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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야고보서묵상

반드시 기도 응답하신다

[황홀한기다림3] 반드시 기도 응답하신다.

야고보서5:12~18,

12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마십시오. 하늘이나 땅이나 그 밖에 무엇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십시오. 다만, "예" 해야 할 경우에는 오직 "예"라고만 하고, "아니오" 해야 할 경우에는 오직 "아니오"라고만 하십시오. 그렇게 해야 여러분은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13    여러분 가운데 고난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하십시오.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송하십시오.

14    여러분 가운데 병든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십시오. 그리고 그 장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십시오.

15    믿음으로 간절히 드리는 기도는 병든 사람을 낫게 할 것이니, 주님께서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죄를 지은 것이 있으면,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여러분은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낫게 될 것입니다. 의인이 간절히 비는 기도는 큰 효력을 냅니다.

17    엘리야는 우리와 같은 본성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비가 오지 않도록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니, 삼 년 육 개월 동안이나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으며,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내리고, 땅은 그 열매를 맺었습니다.

 



2.

당신은 혹시 성경의 인물 가운데 닮고 싶은 인물이 있는가?

누구인가?

내게도 성경의 인물 가운데 닮고 싶은 인물이 있다.

청년시절, 닮고 싶은 믿음의 인물들의 이름으로 영어이름을 짓는 것이 한때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다.

나도 그때부터 이 인물의 이름으로 영어이름을 써왔다.

바로 “Timothy(디모데)”다.


3.

그를 닮고 싶다고 여긴 이유의 시작은 겉으로 드러난 몇 가지 유사점 때문이었다.

부끄럼을 잘 타고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 닮은데다가 병약하기까지 한 것이 왠지 모를 동질감을 갖게 했다.

물론 그뿐 만은 아니었다.

그가 언제나 뒤에서 조용히 바울을 빛나게 하는 동역자였다는 사실은 늘 내 마음을 감동시켰다.

나도 늘 누군가의 동역자로서 쓰임 받았으면 하는 것이 꿈이었으니까.


4.

바울은 디모데후서에서 디모데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딤후1:3~5, 

나는 밤낮으로 기도를 할 때에 끊임없이 그대를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조상들을 본받아 깨끗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나는 그대의 눈물을 기억하면서, 그대를 보기를 원합니다. 그대를 만나봄으로 나는 기쁨이 충만해지고 싶습니다. 나는 그대 속에 있는 거짓 없는 믿음을 기억합니다. 그 믿음은 먼저 그대의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깃들여 있었는데, 그것이 그대 속에도 깃들여 있음을 나는 확신합니다.


5.

바울은 디모데를 거짓 없는 진실한 믿음의 소유자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믿음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님을 알았다.

바울은 디모데의 믿음이 그의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확신했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이 의미를 깊이 알려면 디모데에 대해 좀 더 면밀히 알 필요가 있다.


6.

누가는 디모데에 관해 사도행전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사도행전16:1~2,    바울은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갔다. 거기에는 디모데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의 어머니는 신앙이 돈독한 유대 여자이고, 아버지는 그리스 사람이었다.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신도들에게 호평 받는 사람이었다.

 

7.

디모데의 고향 [루스드라]는 터키 남부의 작은 소도시다.

그의 어머니는 유대인이었고, 아버지는 그리스사람이었다.

다른 말로는 혼혈인 셈이다.

게다가 누가는 어머니 유니게를 표현할 때 신앙이 돈독하다고 적고 있다.

어머니 로이스에게서 믿음의 유산을 물려받은 유니게의 신앙을 표현하고자 하는 점은 충분히 이해가 되나 반대로 말하면 그리스 사람인 아버지는 신앙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 않을까?

디모데는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민족도, 종교도 다른 부모를 두었다.

얼핏 심각성을 모른다면 당신의 딸이 타종교(이를테면 이단종교)에 빠진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데려온 상상을 하면 된다.


8.

유대인은 순수혈통주의가 강하다.

사마리아인과의 적대적 관계가 왜 형성되었는가를 여러 차례 말한바 있다.

그 근간에는 혼혈에 대한 적개심이 자리 잡고 있다.

디모데의 입장에서 보면 유대집단 사이에서는 딱 놀림 받기 십상인 존재다.

그래서 소심하고 병약했는지도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다문화가정에는 늘 따라다니는 편견의 문제가 존재한다.


9.

그런데 누가는 디모데가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신도들에게 호평 받는 사람이었다고 적고 있다.

여기에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믿음이 드러난다.

1)로이스는, 나라를 잃어 방랑객처럼 외국에서 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2)유니게는, 연유는 모르지만 다문화 가정을 이룰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3)디모데는, 외국에서 혼혈로 태어날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것이 어찌 그들만의 잘못인가?

어쩌면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나는 환경과 상황을 한탄하며 살지도 모른다.  

그러나 로이스와 유니게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10.

한때 미국에서 살았던 어떤 분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목사님, 미국사람이 모슬렘이 되는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이 뭔 줄 아세요?”

그러면서 나에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분이 알고 있던 한 여성은 어느 날 이슬람으로 개종을 했단다.

그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이렇게 말하더란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았다.”

그녀는 집안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많은 일을 해야 했단다.

늘 쪼들림 속에서 자신 뿐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넉넉히 대해주지 못했다.

조금만 좋은 학교에, 조금만 넉넉하게... 그러나 응답이 없었다.

“목사님, 참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이런 이유로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11.

로이스나 유니게 역시 그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야고보서는 1장에서 ‘인내’라는 화두로 시작한다.

그리고 5장에서는 결국 기도로 귀결시킨다.

다시 말하면 인내한다는 것은 기도한다는 뜻이다. 


12.

지난주 나는, 인내는 아무 말 하지 않는 것도, 슬픈데 웃는 것도, 아픈데 견디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오직 인내는 아픔이나 슬픔, 괴로움과 답답함일지라도 끝까지 주님 앞에서 토로하는 것이 인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인내란 기도하는 것이다.

인내와 기도는 결국 하나다.


13.

로이스와 유니게는 자신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기도했다.

우리를 고아처럼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디모데에게 흐른 거짓 없는 믿음이 무엇이겠는가?

언젠가 분명히 맺을 열매에 대한 기대를 잃지 않고 어떤 상황에도 끝까지 기도하고 기다리는 로이스와 유니게의 믿음이 디모데에까지 이르렀다.

바울이 말한 거짓 없는 믿음이란, 바로 기대를 가지고 기다리는 인내다.


14.

기도에 대한 수많은 가르침들이 있다.

이렇게 기도하라는 말들도 많다.

그러나 오늘 나는 본문에서 우리가 응답받는 기도를 위해 해결해야 하는 몇 가지 문제를 묵상하게 된다.

그 첫 번째는 이기심을 버려야 응답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15.

약5:12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마십시오. 하늘이나 땅이나 그 밖에 무엇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십시오. 다만, "예" 해야 할 경우에는 오직 "예"라고만 하고, "아니오" 해야 할 경우에는 오직 "아니오"라고만 하십시오. 그렇게 해야 여러분은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16.

야고보는 어떤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는 말에 대한 진실성, 말의 능력에 대한 경고다.


17.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권세다.

그 권세는 하나님과 대화할 수도, 요구할 수도 있게 한다.

그런데 이 권세를 훼손시키고, 무력화 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우리의 거짓말과 속임수다.

그 거짓과 속임수, 빈말과 회피의 주범은 바로 이기심이다.

자신만 잘되고자 하는 ‘이기심’ 말이다.

우리는 그 이기심 때문에 거짓말과 속임수, 빈말 등을 남발한다.


18.

당신의 이기심이 얼마나 기도를 방해하는지 알고 있는가?


19.

손아래 동서가 최근 객혈을 수시로 해서 가족들이 긴장하고 있다.

예상했던 바인데, 그는 소위 심장에 구멍이 난 상태로 태어나 기적같이 지금껏 살았다.

이제는 심장의 문제가 폐에 까지 미쳐서 폐 이식을 고려해야 할 상태다.

너무나 안타까워 폐 이식을 위한 사전 검사를 받는 날이 되었다.

그런데 처제가 검사를 안 받겠단다.

기도하며 기다려 보겠다는 것이다.

처갓집에서 맨 먼저 믿음생활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중간에 멀리 떠났다가 결혼하고 다시 신앙에 불이 붙었던 처제인지라 늘 대견하게 생각했는데 이것은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절망적인 마당에 폐 이식을 안 받겠다는 것은 너무 보수적인 신앙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주, 기도주간에 이 친구를 위해 기도를 많이 했다.

이 친구들이 완전히 회복되기를 빌며 폐 이식 성공을 놓고 기도했다.

물론 이 친구들의 보수적인 신앙에 대한 불평도 하면서....


20.

그러다 기도하는데 갑자기 하나님께서 나의 생각에 치명타를 날리셨다.

“하나님, 동서에게 빨리 건강한 폐를 이식받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하고 있는데 이런 생각이 마치 하나님 말씀처럼 들렸다.

“네 마음이 급한 것은 알겠다. 동서를 사랑하는 마음도 알겠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거라. 너의 그 기도는 다른 의미로 보면 이런 기도가 아닐까?”

“하나님, 나의 동서를 위해서 누군가가 빨리 뇌사에 빠지거나, 치명적 사고를 당해 폐를 구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21.

나는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기도인가?

나를 위해, 나의 이기심 때문에 전혀 보이지도, 생각지도 못한 기도를 서슴없이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22.

우리는 모른다 치자.

그러나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이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이 그것을 들으신다면 어떻게 하시겠는가?

우리의 이기심은 기도를 기도가 아니게 만든다.   


23.

우리가 응답받는 기도를 위해 해결해야 할 두 번째 문제는,

‘나의 주장을 버려야 기도의 응답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24.

약5:17~18, 엘리야는 우리와 같은 본성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비가 오지 않도록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니, 삼 년 육 개월 동안이나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으며,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내리고, 땅은 그 열매를 맺었습니다.


25.

야고보는 열왕기상의 본문을 이용해서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엘리야가 기도했기 때문에 삼년 육개월 동안 가물었던 것이 아니다.

엘리야가 기도했기 때문에 다신 비가 내린 것도 아니다.

이는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극심히 완악하고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경고하셨다.

그리고 엘리야를 통해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보이셨다.

그러니까 엘리야의 기도는 자신의 주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한 것이다.


26.

어느 책에서 여 집사님의 감동적인 간증을 본 적이 있다.

그 집사님의 시댁은 소문난 기독교 가문이었다.

그 시댁부모님들은 외아들의 신앙 있는 며느리를 위해 기도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 집사님이 시집을 올 당시에는 믿음은 물론 교회도 나가지 않았다.

한마디로 불신자였다.

그저 그 집안의 아들과 사랑에 빠져서 시집을 가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자 시댁의 부모님들은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분들은 들어오는 며느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믿지 않는 너를 내 아들이 배우자로 선택한 것은 천만 뜻밖의 일이구나. 믿지 않는 며느리가 들어온다는 것은 우리 가문에 얼마나 실망스러운 일인지 너는 아직 모를 거다. 하지만 내 아들이 믿음으로 너를 선택한 이상, 네가 우리 기도의 응답임을 믿는다. 부디 우리와 더불어 좋은 신앙인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27.

결혼 후, 시댁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그런데 주일 아침 모두다 교회를 가는데 며느리는 가지 않았다.

종교에 자유가 있는데 누가 가라고 가고 말라고 말아야 하는 건 아니란 생각이 있었기에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도 시부모님은 꾸짖지도, 다그치시지도 않았다.

오히려 친딸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셨다.

너무나 따뜻한 사랑을 받는 나머지 조금씩 며느리는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귀가 길에 집 앞 동네교회에서 특별새벽기도 현수막을 보았다.

어느덧 저기엘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자발적으로 새벽에 일어나 교회에 나갔다.

그런데 예배당으로 들어서는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얘야, 왜 이제야 오니?”

자신을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그녀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자신을 끝까지 믿어 준 시부모의 사랑에 신앙의 며느리가 된 것이다.


28.

기도는 나의 주장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29.

우리가 응답받는 기도를 위해 해결해야 할 마지막 문제는,

‘사귐의 원리를 알아야 기도의 응답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30.

약5:13~14,   여러분 가운데 고난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하십시오.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송하십시오. 여러분 가운데 병든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십시오. 그리고 그 장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십시오.


31.

내가 믿고 읽는 책의 저자 가운데 한 분은 김영봉목사다.

[바늘 귀를 통과한 부자]라는 책으로 유명하신 분이다.

그분의 책 가운데 추천하고픈 책은 [사귐의 기도]라는 책이다.

이 책은 기도에 관한 교과서적인 책이기도 하다.

그 책에서 김영봉목사는 사귐이라는 말의 속성을 5가지로 적어 놓았다.

첫 번째는, [지속성]으로, 가끔이 아닌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사귐에 이른다.

두 번째는, [상호성]으로, 일방적이 아닌 서로가 마음을 열어야 된다.

세 번째는, 서로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하고,

네 번째는, 정적이지 않고 [동적]이어야 하며,

마지막으로는, 그래서 사귐은 [여러 가지 활동]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32.

목사라고 부른다고 사귐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야 진정한 사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끝까지 기다려주고 함께함이 필요하다.

꾸준함이 필요하고, 상호 액티비티가 필요하다.

자주 만나고, 자주 모이고, 자주 말하고, 자주 같은 일을 해야 한다.

얼마나 힘들고 어렵겠는가?

아무리 좋은 관계여도 일을 해 보아야 한다.

오래 사귄다는 것은 그만큼 참고 견디고 봐주고 기다려야 가능하다.

결혼해서 늘 좋을 수는 없다.

그 결혼이 결혼되는 것은 참고 견디고 기다리고 인내하기 때문이다.

방해를 받아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어려움을 당해도 피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인내요, 이것이 기도다.


33.

이기심을 버려야 기도의 응답을 맛본다.

내 주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야 기도의 응답이 보인다.

사귐을 가져야 그 음성이 들린다.

그러면 하나님은 반드시 기도에 응답하신다.

포기하지 말라.

아직 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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