웃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일 뿐이죠. 더불어 사는 이웃이기에 함께 먹고, 같은 생명이기에 내가 누리는 것도 함께 누리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주는 것에만 관심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우월적 권리일지도 몰라요. 마치 나는 돕는 자, 너는 받는 자의 구분처럼 말이죠. 이것의 차이가 백지장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우리가 이웃이기 때문이고, 모두 다 하나님의 창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차별이 없고, 같은 생명이기 때문이죠. 우리가 더 나아서도 아니고, 복음이 무슨 권리나 기득권이어서도 아닙니다. 이웃으로 인정하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나와 다르지 않은 같은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 많은 것을 퍼주어도, 나는 주는 자, 너는 받는 자, 그런 차별적 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그 행위는 사랑이 아닙니다. 감사는 선물에 있지 않습니다. 감사는 주는 이의 마음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데 있어요. 우리가 받은 복이 감사의 대상이 아니라 주시는 분의 마음이 대상입니다. 이것을 잊으면 감사는 감사가 되지 않는 것이죠.

예수님은 오늘 무리에게 이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것도 기득권이 아닙니다. 그들은 가난하기에 무조건 사랑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에게는 가난도 부도 차별이 없습니다. 누구나 그분의 사랑이 필요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무리를 향해하신 말씀을 우리가 듣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다." 이 말씀을 메시지 성경은 이렇게 번역해 놓았네요.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에게 너희 삶을 걸어라. 그렇게 너희 자신을 걸 때에야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수 있다." 우리가 예수 믿는 이유, 받은 부귀영화 때문이 아닙니다. 월급이 많기 때문도 아니고, 복지가 좋아서도 아닙니다. 다만 내가 목숨 걸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목숨을 걸 가치가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열심히 쫓는 이유예요. 오늘도 그 믿음이 흐르는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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