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2. 22. 06:11ㆍ묵상하는말씀/신명기묵상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것입니다.(신명기 5:22-33)
오늘 본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의 요약판을 주셨습니다. 그때 아마도 불과 같은 강한 빛과 큰 음성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것을 듣고 백성들이 놀라서 모세에게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하나님 앞에 서기가 두렵고 떨리니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대신 모세에게 당신이 우리의 중보자가 되어 달라고 말하죠. 그 말씀을 들은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두 종류의 사람을 보게 됩니다. 모세와 백성이죠. 이들이 나뉘는 이유는 하나님을 보는 관점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빛과 음성이 은혜였던 반면에 백성들은 그것이 두려움과 공포였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앞에 주님의 나타나심이 사랑이었던 반면, 백성들에게는 주님의 나타나심은 심판이었죠. 그렇게 모세와 백성이 나뉘었습니다. 그렇게 제자와 자녀가 나뉘었고요. 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저의 구분입니다. 제가 제자와 자녀를 구분했던 설교를 기억하시죠? 그렇게 사역자와 평신도가 나뉘었죠. [생각의 지도]라는 책에 이런 실험이 나옵니다.
위의 그림이 보이시죠? 사람들에게 위의 세 가지 중 두개를 묶는다면 어떻게 묶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을 연관관계로 묶으실까요? 한국사람들은 대부분 원숭이와 바나나를 묶었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일반적인 결과입니다. 반면, 서양사람들은 원숭이와 팬더를 묶었답니다. 한국사람들은 원숭이가 바나나를 먹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요. 그런데 서양사람들은 그런 한국사람들의 인식에 놀란답니다. 그들의 시각에서는 동물은 동물과 묶어야지, 어찌 동물과 식물을 묶느냐는 것이죠. 여기에서 관점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서양사람들은 객관적 사실에 집중하는 반면, 한국사람들은 주관적 관계에 집중하는 면을 보인다는 거죠. 말씀을 삶에 적용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 말은 말씀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위에 적은대로 말씀을 요약하거나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 정도가 아니라 나의 관점을 변화시키는 것을 말하는 것이죠. 성경읽기의 중심은 관점의 변화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것은 그분이 어떤 말씀을 했느냐가 아니라 그분의 말씀으로 나의 관점이 어떻게 변했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즉, 나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변화하는 것이죠.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합니다. 그 거듭남의 차이로 우리의 길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지금 모세와 백성들의 차이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을 대하는 관점이 다르면 길도 다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하기보다 모세를 대하기 쉬었을테죠. 이는 오늘날에도 비슷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대하기보다 해석된 말씀을 듣기 원하죠.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기보다 누군가가 들려준 사명을 하고 싶어하고요. 그렇게 교회를 이용하기도 하죠. 여전히 하나님은 나를 심판하신다고 생각하며 사는 신앙인들이 있습니다. 조금의 실수에도 벌을 주시는 분으로, 그분이 나를 알면 나는 죄인으로 영영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여기는 관점들, 그런 시선들로 신앙생활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는 그동안 교회가, 종교가 심어놓은 잘못된 씨앗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를 뛰어넘어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이죠. 그분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의 모든 역사 가운데 중심은, 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모든 것을 덮으시는 것입니다. 무서움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고요. 저주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런 분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잘못했건, 얼마나 어리석고, 문제가 많건, 아니, 그래서 그분은 더 사랑을 이루시죠. 우리가 온전치 못해서 그분은 더 은혜를 준비하십니다. 죄 많은 곳에 은혜 많습니다. 주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묵상하는말씀 > 신명기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명기묵상42- 아무리 열심을 다해도 올바르지 않으면 그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신명기 12:20-32 (0) | 2019.03.25 |
---|---|
신명기묵상37 - 진정한 자유는 하나님께 묶일 때 이루어집니다.(신11:10~17) (0) | 2019.03.11 |
신명기묵상33 - 자신의 과거를 미화하지 마십시오. 신9:18~29 (0) | 2019.03.05 |
신명기묵상27 -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사는 방법은, 그분의 자녀가 되는 것뿐입니다. 신명기7:6~16 (0) | 2019.02.26 |
신명기묵상24] 쉐마 이스라엘, 아도나이 엘로헤누, 아도나이 에하드 (0) | 2019.02.22 |
신명기묵상19] 하나님을 믿음이 안식입니다 (0) | 2019.02.22 |
신명기묵상16]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입니다. (0) | 2019.02.14 |
신명기묵상15] 우리에게 신앙의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0) | 2019.02.14 |
신명기묵상08]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세요. (0) | 2019.02.06 |
하나님께 십자가는, 내 이름을 당신의 손바닥에 새기신 사건이고, 나에게 십자가는 그분의 말씀을 마음과 입술에 새긴 사건입니다.(신30:14) (0) | 2013.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