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묵상59 - 저절로 좋은 부모가 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 22:24~30

2019. 10. 28. 07:08묵상하는말씀/예레미야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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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고니야라고도 불리는 여호야긴을 향한 무시무시한 경고로 가득한데요. 고작 나라를 다스린 기간이 석 달밖에 되지 않는 그에게 무슨 잘못이 그리도 많아서 이런 경고를 하실까 싶어요. 성경은 그가 어떤 악한 일을 저질렀는지 소상히 밝히지는 않고 있는데요. 다만 악했다는 것만을 기록하고 있죠. 그래서 더욱 궁금합니다. 무엇을 그리 잘못했을까? 

여호야긴이 왕위에 오른 시기에 대해 성경의 기록은 조금 엇갈립니다. 열왕기하 24장에 보면 그가 왕이 될 때의 나이가 18세로 기록되어 있어요. 그런데 역대하 36장에 보면 그 나이를 8세로 기록하고 있죠. 아마도 성경을 필사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긴 것 같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이 부분에 대해 대체로 18세로 해석을 합니다. 보통 필사의 과정에서 빠뜨리는 경우는 있어도 첨언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인데요. 아무튼 8세든, 18세든 어린 나이임이 틀림없습니다. 여기서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린 나이에 어디서 악한 짓을 배웠을까? 하는 생각 말이죠. 그 나이에 벌써 세상의 악함을 다 경험하거나 배웠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권력의 속성에 대해 느끼기에는 통치 기간도 너무 짧죠. 아마도 그는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악한 마음을 가졌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어디서 그 악함이 계승되었을까요?

이 생각은 그의 할아버지 요시야 왕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는 보기 드문 유다왕국의 선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유다의 종교개혁을 이끌었고, 영적 개혁의 지침서인 율법을 완성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신앙적으로나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었죠. 그런데 그의 아들들은 그와 확연히 달랐습니다. 마치 아버지의 신앙에 반감을 품으며 자란 것처럼 철저하게 아버지와 반대의 길을 걷습니다. 선함은 저절로 전해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 내가 선한 일을 한다고 그 선함이 아무 저항 없이 다른 이들에게 전파되는 것은 아닙니다. 선함은 특별한 노력이 필요해요. 반면 악함은 특별한 노력 없이도 쉽게 전파됩니다. 우리의 본 모습이 악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을 보면 악한 것은 쉽게 배우죠. 이에 비해 선한 것들은 반복하고 성실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어쩌면 요시야는 자신은 선했을지 모르나 자식들에게는 그 선함을 위한 특별한 노력을 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선하다고 자식이 저절로 선함을 배우는 것은 아니에요. 누군가에게 선함을 전하기 위해서는 성실해야 합니다. 반면 악한 마음은 저절로 전해지는 것 같아요. 

저절로 좋은 부모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선하다고 자식도 선해지지 않아요. 내가 사역 잘한다고 남들이 저절로 나를 배우지 않습니다. 우리의 사역은 사람을 위해 하는 것이지 일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주어진 사람들, 자녀들, 늘 만나고, 늘 가까이 있는 이들을 위해 나의 선한 마음을 성실하게 전해야 합니다.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의 생각과 꿈을 가르쳐야 해요.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줘야 합니다. 내가 물려주는 수고를 하지 않으면 믿음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내가 교회 나간다고 자녀들이 교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를 가르치고, 자신의 영적인 생각을 나눠야 자식도 교인되는 거예요. 반면 내 안의 쓴 뿌리들, 상처와 아픔과 그리고 악함은 내가 가르치지 않아도, 보여주지 않아도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 무서우리만큼 잘 전해집니다. 악한 영향력이 선한 영향력보다 훨씬 큽니다. 마치 열전도율이 높은 철판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말이죠. 공중권세 잡은 자들에 속한 이 땅은 악함의 전도율이 훨씬 강하기 때문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선하게 산다고 자식이 선해지지 않아요. 선함을 알리고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은 엄연히 달라요. 그냥 공부하는 것과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 다르듯이 말이죠. 신앙은 가르쳐야 합니다. 전해주어야 하고요. 심어줘야 합니다. 꾸준히, 그리고 성실히 가르쳐야 하죠. 그렇게 자신의 신앙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저절로 좋은 부모 되지 않습니다. 좋은 부모가 되도록 매일 성실히 자녀들에게 선한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신앙은 흘러가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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