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묵상하는말씀/예레미야묵상

예레미야서묵상61 -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이듯이, 형통의 길도 나로부터 입니다. 예레미야 23:16-29

오늘 본문은 예언자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먼저 예언자(선지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해보죠. 오늘날 선지자들은 누구일까요? 아마도 선지자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목회자나 종교 지도자를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구약의 의미로 보면 맞습니다. 선지자들은 특별히 선택받은 자들이니까요. 영적인 통로로서 주어진 사명이 있는 이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로 말하면 의미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선지자와 왕, 제사장의 역할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완전히 성취되었고, 그리스도를 영접한 우리들은 이제 그를 따라 영적인 선지자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지금 이 시대의 선지자라면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이 되는 거죠. 우리는 지금 역사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묵상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영적 지식을 얻기 위해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나의 길을 묻기 위해 성경을 보죠. 그렇다면 말씀의 칼끝은 언제나 나를 향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로 이 말씀을 읽어나가 보죠.    

몇 가지 말씀들이 가슴을 치게 만듭니다. 먼저, 예언자의 말을 듣지 말라는 말씀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이를 특정 예언자로 치부하면 내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되는 것이지만, 예언자를 나로 생각하면 어떨까요? 나의 말을 아무도 듣지 않는다면 말이죠. 그 이유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6절, "그들은 나 주의 입에서 나온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마음속에서 나온 환상을 말할 뿐이다." 이 말씀이 숨이 막히도록 아픕니다. 우리는  많은 시간 말씀을 듣고 보았지만 우리의 입에서는 말씀이 아니라 언제나 나의 말만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나의 성격대로, 뜻대로, 경험대로 말하고, 그것을 마치 주님의 말씀처럼 떠버리는지도 모르죠. 그러면서도 또 이렇게 말하죠. 17절, "만사가 형통할 것이다. 주의 말씀이다." 주님의 사랑, 주님의 은혜는 다 간구합니다. 또 잘되기를 바라죠.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멸시합니다. 그분의 말은 듣지 않으면서 잘되기는 바라죠. 마치 일은 하지 않고 열매만 따 먹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18절 말씀을 보세요. "그 거짓 예언자들 가운데서 누가 나 주의 회의에 들어와서, 나를 보았느냐? 누가 나의 말을 들었느냐? 누가 귀를 기울여 나의 말을 들었느냐?" 마치 말씀도 읽지 않고, 주님을 생각하지도 않으며, 예배도 드리지 않으면서 괜찮을 것이라고, 복 받을 것이라고, 주님은 나를 사랑할 것이라고 자위하는 우리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처럼 들립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쉬운 예를 들어보죠. 내일을 잔칫날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잔치를 준비하죠. 여기에는 믿음이 있습니다. 내일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죠.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이지만 올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준비를 하죠. 준비 또한 믿음의 실체입니다. 잔칫날로 정한 내일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는다면 준비를 할 것이니까요. 만약 준비가 없다면 내일이 올 것을 믿지 못한 결과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잘될 것이라는 미래의 확신은 오늘 나의 준비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복이 함께할 것이라는 믿음은 오늘 내가 주님의 말씀과 뜻을 품는 것으로 시작된다는 것이죠. 

사도 요한은 우리를 축복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삼서 1:2)

축복의 말씀이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우리는 원합니다. 그런데 그 출발점이 있어요. 그것은 영혼이 잘 되는 것입니다. 새번역에는 이 부분을 '영혼이 평안함 같이'라고 번역했어요. 영혼이 평안함이란 무엇일까요? 영혼이 잘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나의 영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호흡으로 생기를 불어 나의 영혼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영혼이 잘됨은 하나님의 관계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단번에 범사에 형통케 할 능력이 우리에게 없습니다. 그러나 영혼이 잘되도록 기도하고, 예배하고, 말씀을 가까이할 능력은 우리에게 있어요. 그런데 그 능력이 범사에 형통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잊어버리죠. 

정말 열매를 바란다면 지금 씨를 뿌리세요. 정말 잔치를 바란다면 지금 물을 끓이세요. 정말 형통을 바란다면 지금 말씀을 가까이하세요. 주님이 나의 구주이심을 정말 믿는다면 그분과 가까이하세요. 그분이 나의 삶에 열쇠임을 믿는다면 그분을 알기에 힘쓰세요.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이듯이, 형통의 길도 나로부터 입니다.

728x90

'묵상하는말씀 > 예레미야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레미야서묵상 66 - 소망은 절망의 바닥에서 피어납니다. [2019.11.05.화] 예레미야 25:32~38  (0) 2019.11.05
예레미야서묵상 65 - 오늘도 우리가 서 있는 곳에 주님의 예비하신 손길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25:15~31  (0) 2019.11.04
예레미야서묵상 64 - 끈질김은 올바로 사용될 때 인내가 되지만 잘못 사용하면 고집이 됩니다. 예레미야 25:1~14  (0) 2019.11.02
예레미야서묵상63 - 그리스도인은 처연한 인생의 삶 가운데서 나를 인도하시는 작은 지팡이와 막대기를 보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레미야 24:1~10  (0) 2019.11.01
예레미야서묵상62 - 양약고구(良藥苦口), 좋은 약일수록 입에 쓴 법입니다. 예레미야 23:30-40  (0) 2019.10.31
예레미야서묵상60 - 저절로 이루어지는 구원 또한 없습니다. 예레미야 23:1-15  (0) 2019.10.29
예레미야서묵상59 - 저절로 좋은 부모가 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 22:24~30  (0) 2019.10.28
예레미야서묵상58 - 나의 삶은 주님이 주신 사명이 이루어지는 자리입니다. 예레미야 22:13-23  (0) 2019.10.26
예레미야서묵상57 - 가만히 있으면 멸망의 길이고, 나를 바꾸면 희망의 길이 됩니다. 예레미야 22:1-12  (0) 2019.10.25
예레미야서묵상56 -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 21:1-14  (0) 2019.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