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서묵상17 - 우리의 신앙은 오직 아버지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5:19-29

2020. 1. 31. 07:11묵상하는말씀/요한복음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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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갯 이야기입니다. 어느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친구들 사이는 돈독하고 좋았는데요. 그래도 마음에 걸리는 일은 있었습니다. 그것은 친구들 중에 한 사람이 유독 잘난 체를 하는 것 때문이었죠. 그래도 서로가 믿고 의지하는 친구들로 관계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들은 이 잘난 체하는 친구를 좀 놀려주고 싶었어요. 그 친구의 잘난 체는 이런 것이었죠. 친구들이 피아노를 칠 때마다 비평을 한 겁니다. 이래서 좀 그렇고, 저래서 좀 그렇고, 당최 칭찬이나 격려는 없었어요. 물론 이 친구가 잘하기는 합니다. 게다가 꼭 이 친구는 세계적인 피아니시트의 능력을 들먹이면서 친구들의 기를 죽이기까지 했죠. 어느 날 친구들은 그 잘난 체하는 친구에게 비평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모든 친구들이 모여 피아노를 치면 이 친구가 비평해 주도록 자리를 마련한 것이죠. 잘난 체하는 친구에게 더욱 잘난 체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다른 점은 친구들이 치는 피아노는 흉내일 뿐이고 들려주는 연주 소리는 잘난 체하는 친구가 그렇게 극찬에 마지않는 세계적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들려준 겁니다. 그러니까 잘난 체하는 친구는 친구들의 연주가 아닌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평가하게 된 셈이죠.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잘난 체하는 친구는 연주를 들은 후, 끝없는 비평들을 쏟아냈습니다. 그것도 신나게 말이죠. 더욱이 비평을 하면서 그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이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그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를 비교하며 비평하는 꼴이 되어 버린 것이죠. 그렇게 그 친구의 허영과 잘난 체를 고쳐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의 천재적인 화가 천경자 화백의 작품 하나가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위작 논란이죠. 아마도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것으로 아는데요. 문제는 천경자 화백 자신이 그 그림이 자신이 그린 그림이라고 말했음에도 소위 전문가들은 그 작품을 위작이라고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천경자 씨 본인도 오류가 있을 수 있고, 착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배제할 수는 없으나 자신이 만든 작품을 자신의 것이라고 말하는데 남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좀 이상하다 싶을 때가 있죠. 가끔 한국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분쟁들을 봅니다. 서로가 영적이니, 말씀이니, 교리니, 진리니 가지고 싸우죠. 서로 자신이 맞다고 여기고, 더 하나님 말씀에 가깝다고 싸웁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예수님이 오셔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죠. 이 말이 참 씁쓸합니다. 

 

오늘 본문은 어제 말씀과 이어져 있습니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다 하여 율법을 들먹이는 이들에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율법을 만든 이가 바로 나다.”라고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율법을 들먹이지만 그 율법은 만드신 분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시선에서 해석된 율법들이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다름이 아닙니다. 나의 시선을 버리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겠다는 결단입니다. 나의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품어, 아버지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겠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본질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이익과 불이익이 있습니다. 아픔도 있고, 기쁨도 있죠. 각자의 입장에 따라 선택의 기준들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 앞에서 그리스도인의 기준은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기득권일수도, 자신의 경험일 수도, 감정일 수도 없습니다. 우리를 믿음으로, 신앙으로 이끄는 것은, 오직 아버지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그분이 나를 바라보시는 시선, 그것이 나의 시선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기독교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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