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서묵상일기 357 - 여전히 하나님은 나의 중심을 보십니다.

2025. 7. 31. 05:00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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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서 22:47~48   예수께서 아직 말씀하시고 계실 때에, 한 무리가 나타났다. 열둘 가운데 하나인 유다라는 사람이 그들의 앞장을 서서 왔다. 그는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왔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유다야, 너는 입맞춤으로 인자를 넘겨주려고 하느냐?"


좋은 아침입니다. 7월의 마지막 날 아침입니다. 7월을 감사와 기쁨으로 마무리하는 날이 되시길 빕니다. 아쉽고 힘든 일도 있겠죠. 그러나 마무리는 감사로, 그리고 새로운 기대로 충만한 날로 만드시는 여러분 되세요.

드디어 예수님의 수난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의 풍경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겉으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매우 깊고 복합적이어서, 우리는 이 순간을 여러 번에 나누어 묵상하고자 합니다. 그 첫 번째 묵상의 초점은 바로 유다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이 장면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 흐름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복음서 22장은 유월절 만찬 준비로 시작되죠. 그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수난과 우리를 구원하실 대속적인 죽음에 대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에서 제자 중 한 명이 자신을 배반할 것이라고 언급하셨죠. 누가복음에서는 제자들이 서로 "그게 누굴까?" 하고 궁금해하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요한복음 13장에는, 그 배반자가 유다임이 분명히 특정되고, 그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만찬 자리를 떠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와 같은 땀을 흘리며 기도하시다가, 마침내 자신을 잡으러 온 무리를 만나게 되는데요. 그때 그 무리들을 앞세우고 온 이가 바로 가룟 유다였습니다.

여기서 유다는 예수께 입맞춤을 합니다. 복음서 기자들은 이 입맞춤을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는 무리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확인시켜 주는 '표시'로 등장시킵니다. 어두운 밤이었고, 예수님의 얼굴을 모르는 이들이 있을 수 있으니, 유다가 입맞춤으로 예수님을 지목하는 약속된 행동이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죠. 그런데 이런 해석에 대해 저는 조금 의문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평행 본문인 마가복음서 14장에 보면,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서 14:48~49,   
"너희는 강도에게 하듯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너희와 함께 있으면서 가르치고 있었건만 너희는 잡지 않았다."


이 말씀을 통해 짐작컨대, 예수를 잡으러 온 무리는 대부분 성전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수없이 들었던 종교 지도자들이나 그들의 사주를 받은 이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예수님의 얼굴을 모를 리 없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죠. 아마도 그 자리에 예수님을 잡으러 온 이들은 늘 예수님 곁을 배회하며 감시 아닌 감시를 했던 이들이었을 가능성이 높죠.

그렇다면 왜 유다는 굳이 입을 맞추는 표시를 해야만 했을까요?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유대 문화에서 입맞춤은 사랑과 애정, 그리고 존중의 표시였습니다. 심지어 가장 기초적인 인사법이기도 했죠. 사도 바울조차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과 존중의 입맞춤이 오늘 이 순간에는 배신의 표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왜 굳이 이처럼 아름다운 입맞춤의 예절이 예수님을 넘겨주는 배신의 표식이 되어야만 했을까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입맞춤 자체에는 죄가 없습니다. 죄는 입 맞추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진짜와 가짜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으로는 좀처럼 표시 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을 사용하는 자의 속내에서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될 뿐입니다. 우리의 믿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예배에 참여하는 행동이나 기도하는 말, 겉으로 드러나는 신앙의 모습들은 차이가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차이는 그 내면에, 즉 우리의 중심에 있습니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실은 허술하다. 반면 거짓말은 완벽하다."

지어낸 것이기에 스토리가 완벽하고 빈틈이 없다는 것이죠. 이는 우리가 흔히 아는 것과는 반대입니다. 그래서 진심을 증명하기가 더 어려운지도 모릅니다. 가짜는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꾸밀 수 있지만, 진심은 꾸밈없이 때로는 부족한 모습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는 말씀이 더욱 가슴 깊이 다가옵니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결과물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드러내려 하지만, 주님은 여전히 우리 깊은 내면의 진실한 고백을 더 원하십니다. 오늘도 우리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주님의 뜻대로 되길 원한다고 고백하며 주님께 '입맞춤'을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입술의 고백 너머 우리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며 물으십니다. 

"유다야, 너는 입맞춤으로 인자를 넘겨주려고 하느냐?" 

오늘 이 아침, 나의 중심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건히 꽂고 흔들리지 않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진실한 중심이 하나님께 온전히 상달되는 복된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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