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16. 07:21ㆍ묵상하는말씀/사사기묵상
지난주까지 12명의 사사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그런데 아직 사사기의 기록은 끝나지 않았어요.
사사기 17~21장까지는 사사 없는 사사기가 이어집니다.
다시 말하면, 사사가 없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죠.
그 이야기 가운데 첫 번째 이야기가 미가 이야기입니다.
오늘 등장하는 미가는 선지자 미가와는 다른 인물이니 주의하시고요.
오늘 이야기를 간단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미가는 집에서 돈을 훔칩니다.
범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어머니는 온갖 저주를 품었던 모양입니다.
이에 겁을 먹은 미가는 자신의 도둑 행위를 고백하고 가져간 돈을 토해내죠.
엄마의 저주에 겁을 먹을 정도임을 가만하면 얼마나 심한 말들이었는지 짐작이 가시죠?
범인이 아들임을 알게 된 엄마는 놀라서 뱉어낸 저주를 주어 담으려고 하죠.
그런데 한번 뱉어낸 말이 어디 주어 담아집니까?
그래서 그녀는 돈을 하나님께 바쳐서 아들에게 뱉은 저주를 풀려고 하죠.
그것도 은을 입힌 목상을 만들어 개인 신당을 꾸미고,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웁니다.
뭔가 뒤죽박죽이죠?
이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인지, 우상을 섬기는 것인지 모를 지경입니다.
하나하나 따져보죠.
우리가 누군가를 마음대로 저주할 수 있습니까?
전도서에는 이런 말이 나오죠.
전 10:20, 성경에 심중에라도 다른 사람을 저주하지 말라
사도바울도 이렇게 말합니다.
롬 12:14 여러분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십시오. 축복을 하고, 저주를 하지 마십시오.
설령 저주를 받았다고 치자고요.
그 저주에서 해방되고, 용서를 받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죄에서 자유를 얻고, 어둠의 권세에서 빛의 자녀가 되는 방법은요?
우리는 구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나를 지키시는 분도, 용서하시는 분도 주님이시라고요.
그런데 그것을 돈을 주고 살 수 있을까요?
심지어 모형을 만들고, 제단을 만들어 정성의 제사를 드린다고 가능할까요?
호세아서에는 이렇게 적고 있어요.
호 6:6.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더 바란다.
사사가 없는 사사시대를 관통하는 핵심 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의 마지막 구절이죠.
6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하였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왕이란 하나님을 뜻합니다.
이스라엘 안에 하나님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자기 뜻대로 했다는 것이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자기 마음대로 살았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나름대로 예배의 패턴이 있어요.
그런데 그 예배가 자기 뜻대로, 자기 멋대로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기의 원하는 바대로 예배했다는 것이죠.
이는 사사시대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 신앙생활 가운데도 중심이 하나님이 아닐 때가 많죠.
분명 주님께 예배를 드리면서도 자기 생각대로, 자기 원대로 하려고 합니다.
말씀을 들어도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하고요.
명령을 받아도 자기에게 맞는 것만 따르려고 하죠.
때론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뜻대로 곡해하기도 합니다.
가령,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을 듣고는 다른 사람에게 적용합니다.
아무도 자신을 비판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또 비판하는 사람들을 힐난하죠.
그러나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하는 남에 대한 비판은 늘 정당한 것으로 여기죠.
우리에게는 타고난 자기 중심성이 있어요.
우리 사회에는 법이라는 것이 존재하죠.
법을 세운 이유는 서로가 자기 중심성을 벗어나 객관적인 규율 속에 질서를 지키고자 하는 뜻에서 입니다.
자기 뜻대로 사는 사람에게는 같은 사건도 다른 기억을 갖게 되기 때문이죠.
자기 중심성은 늘 자기 좋을 대로만 생각합니다.
자기 중심성은 모든 사실을 왜곡해 버리죠.
내가 기억하는 것이 반드시 팩트는 아니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죠?
그럼에도 우리는 나의 기억이 팩트라고 느끼며 삽니다.
그러니 당연히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살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그분의 말씀이 필요하고, 그분의 기준이 필요해요.
최소한 그분 앞에서는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순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우리는 선한 길을 갈 수 없기 때문이죠.
하나님을 향한 예배만큼은 나름대로 드리지 마세요.
주님이 주시는 말씀만큼은 자기 뜻대로 읽지 마세요.
주님의 이름으로 맡겨진 사역만큼은 내 성질대로 하지 마세요.
그때만큼은 내가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이 되게 하세요.
그때만큼은 나는 도구가 됨을 인정하세요.
내 안에 하나님이 살아계셔야 예배도 살아나고,
내 안에 말씀이 살아계셔야 말씀 앞에 나를 세울 수 있습니다.
오늘, 지금 묵상하는 이 시간만큼은 내 중심에서 벗어나는 여러분이 되시길 빕니다.
내가 말씀을 만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만지게 하세요.
내가 하나님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다루게 하세요.
그렇게 겸손한 자리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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