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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빌립보서묵상

[빌립보서묵상11] 마지막이 좋은 삶을 사십시오.

[빌립보서묵상11] 마지막이 좋은 삶을 사십시오.

 

빌립보서3:12~16,

12    나는 이것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며, 이미 목표점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사로잡으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

13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몸을 내밀면서,

1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숙한 사람은 이와 같이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도 여러분에게 드러내실 것입니다.

16    어쨌든, 우리가 어느 단계에 도달했든지 그 단계에 맞추어서 행합시다.

   

  

1.

페이스북에서 페친인 어느 목사님이 쓰신 글을 읽었습니다.

어느 날, 약속이 있어서 카페에 들어갔답니다.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옆에 젊은 아줌마들이 있더래요.

우연히 들었는데 서로 집사님이라고 부르더랍니다.

교회 교우들의 모임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답니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수다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답니다.

그들의 수다에서 처음 들린 이야기는 지난 주 목사님의 설교이야기였습니다.

그들은 목사님의 설교가 너무 은혜스러웠다며 리뷰를 하더랍니다.

본인은 아니지만 자신도 지난 주 설교를 한터라 그 소리가 목사님에게 무척 기쁘고 좋게 들렸답니다.

아마도 자신은 모르지만 어디선가 자신의 교회 교인들도 자신의 설교를 이렇게 리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셨겠죠.

여러분도 혹시 그러시나요?

음......^^

 

2.

목사님은 이들의 모임이 무척 좋아 보여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답니다.

그런데 그 즐거운 미소는 거기까지였습니다.

주일 설교에 대한 은혜를 나누던 그들의 다음 주제는 “시어머니”였습니다.

시어머니의 이야기는 누군가 꺼내자마자 삽시간에 불타올랐답니다.

누구나가 할 것 없이 끊임없이 이야기가 진행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하소연에서 시작해서 한탄을 지나 흥분과 공감을 넘어서면서 점점 격정의 불길로 번져갔습니다.

누군가 말하며, “맞아 맞아”의 맞장구가 이어지고, 누군가 말하면, 서로 편을 들어주며 껌 씹듯 씹더랍니다.

결국 목사님은 이런 소리를 듣고 미소 띠던 얼굴이 일그러졌습니다.

“그런 게 무슨 권사라고...”

“그런 *이 무슨 교회 여선교회 회장이야?”

 

3.

목사님은 이렇게 글을 맺었습니다.

분명 며느리의 고충이 있고, 시어머니와의 갈등이 있다고요.

그리고 그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도 분명 필요하다고요.

그런 수다를 통해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분명 효과적이라고요.

다른 곳에서 그런 험담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믿는 사람들과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요.

그러나 순서가 틀렸다고 했습니다.

험담 끝에 설교로 마무리했으면 좋았겠다고요.

 

4.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시어머니와의 갈등이 없는 것도 아니고요.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험담을 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도 당연히 해소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순서입니다.

좋게 시작해서 나쁜 게 마무리 짓는 것이 문제입니다.

마약은 기분 좋게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사로잡히는 중독이 됩니다.

욕심은 만족감에서 시작해서 끝은 돈이나 명예, 그 욕심의 노예가 됩니다.

 

5.

잘못된 그리스도인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은혜로 시작해서 저주로 끝나는 것이 잘못된 그리스도인입니다.

예배로 시작해서는 싸움으로 끝나는 모임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보는 앞에서는 사랑을 말하고는 돌아서서는 저주와 경멸을 갖는 것이죠.

은혜로 시작해서는 험담과 저주로 끝내는 인생이 잘못된 인생이죠.

 

6.

지난 목요일, 야구 한일전이 있었습니다.

세계 최강의 12개 나라 대표팀이 모여서 겨루는 대회였습니다.

일본이 주축이 되어서 대회를 한 것이기에 처음부터 말이 많았습니다.

이미 일본은 우승을 목표로 이 대회에 임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경기 일정도 일본팀에게 유리하게 짜여 졌죠.

준결승전을 한국과 일본이 하게 되었는데, 일본이 결승전을 염두해 주고 일정을 하루 앞당겨서 해버릴 만큼 제멋대로였습니다.

그 때문에 한국은 대만에서 경기하고 쉬지도 못하고 경기에 임했습니다.

일본팀은 이미 한국과 이길 것을 예상하고 결승전에 나갈 선수들을 미리 발표하는 무례를 범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객관적인 전력에서 한국은 일본에 열세였죠.

이미 예선전에서 5:0 일방적으로 지기도 했습니다.

경기의 흐름은 예상대로였습니다.

일방적으로 밀렸고, 안타는 8회까지 1안타, 삼진아웃은 11개나 되었습니다.

마지막 회를 남겨둔 9회, 한국은 3:0으로 지고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일본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을 그 때,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마지막 9회, 한국이 4:3으로 역전을 시켜버린 것입니다.

한국의 어떤 종이 신문은 8회까지 보고 이렇게 인쇄해 버렸답니다.

“한국 세 가지 모두에서 완패”

대형 오보를 내고 만 것이죠.

 

7. 

참 기막힌 승부였는데 저는 해설자의 이야기가 귀에 꽂혔습니다.

이렇게 말하더군요.

“야구는 오래 이기고 있을 필요가 없다. 마지막에 이기면 된다.”

 

8.

우리는 실수 할 수도 있고, 험담할 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일어서야 하고, 은혜에 들어가야 합니다.

만약 그 집사님들이 아픔과 스트레스 해소, 험담 이후에 지난 주 설교 말씀을 되새시면서 은혜에 들어갔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은혜는 서두에만 하고 결론은 늘 세상적입니다.

처음은 하나님으로 시작해서 결론은 언제나 자기 생각으로 끝납니다.

 

9.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자신이 향할 미래를 바라봅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요, 주의 사도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아직 이룬 것도 아니며, 목표점에 다다른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는 지금이 아니라 마지막이 좋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이 좋은 인생을 살기 위해 3가지를 오늘 본문에서 말합니다.

 

10.

마지막이 좋은 인생을 위한 바울의 제안 1. 쫓아가라!

 

바울은 무엇인가를 붙들려고 쫓아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쫓아간다는 뜻의 헬라어 단어는 [디오코]입니다.

이 단어는 주로 사냥을 할 때 쓰이는 단어입니다.

“추적자”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그냥 달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쫓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가고 싶은 데로 열심히 달리는 것도 아닙니다.

 

11.

은혜로운 미래는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멀리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만큼 방해와 공격과 훼방이 집요하도록 우리를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냥감은 쉽게 잡히지 않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모든 촉각을 곤두세워 따라가지 않으면 놓치고 맙니다.

은혜로운 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력을 다해 쫓아야 합니다.

 

12.

이 발이 누구의 발인지 아십니까?

이미 유명해진 사진인데요.

발레리나 강수진씨의 발입니다.

그녀에게는 최초 혹은 최고의 수식어가 많습니다.

세계 최고라 일컬러지는 독일 슈트트가르트발레단에 최연소로 입단했고,

이것은 동양인으로도 최초였습니다.

스위스 로잔 콩쿨에서 한 1등도 동양인 최초였고,

1999년에는 당대 최고의 발레리나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48세까지 현역으로 있다가 최근 은퇴를 했습니다.

 

13.

저는 그녀의 최근 인터뷰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고교1학년 때 모나코 왕립발레학교에 유학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얼마나 연습벌레였던지 기숙사 수위 아저씨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잠들면 몰래 연습실로 가서 연습을 했다는 겁니다.

그 때 이후로 30년 동안 하루 10시간의 연습을 거르지 않았다는 거예요.

심지어는 몸이 안 좋거나 연습을 하기 싫어도 이 규칙을 어기지 않았답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저는 이런 열심을 듣고 감동한 것이 아닙니다.

저를 감동케 한 말은 그 다음 말이었어요.

그렇게 연습한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관한 답변이었습니다.

발레리나 주역이 되거나 최초, 최고를 위해 연습한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큰 꿈도 없었답니다.

단지 자기 자신이 하루하루 발전하는 것을 보는 것이 꿈이었다는 거예요.

그녀는 자신이 발전하는 모습을 매일 쫓았던 것이죠.

 

14.

여러분은 하루하루 신앙이 성장하는 모습을 추구하십니까?

내가 매일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가는 발전된 모습을 보고 싶어 하십니까?

얼마나 간절하십니까?

하루에 10시간씩 연습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런 갈망이라도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마도 강수진씨가 그렇게 연습하는데 방해하는 사람은 없었을 거예요.

시기, 질투하는 이들이 좀 옆에 있었을지 모르죠.

암튼 그녀는 자신과의 싸움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요? 우리 그리스도인은요?

방해하는 세력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보다 더할 수는 없어도 이런 갈망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좋은 사람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낮추고, 자신의 이익을 저당 잡히면서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릴줄 알아야 좋은 사람이 됩니다.

 

15.

방송인 유재석씨에게는 안티가 없다더군요.

그의 성품에 대한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답니다.

카메라가 꺼지면 유재석씨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에...

쉬는 시간에 - 방송 중 방청객 중에 기침을 하는 분이 계셨다며 스튜디오 온도를 높여달라고 제작진에게 요청했다는 겁니다.

이게 쉬운 일 같으세요?

자신의 방송에 기침하는 사람이 방해가 될 수도 있는데요.

혹은 자신의 일에 집중하다보면 어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옵니까?

끊임없이 주위를 살피고, 누군가의 불편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죠.

 

16.

오늘 우리는 이 지역의 홀로 기거하는 어르신 가정을 방문합니다.

사실 별일도 아니고, 어쩌면 행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쉬운 일도 아니죠.

긍휼과 사랑의 마음이 있다면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추구해 오지 않았다면 귀찮은 일이 될 것입니다.

이 일이 별일 아니라구요?

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이 일이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좋은 마음을 추구하고 사시는 것은 맞습니까?

 

17. 

하나님의 은혜를 안다구요?

그것도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내 힘으로는 할 수 없음을 처절히 고백해야 하나님의 은혜가 보일까 말까 하는 거예요.

죄송하지만 교회 오래 다니신 분들, 조심하세요.

그것이 여러분을 좋은 사람, 믿음의 사람, 은혜의 사람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전심으로 쫓고, 갈망하며, 추구해야 만들어지는 미래입니다.

 

18.

마지막이 좋은 인생을 위한 바울의 제안 2. 푯대를 바라보라!

 

두 번째로 바울은 푯대, 즉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린다고 했습니다.

무작정 달려서는 안 됩니다.

무턱대고 열심을 내서도 안 됩니다.

나의 열심, 나의 달려가는 길에 푯대가 분명해야 합니다.

 

19.

열심히 하는 사람 참 많습니다.

열심이라면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이단들도 참 많습니다.

열심히 해야죠.

그러나 열심에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분명하고 알맞은 목표점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잘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열심과 잘하는 것은 목표점이 무엇이냐에 따라 마지막이 달라집니다.  

교회생활도 잘 할 수 있습니다.

목회도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목표점이 십자가가 아니라면 그것은 잘 하는 것이 아니죠.

목표점이 잘못되면 열심은 오히려 독이 됩니다.

잘못된 목표점은 열심히 해서 오히려 사람을 죽이고, 해를 입힙니다.

 

20.

지난 주, 파리에서는 자살 폭탄 테러가 일어났죠.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임무를 수행하는 것 만한 열심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열심을 우리는 결코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21.

여러분의 열심은 어떤 목표점을 향하고 있습니까?

한번 점검해 보세요.

처음에는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 위한 열심으로 변하지는 않았습니까?

나를 구해 주신 은혜를 품고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던 열심이 어느새 나의 이익과 기분에 맞는 사람들을 골라내는 열심으로 바뀌진 않았나요?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향하던 여러분의 푯대가

어느새 나의 평안과 기쁨으로 바뀌진 않았습니까?

여러분의 푯대를 점검하세요.

여러분이 향하고 있는 푯대는 어떤 것입니까?   

 

22.

마지막이 좋은 인생을 위한 바울의 제안 3. 성숙하라!

 

바울은 오늘 본문 1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빌3: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숙한 사람은 이와 같이 생각하십시오.

 

이와 같이 생각하라는 것은 위의 2가지처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숙한 사람이라는 정의를 바울은 조금 다르게 설명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성숙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해석하려면 다음절을 봐야 합니다.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숙한 사람은 이와 같이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도 여러분에게 드러내실 것입니다.

16, 어쨌든, 우리가 어느 단계에 도달했든지 그 단계에 맞추어서 행합시다.

 

23.

바울은 빌립보교인들에게 그리스도를 향하여 달려갈 것을 주문했죠.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열심을 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목적이 다른 사람도 있죠.

때로는 그것 때문에 갈등을 겪기도 하고요.

어떤 이들은 죄책감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또 어떤 이들은 열심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책망하기도 하죠.

24.

그런데 바울은 이런 이들도 품으라고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하나님에 의해 그렇게 될 것임을 믿기 때문이었죠.

나와 시기는 다르고, 때는 다르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을 거라 믿은 거죠.

그리고 그렇게 그들을 품은 사람들을 성숙한 자들이라고 칭했습니다.

 

25.

그리스도인이 아름다운 것은 나와 다른 이들을 사랑할 줄 알기 때문이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정신은 바로 나와 다른 이들을 품고 기다리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것을 잃으면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곧 성숙한 사람입니다.

 

26.

여러분, 때론 나와 같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도 하나님의 사람이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지금 깨닫는 이도 있고, 조금 시간이 걸리는 이도 있습니다.

지금 열심을 내는 이도 있고, 좀 있다 불이 붙는 이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들을 책망해서는 안 되죠.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때가 있음을 인정하는 이들이 성숙한 자들입니다.

 

27.

사랑하는 여러분,

좋은 미래를 준비하세요.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그리스도를 바라고, 쫓으세요.

여러분에게 영적진보가 분명 주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나와 다른 이들을 품으세요.

기다려주시고, 지켜주세요.

그렇게 또 다른 영혼을 품는 여러분에게 좋은 마지막이 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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