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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야고보서묵상

인내가 없으면 성숙도 없습니다

야고보서 1:1-8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야고보가 세계에 흩어져 사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을 드립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에, 그것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은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낳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인내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 가운데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시고 나무라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받을 것입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믿고 구해야 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마치 바람에 밀려서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주님께로부터 아무것도 받을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그는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이요, 그의 모든 행동에는 안정이 없습니다.


몸을 많이 움직이면 땀이 납니다.
 땀이 날 때 여러분은 어떤 마음을 갖게 되시나요?
 억지로 해야 하는 일로 인해 땀을 흘리는 이들은 
땀 한 방울이 고역일 것입니다.
 그러나 운동을 목적으로 몸을 쓰는 이들에게 
땀은 자신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했다는 증거가 될테죠.

 야고보서는 행동하는 신앙에 관한 책입니다.
 머리로만 신앙생활하지 말고 
몸으로 실현하라고 강조하는 책이죠. 
행동하는 영성, 행동하는 지식을 선포합니다. 
그런데 행동 이전에 가장 먼저 선포하는 말씀이 
기쁨입니다. 
그것도 시험을 당할 때, 어려움이 생길 때 
기뻐하라는 것이죠.
 마치 땀을 흘릴 때 이것이 고역의 땀이 아니라 
성취의 땀으로 생각하듯 말이죠. 
같은 땀이지만 하나는 불만이 있고, 
하나는 기쁨이 있기 마련입니다.

 



야고보서를 쓴 저자는 제자 야고보가 아니라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가족이었어요. 
성경에는 예수님의 가족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록된 몇 안 되는 구절에 보면 
그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마가복음3:21   예수의 가족들이,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서, 그를 붙잡으러 나섰다.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가죠. 
예수님은 그 집안의 큰 형이었습니다. 
아버지인 요셉이 일찍 죽고, 
그 집안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었죠. 
그는 30살까지 목수 일을 하며 생계를 책임졌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가족의 생계를 뿌리치고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가족에 입장에서는 가출인 셈이죠. 
그뿐이 아닙니다. 
밖에 나가서는 예언자의 흉내를 냅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흉흉한 소문도 나죠. 
사람들이 많이 따른다는 것은 좋은 일이나 
그가 선포하는 발언들은 가족들 입장에서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형이 미친 것처럼 보였을테지요.
 사도요한도 요한복음에서 그 형제들이 예수를 믿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가족들 가운데는 오늘 야고보서를 기록한 
예수의 형제 야고보도 있었을 거예요.
 다시말해 야고보는 
예수님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한 사람이었다는 거죠. 
이해가 다 뭡니까? 
불만 섞인 반대를 넘어 조롱하고 심지어 
미쳤다고까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었겠죠.

 


그런 그가 지금 야고보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두에서 이렇게 말하죠.


 

야고보서1:4   여러분은 인내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


 


만약 야고보가 마가복음 3장에 머물렀다면 
지금의 야고보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의 확신이 그때 멈췄다면 말이죠. 
우리가 지금, 고통과 아픔의 현실 앞에서 갖는 확신은 
잘못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마지막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내 눈 앞에 떨어지는 땀은 
고역의 땀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땀은 나를 건강케 만드는 도구로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르듯이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아직 결론을 내리면 안 됩니다.
 인내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의 기쁨이 기쁨이 아니오, 
지금의 슬픔이 슬픔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때이르게 터뜨린 샴페인은 
어쩌면 눈물의 씨앗이 될지도 모르고, 
가슴 아리듯 아픈 마음의 슬픔은 
거룩한 감격의 머릿돌이 될지도 모릅니다.
 
성숙은 인내와 기다림에서 나옵니다.
 모진 바람과 아픔을 견디고 기다린 결과에 
성숙이 있습니다.
 인내가 없으면 성숙도 없습니다.
 인내가 없이는 온전한 기쁨도 없습니다.
 인내가 신앙을 낳고 신앙이 희망을 낳습니다.
 견디는 자가 이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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