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묵상57 - 우상숭배는 자신이 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사사기 18:14-31

2019. 9. 19. 06:47묵상하는말씀/사사기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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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지파는 전투를 앞두고 미가의 집을 찾아갑니다.
이유가 있죠.
아무래도 이들은 미가의 집에 있는 제사장이 영험하다고 느꼈던 모양입니다.
그의 축복으로 자신들이 거할만한 땅을 발견했다고 여겼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전쟁을 앞두고는 다시 찾은 것이겠죠.
이번에는 아예 모든 신상과 우상들, 심지어 제사장까지 데려옵니다.
무력으로 진행된 이 사태에 제사장은 작은 저항을 해 보지만 단 지파의 제안에 금세 수긍하고 말죠.
그 제안이란, 작은 개인의 제사장보다 한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스카우트 제의인 셈이죠.
마치 작은 교회에 있는 목회자에게 큰 교회 청빙을 하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제사장이 그 제안을 바로 받아들인다는 점이죠.
불의한 방법의 탈취임에도 그 제안에 마음이 녹아, 한 패거리가 됩니다.
그 제사장의 타락에 대해 이미 나눈 바 있는데요.
이에 대한 확인이 되는 셈이죠.
자기의 소견대로 행동하는 단 지파나, 자기의 욕망대로 옮기는 제사장이나 도찐개찐이네요.

결국 단 지파는 라이스라는 땅을 얻습니다.
제사장도 바라던 더 나은 조건을 얻죠.
이야기는 그렇게 끝나는 것 같습니다.
결과가 좋은 듯 말이죠.
그런데 성경은 이 에피소드의 마지막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31    그들은,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는 동안, 내내 미가가 만든 우상을 그대로 두고 섬겼다.

단 지파가 섬기는 것은 우상이었다고 단언하죠.
이는 미가가 스스로 고백한 말이기도 합니다.
단 지파가 자신의 것을 약탈해 갈 때 이렇게 항의합니다.
24    미가가 말하였다. "뭐요? 내가 만든 신상과 제사장을 빼앗아 가면서 무슨 일이 있느냐고?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요?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이오?"

저는 이 말이 이 에피소드의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만든 신을 섬기는 것은 우상이라고 말이죠.
미가나, 미가 집에 거했던 제사장이나, 단 지파 모두, 자신들이 만들고, 자신들의 욕망을 채워줄 신을 만들었습니다.
나의 뜻이 이루어지고, 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신을 만들었어요.
이것이 우상이라고요.
이는 그 옛날 무식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마치 우상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존재하는 모습입니다.
나의 욕망이나 생각과 배치되는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나를 고치기보다는 하나님을 고치려 들고,
불평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결론이 주님의 생각보다 더 낫다는 이유 때문이죠.
다시 말해, 하나님보다 자신이 더 똑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순종보다 불만이 더 많은 거죠.
하나님이 틀리고, 내가 맞다고 생각하니까요.

우리의 신앙이 그렇습니다.
나의 뜻, 나의 생각과 맞으면 불타오르죠.
그러나 조금만 거스르고,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바로 식어버립니다.
우상을 이렇게 정의한 바 있죠.
아무리 하나님이라고 우리가 외쳐도,
내가 하나님을 다루려고 하는 제사나 예배라면 그것은 우상이고,
하나님이 나를 다루도록 나를 드리는 예배이면 그것은 신앙이라고요.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우상이 바로 자신이 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기 때문이죠.
가장 큰 타락은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것의 최고봉이 바로 인간이란 자리를 잃어버리는 것이죠.
인간이 아니라 신이 되겠다고, 
피조물이 아니라 창조주가 되겠다는 마음, 그것이 우상숭배의 본질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자신의 자리를 잘 지키세요.
사장도 아니면서 사장처럼 마음대로 출근시간을 정하지 마시고요.
마치 최고의 법률가 인양 모든 사안에 대해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고 결정하시도 마세요.
이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맡겨진 바 사명을 다하며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내는 일원임을 기억하세요.
그렇게 각자의 파트에서 연주하는 악기들이 오케스트라의 하모니를 만들듯, 
우리가 내 자리를 지킬 때,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납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여러분을 다루시는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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