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묵상27 -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사는 방법은, 그분의 자녀가 되는 것뿐입니다. 신명기7:6~16

2019. 2. 26. 11:59묵상하는말씀/신명기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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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열심보다 원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주님의 원리 위에서 열심을 내야 한다고 말씀드렸죠.
주님의 원리를 벗어난 열심은 오히려 독이 된다고도 말씀드렸습니다.
가령, 이런 것과 같습니다.
기막힌 솜씨의 기타리스트가 있습니다.
손이 안 보일 만큼 빠르게 돌아가고,
그의 주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현란합니다.
그런데 기타 줄의 음이 맞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떨까요?
열심히 칠수록, 재능이 뛰어날수록 듣기는 더 거북할 것입니다.

오늘도 그 원리는 동일합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은 그들이 많아서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이와 맥을 같이 하는 말씀이 있죠.
요한일서 4장의 말씀입니다.
10 사랑은 이 사실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 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 말은 내가 정성을 기울여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은 내가 뭔가를 해서 주님의 사랑을 얻는다는 말도 아니죠.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뛰어나거나, 우리로 하나님이 이득을 얻기 때문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가 자랑거리가 되어서 그러신 것도 아니죠.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유,
우리를 복 주시는 이유는 우리가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원리입니다.

우리가 이 원리를 안다면, 복 받으려고 뭔가 열심히 할 필요는 없어요.
사랑받기 위해 우리를 꾸밀 필요도 없죠.
단지, 우리는 주님의 자녀임을 확신하고,
자녀답게 살아가면 됩니다.
물론 실수도 있고, 자녀의 본분을 다하지도 못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나의 아버지임을 잊지 않고,
그 관계는 파손되지 않을 것임을 믿고,
다시 자녀로의 자리에 돌아오는 것, 그것만이
주님의 사랑과 복이 우리에게 머무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어리석고, 문제 많은 자녀여도 그가 아버지 집에 머물면
그의 사랑과 보호 아래 놓일 것입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자녀여도 그가 아버지의 그늘에 있지 않으면
그는 그 사랑과 보호를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내가 무엇인가를 잘해서 나를 자녀 삼아 주시는 아버지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온전한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되지 않겠죠.

하나님은 징벌을 내리시지 않습니다.
착각하지 않으시길 빕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징벌이란 이런 것입니다.
따스한 햇살이 우리를 따스하게 합니다.
그 햇살은 우리에게 건강도 선사하죠.
필요한 영양분도, 비타민도 공급합니다.
그런데 햇살을 피해 동굴 속 어두컴컴한 자리에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마도 그렇게 오랜 시간을 살면,
그는 햇살이 주는 유익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징벌이죠.

무엇을 주고자 하는 자에게는 받지 못하는 이들이 안쓰럽습니다.
무엇을 나누고자 하는 자에게는 자리에 없는 이들이 불쌍하죠.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죠.
‘그것이 다 자기 복이지…’

하나님께는 주님의 자리에 있지 않은 자녀들이 다 징벌을 받는 것과도 같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모두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기 때문이죠.
다시 한번 원리로 돌아오세요.
우리가 뭘 잘해서 자녀가 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예뻐서도 아니에요.
내가 보답을 잘하거나 무엇인가를 드려서도 아닙니다.
그분이 그저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녀 된 것이고,
그분이 그저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셔서 구원된 것입니다.
그러니 구원을 쟁취하려 하지 마세요.
내가 마음먹어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사랑을 내가 노력해서 가질 수가 없어요.
나의 힘으로 그분의 마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오직, 내가 그분의 자녀가 되면 됩니다.

주님께 원하는 기도가 있습니까?
그래서 여러 가지 조건을 내미시나요?
많은 서원들을 그분께 합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주님의 원리를 모르시는 것입니다.
그분의 마음을 우리가 어떤 것으로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마음은 수많은 재물로도 살 수 없지만,
어느 때는 랩돈 2닢으로도 살 수 있는 분이기도 해요.
이 말은, 그분이 재물이나 우리의 노력과 열정으로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정성을 필요로 하는 미신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사는 방법은,
그분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못나도, 잘나도, 부족해도, 재능이 넘쳐도, 그저 자녀가 되는 것뿐입니다.
기도하면 들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의 기도여야 들어주시죠.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 7:9~10 너희 가운데서 아들이 빵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으며,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여기서 원리는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입니다.
그것이 원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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