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서묵상일기 261 - 확증 편향의 덫을 피하세요.

2025. 3. 31. 05:00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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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서 12:54~56   예수께서 무리에게도 말씀하셨다. "너희는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소나기가 오겠다고 서슴지 않고 말한다. 그런데 그대로 된다. 또 남풍이 불면, 날이 덥겠다고 너희는 말한다. 그런데 그대로 된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왜, 이 때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좋은 아침입니다. 갑자기 추워졌죠? 3월이 가는 것이 아쉬웠을까요? 이제 3월 마지막날입니다. 역사적으로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말이 있죠. 올 4월은 어느 때보다 가장 풍성하고 평안한 달이 되길 빕니다. 회복과 축복이 임하시는 4월을 준비하세요.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무리에게 영적인 경계와 분별력을 강조하시는 맥락에서 등장합니다. 앞선 구절들에서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경고하시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시대의 징조를 깨달을 것을 당부하시죠. 오늘 본문에서는 이러한 주제를 확장하여, 사람들이 자연 현상은 잘 해석하면서도 정작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된 영적 징조는 무시하는 태도를 비판합니다. 이 말씀은, 깨어 기다리라는 말씀을 더욱 강력하게 요구하는 말씀이죠.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은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만 저는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문제점을 지적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으로 들렸습니다. 그렇게 주신 말씀을 오늘 함께 나눠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이 저에게는 이렇게 들렸습니다. '우리는 날씨를 읽는 데는 능숙하지만,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실을 가려내고 사회의 흐름을 읽는 데는 서툴다'고 말이죠. 그 중심에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는 심리적 덫이 있습니다. 이 편향은 가짜 뉴스를 양산하고, 사상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오늘의 비극을 키우는 불쏘시개가 되었죠.

 

확증 편향은 우리가 믿고 싶은 정보만 받아들이고, 불편한 진실은 외면하게 만듭니다. 소셜 미디어 시대에 이 성향은 더욱 치명적이죠. 2023년 옥스퍼드 인터넷 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의견을 강화하는 가짜 뉴스를 공유할 확률이, 그렇지 않은 뉴스보다 6배나 높다고 밝혔습니다. 예를 들어, 기후 변화 회의론자들은 과학적 합의를 무시한 음모론에 더 심취하고, 백신 반대론자들은 왜곡된 통계를 더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반대편도 마찬가지죠. 진보와 보수는 각자 편향된 필터로 세상을 보며, 상대 진영의 주장은 아예 보지 않거나 가짜로 치부해 버리고 맙니다.

이 선택적 인식은 정보 회피와 맞물려 사상적 양극화를 심화시켜 버렸습니다. 미국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는, 미국의 양당 지지자들이 서로를 '도덕적으로 잘못됐다'라고 여기는 비율이 20년 전보다 두 배나 늘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도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다. 정치적 논쟁에서 상대의 말을 듣기보다 '너는 틀렸다'로 시작하는 대화가 SNS를 뒤덮죠. 우리는 사회 갈등, 불신의 심화 등 그 징조를 읽을 능력이 있으면서도, 그것을 선택적 무지로 덮어버립니다.

이런 태도는 개인을 넘어 집단적 비극으로 이어지고 있죠. 오늘 예수님의 "위선자들아!"라는 질책은 오늘날 단순한 무지가 아닌,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태도를 겨냥하는지도 모릅니다. 오늘로 말하면, 우리는 가짜 뉴스가 퍼지는 걸 알면서도 '내가 믿는 쪽이니 괜찮다'라고 합리화하는 거죠. 2021년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에서, 응답자의 70%가 가짜 뉴스를 접했지만, 절반 이상이 이를 공유하거나 믿었다고 답했습니다. 왜일까요? 그 뉴스가 자신의 신념과 맞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믿고 싶었기 때문이죠. 이는 이미 진실과는 다른 선택을 자체 했다는 의미입니다.

이 선택적 무지는 대립과 갈등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진실'을 믿는 사람들은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토론은 사라진 채 비난만 남는 행동을 서슴지 않죠. 팬데믹 시기 마스크 착용을 둘러싼 갈등, 최근의 정치적 이념 충돌은 모두 확증 편향이 낳은 결과입니다. 예수가 말한 '이 시대'의 불신, 분열, 혼란과 같은 징조는 분명한데, 우리는 이를 외면한 채 각자의 거품 속에 갇혀 있는지도 모릅니다.

확증편향의 덫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믿고 싶은 대로 믿는 버릇을 지속해 왔습니다. 내가 그린 하나님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짜깁기하고 심지어 창조하는 일을 마다치 않았죠. 그래서 만들어진 거대 종교는 이단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그분 앞에서 엎드리기보다 하나님을 자신 앞에 꿇게 만드는 일에 앞장서 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불편한 진실 앞에 서길 원하십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불편한 진실, 내가 아는 것이 없음을 깨닫는 고통 앞에 서길 원하시죠.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내가 귀하듯 남도 귀함을, 나의 입장이 있듯 다른 이들의 입장도 있음을 아는 것이 겸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아래가 아니라 생명나무 아래 우리가 살길 원하십니다. 옳고 그름으로 남을 재단하기보다, 우리 모두는 각기 달라도, 모든 생명이 주님의 자녀임을 깨닫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기 때문이죠. 

 

그러니 오늘, 우리 앞에 놓인 징조를 읽는 일을 멈추지 맙시다. 생각이 다르고 믿음의 길이 달라도,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손 안에서 사랑받는 자녀들입니다. 내가 옳다고 고집하며 남을 정죄하기보다, 서로의 다름을 끌어안고 생명나무 아래 함께 서는 믿음을 선택하십시다. 그곳에서 우리는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고, 나와 다른 이도 죄인이 아니라 주님의 소중한 자녀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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