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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마태복음서묵상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삶의 `주인은 주님`이라고 쓰고 `나`라고 읽는다.

2013.2.15. 묵상(마10:34~39)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삶의 `주인은 주님`이라고 쓰고 `나`라고 읽는다.



1. 

어릴 적 방학은 늘 즐거운 것이었습니다.

그완 달리 개학 때가 되면 왠지 몸이 쪼그라들고 어디가 아파오는 것 같았습니다.

방학동안 놀던 패턴을 버리고 싶지 않아서가 우선이지만, 

밀린 숙제를 하지 못한 이유도 컸습니다.

그러나 모든 아이들이 저 같지만는 않았습니다.

개학을 기다리는 친구들이 있었던 것이죠.

그들은 방학 때보다 친구, 학교가 그리워 개학을 기다린 것입니다.


2. 

마찬가지로 시험 때가 되면 오금이 저려옵니다.

어릴 적 꿈이 어른이 되는 것이었는데, 

그 이유는 시험을 보지 않으려는 것이었을 정도입니다. 

물론 바보같은 생각이지만...

가끔 시험전날 잠자리서, 

내일 홍수가 나 학교가 휴강하는 꿈도 꿉니다.

그러나 시험을 기다리는 친구들도 있다는 사실을 늦게 알았습니다.

한번은 시험지에 오류가 생겨 시험일을 하루를 미루게 되었습니다.

그 때 몇몇 아이들이 강력히 항의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연히 시험을 잘 준비해 온 아이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3. 

시험이 누군가에겐 견디기 힘든 고통이지만 누군가에겐 기다리는 희망입니다.

역경이 어떤 이에게는 좌절을 주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출발점이 됩니다.

내게 닥친 역경은 고민거리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넘을 목표로 주어진 것입니다.

사실 문제의 근원은 역경이나 시험이 아니라 그걸 대하는 나 자신입니다.


4. 

오늘 본문을 대할 때 우리는 당혹스럽습니다.

주님께서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오셨다니....

우리는 주님에게 어울리는 단어로 평화, 사랑, 온유 등이라 생각합니다.

결코 주님에게는 칼이나 저주, 욕이나 분노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험이나 역경이 그렇듯 주님의 평화는 우리에게 다른 반응을 일으킵니다.

분명 주님은 평화를 주십니다.

그러나 그 평화가 우리에게 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내가 하고 싶지 않는 평화가 있습니다.

나와 원수된 자, 결코 말 섞고 싶지 않은 자에 평화하라 하십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하십니다.

그 말씀은 분명이 평화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말씀이 꼭 평화이진 않습니다.

그처럼 아프고 힘든 일이 없습니다.

그 말이 내게 칼처럼 다가옵니다.


5.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분대로 말씀을 듣습니다.

받아드릴 만한 말씀은 말씀대로 받지만 그렇지 못한 말씀은 거부합니다.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자신의 기분에 따라 평화도 되고 칼도 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기분에 따라 “NO"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러실리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동일하게 말씀 하시지만 우리는 기분에 맞춰 그 말씀을 재단합니다.

그러니 자신의 기분에 맞을 때는 간을 내줄 듯 하다가도 

기분에 맞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누리는 지금의 신앙입니다.

이것을 '내 중심적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6. 

하나님은 우리의 기분을 맞춰서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그분의 말씀을 할 따름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그분의 마음을 읽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생활이 내 기분을 위해서 하는 것인 줄 압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삶의 `주인은 주님`이라고 쓰고 `나`라고 읽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섬김 받고자 하면 `섬기는 자가 되라`고 쓰고

`섬김을 받아라`라고 읽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첫째가 되려면 `꼴찌가 되라`고 쓰고 

`일등이 되라`고 읽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것`이라고 쓰고, 

`신앙생활은 나의 필요와 소원을 이루는 것`이라고 읽습니다. 

오늘 나의 신앙은 그렇습니다...


7.

칼이 되는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칼이 되는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칼이 되는 환경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곳에 기도가 있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습니다.

그래야 그곳에 내가 없고 주님이 주인된 선포가 있습니다.


8.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의 손에 이끌리어 사흘길을 걷는 이삭처럼,

험한 골고다에 세워지는 십자가처럼,

우리의 인생은 칼을 받는 심정으로 가야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순종에 믿음이 있고,

뚫린 손바닥에 인류가 새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9.

주님의 평화가 깃드는 사순절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비록 내겐 칼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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