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서묵상일기 354 - 두 자루면 충분합니다.

2025. 7. 28. 05:00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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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서 22:35~38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돈주머니와 자루와 신발이 없이 내보냈을 때에, 너희에게 부족한 것이 있더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제는 돈주머니가 있는 사람은 그것을 챙겨라, 또 자루도 그렇게 하여라. 그리고 칼이 없는 사람은, 옷을 팔아서 칼을 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는 무법자들과 한 패로 몰렸다'고 하는 이 성경 말씀이, 내게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과연, 나에 관하여 기록한 일은 이루어지고 있다." 제자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보십시오. 여기에 칼 두 자루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넉넉하다" 하셨다.


좋은 아침입니다.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평강이 가득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숨이 턱 막히는 무더위 속에서도 마음은 늘 시원한 냉수가 흐르는 평안을 잃지 않으시길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돈주머니와 자루와 신발이 없이 내보냈을 때에, 너희에게 부족한 것이 있더냐?"고 뜬금없이 제자들에게 물으시죠. 이 질문을 이해하려면 누가복음 9장의 말씀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바로 제자들을 선교 현장으로 보내셨던 장면을 말이죠.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며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무일푼으로 선교 여행을 떠나야 했죠. 그런데 제자들은 놀랍게도 빈손으로도 부족함 없이 사명을 감당했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분명한 정체성과 영적인 자존감으로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그 둘로 충만했던 그들의 존재감이 세상의 도움과 환대를 이끌어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제 상황이 달라졌음을 선포하십니다. 당신의 십자가 고난이 임박했으니, 이제는 돈과 식량, 심지어 칼까지 준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더 이상 그들을 환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 말씀을 제자들은 오해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드디어 민란을 일으키고 예루살렘 성을 쳐들어가나 보다 했을지 몰라요. 왜냐하면 그들 중 상당수는 이스라엘의 구원이 독립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이때 제자들은 자신 있게 말합니다.

"주님, 보십시오, 여기에 칼 두 자루가 있습니다!"

이 말에 저는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칼 두 자루를 어디에 씁니까? 애들 소꿉장난도 아니고 무슨 혁명을 하는데 칼 두 자루로 되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짧고도 의미심장하게 말씀하시죠.

"넉넉하다."

저는 이 말씀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주님이 준비하라고 하신 돈과 식량, 그리고 칼이 전쟁을 준비하는 도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죠. 그리고 이는 우리 내면과 영적인 준비를 말씀하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누가복음서 9장에 나오는 선교 여행에서의 빈손에도 불구하고 거뜬히 여행을 부족함 없이 치렀던 일화를 다시금 떠 올려야 합니다. 그 원동력을 우리는 영적인 정체성과 자존감이라고 말했죠. 예수님께서는 그날에, 우리가 채우고 준비해야 할 돈과 식량, 칼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존감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디선가 이런 정신과 전문의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청년이 상담을 하려고 찾아왔답니다. 무슨 문제가 있느냐 물었더니 대뜸 키가 너무 작아서 고민이라고 하더랍니다. 키가 얼마냐 물으니 진짜 섣불리 말하기 힘들 만큼 작은 키더래요. 그래서 연애 한 번 못했답니다. 그래도 뭔가 있겠지 싶어 뭐 잘하는 것 없느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대번 대답하더랍니다. 전문의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점점 답답해졌답니다. 그래서 이렇게 물었데요. '유머는 좀 있는가?' 없데요. '얘기는 좀 잘하는가?' 아니래요. '사람들을 친근하게 대하는가?' 아니랍니다. '그럼 친절하기는 한가?' 그렇지도 않답니다. 묻는 족족 내 세울 게 없데요. 그래서 이렇게 대답해 줬답니다. 

'그러면 키가 커도 연애하기는 힘들겠는 걸?'

자존심과 자존감은 다릅니다. 자존심은 타인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죠.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하는지에 대한 나를 보호하는 장치로 작용하는 것이 자존심이죠. 반면 자존감은 내 내적인 문제입니다. 외부의 평가나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문제라는 거죠.

많은 이들이 '나는 최고야' '나는 잘났어' 이렇게 자기 최면을 거는 것을 자존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건 가짜 자존감이에요. 진짜 자존감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것들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키가 작은 것이 내 잘못입니까? 내가 내 부모를 선택할 수 있어요? 내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이 내 선택입니까? 내가 성별이나 인종을 선택할 수 있나요? 더 나아가 나의 타고난 성격, 나의 유전적 자산을 먼저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인정 위에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잘하는 것, 내가 조금 더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사항들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진짜 자존감이죠.

우리는 삶에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으려 노력할 필요도 없어요. 사실 모든 인류의 칭찬을 받을 수도 없을뿐더러,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 우리에게 허락된 것으로도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가진 것이 적으면 적을수록 그 귀중함을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칼 두 자루로는 거대한 세상을 바꿀 수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주님은 그것으로도 넉넉하다고 선언하십니다. 우리가 준비한 것에 의해 모든 결과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하다 보면 느끼는 것이 있는데요. 저는 나름 늘 최선을 다해 설교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그 최선과는 달리 반응은 다르죠. 내가 최선을 다한다고, 최고를 준비했다고 그것이 곧 최고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심지어 내가 뭔가 부족하고 모자란 듯 느끼는 설교가 오히려 많은 사람에게 도전을 주기도 합니다. 그때 저는 느끼죠. 내가 준비한 것 위에 임하시는 주님의 손길이 있다는 것을 말이죠. 누군가 말했듯이 아무리 99% 노력을 해도 1%의 영감이 없으면 완성되지 않는다고요.

우리가 특별히 똑똑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일등이 되지 못해도 괜찮아요.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내 주위 사람, 내게 허락하신 가족과 이웃들을 사랑하고 잘 지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나의 가족,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작은 이웃들을 돌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삶입니다.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 할 수 없는 것에만 집중하면 자존감은 무너지고 삶은 피폐해집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미 허락하신 것들,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에 집중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 자루의 칼만 허락하셨다면, 그 두 자루로 충분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귀히 여기고 그것을 사용하여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는 이미 넉넉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죠. 그때 두 자루는 스무 자루, 이백 자루로 늘어날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칼 두 자루는 무엇입니까? 그것만 잘 써도 우리는 성공합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칼 두 자루에 주님의 도우심이 임하시면 못할 일이 없기 때문이죠. 세상의 시선과 평가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허락된 '두 자루'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것이 비록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우리의 자존감과 그 위에 임하실 주님의 축복이면 충분합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이 가진 것에 감사하며, 여러분의 손에 들린 '두 자루의 칼'이 얼마나 귀하고 넉넉한 것인지 깨닫는 복된 시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 넉넉함으로 여러분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가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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