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서묵상일기 263 - 남의 불행을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2025. 4. 2. 05:00ㆍ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반응형
누가복음서 13:1~5 바로 그때에 몇몇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해서 그 피를 그들이 바치려던 희생제물에 섞었다는 사실을 예수께 일러드렸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런 변을 당했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또 실로암에 있는 탑이 무너져서 치여 죽은 열여덟 사람은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4월의 꽃향기 가득한 여러분의 하루를 응원합니다.
이제 오늘부터 우리는 누가복음 13장을 묵상합니다. 오늘 본문은 어떤 사람들의 '보고'로 시작되는데요. 이 '보고'가 우리를 아프게 합니다. 보고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갈릴리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가 로마군에 의해 처형을 당하는 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왜 처형을 당했는지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당시 갈릴리 지역에서는 로마군에 대항하는 소위 해방 투쟁을 일으키는 일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아 아마도 식민 해방을 위해 저항하다가 희생되는 이들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왜 그 이야기를 예수께 보고했는지를 누가는 정확히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이어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그들의 의도를 추측할 수가 있는데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죠.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런 변을 당했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이 말씀으로 보아서 그들이 예수께 그런 보고를 한 이유는 이런 것 같아요. 갈릴리 사람들이 그렇게 죽은 것은 다 그들이 잘못이 있고, 죄가 있어서 죽음을 당한 것이라고 말이죠. 그런데 그것만을 강조하고자 그런 말을 했다기에는 좀 이상하죠? 사실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말이었을 거예요.
'나는 이렇게 버젓이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죄인이 아니지 않은가!'
예수께 와서 보고를 하는 사람들은 불행한 이들의 사연을 말하면서 사실은 자신의 안전과 도덕성을 확인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런 식의 도덕적 우월감, 그리고 은근한 신앙적 자기만족이 그들의 보고 속에 숨어 있는 거죠.
그런데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싶은 이런 일들이 이 아침에, 결코 우리와 무관하지 않음을 느끼게 됩니다. 오래전 우리나라에 대형 사고가 난 적이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말도 안 되는 사건이었죠. 그 사건으로 사회는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더 씻을 수 없는 아픔이 있었어요. 그것은 여기저기 교회에서 들렸던 간증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나와 감사의 간증을 하더라고요. 그는 그날 삼풍 백화점에서 약속이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무슨 일로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늦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백화점에 들어가기 직전 눈앞에서 백화점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러더라고요. 조금만 빨리 도착했어도 자신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요. 그렇게 자신을 지켜주신 주님께 감사하다고요.
이해는 합니다. 얼마나 감사하겠어요. 죽음의 문턱에서 살았으니 그 감격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런데 그게 하나님께서 지켜주신 것이면 그 백화점에서 희생당한 이들은 무엇입니까? 그러면 그들은 다 죄인이어서 죽은 것입니까?
더 기가 막힌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동남아에서 큰 쓰나미로 수천 명이 희생당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를 두고 어떤 유명한 목사님이 그랬다고 하죠. 그곳에 있는 이들은 하나님을 몰라서 저주를 받아 죽은 것이라고 말이죠. 자신들은 주님을 믿어 그런 고통을 당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그 말에 교인들은 아멘을 외쳤다고 합니다. 저는 이게 더 아픕니다.
이런 말들은 영적 해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불행을 남의 몫으로 떠넘기고, 나는 괜찮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위선의 말입니다. 남의 고통을 쉽게 해석하는 순간, 우리는 공감이 아니라 심판이 가치관이 되어버립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 속에서, 죽은 사람들의 죄를 따지거나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오히려 이렇게 질문을 하시죠.
"그들이 그렇게 당한 게 죄가 많아서라고 생각하느냐?"
"너희는 죄가 없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다 그렇게 된다."
하나님은 누가 더 착하고, 누가 더 악해서 고난과 축복을 기계적으로 나누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아무 일 없는 것은 내가 괜찮아서라고 생각하죠. 그렇게 은근한 신앙적 우월감에 젖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남의 불행은 '심판'으로 해석하고, 내 평안은 '의로움'의 보상이라 착각하게 되죠. 이런 신앙은 복음의 본질에서 멀어지는 위험한 해석입니다.
예수님은 남의 고통을 해석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그 고통 앞에 함께 아파하셨습니다. 눈물을 흘리셨고, 죽은 자를 위해 애통하셨고, 절망한 자들을 끌어안으셨습니다. 우리가 진짜 신앙인이라면 '왜 그런 일이 생겼지?'를 묻기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묻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남의 불행을 해석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아픔에 같이 손을 잡아주는 것, 그게 예수님의 방식입니다.
화마로 터전을 잃은 이들을 주님께서 위로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지나간 아픔보다 더 크고 놀라운 위로와 축복의 길을 열어주실 것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요. 그들이 어떤 분들인지, 어떤 사상이나 이념, 그리고 스타일과 배경을 가졌는지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다만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나와 같이 주님께서 주신 생명임을 믿기에 저는 나의 가족 같은 마음으로 아침마다 기도합니다. 저 멀리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얀마의 고통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황망한 재해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희망을 빼앗긴 이들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보잘것없지만 작은 기부와 함께 목놓아 기도합니다. 나는 갈 수 없으니 주님께서 주의 천사들을 보내주시고 은총을 내려 그들의 빈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기를 빌고 또 빕니다. 저는 이것이 남의 불행을 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그리스도인의 마음이라고 믿습니다.
728x90
반응형
'묵상하는말씀 > 누가복음서묵상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복음서묵상일기 268 - 하나님 나라는 갑절의 은혜가 흐릅니다. (0) | 2025.04.08 |
---|---|
누가복음서묵상일기 267 - 하나님 나라는 혼자 빛나지 않습니다. (0) | 2025.04.07 |
누가복음서묵상일기 266 -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0) | 2025.04.06 |
누가복음서묵상일기 265 - 비본질이 본질을 덮는 순간, 내 삶은 산만해집니다. (0) | 2025.04.04 |
누가복음서묵상일기 264 - 살아 있음이 가장 큰 열매입니다. (0) | 2025.04.03 |
누가복음서묵상일기 262 -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먼저 화해하세요. (0) | 2025.04.01 |
누가복음서묵상일기 261 - 확증 편향의 덫을 피하세요. (0) | 2025.03.31 |
누가복음서묵상일기 260 - 고난은 선물입니다. (0) | 2025.03.30 |
누가복음서묵상일기 259 - 책임이 크다는 건, 그만큼 가진 것이 많다는 뜻입니다. (0) | 2025.03.28 |
누가복음서묵상일기 258 - 미래를 함부로 판단하지 마세요. (0) | 2025.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